인생을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
"세이브 기능이 없어서 만원 싸게 드릴게요"
"세이브 기능이 대체 뭔가요?"
지금으로부터 대략 30년 전 콘솔게임기의
게임팩(소프트웨어)을 사러 갔는데 아저씨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영어 의무교육이 중학교 때 시작되었고
Save라는 단어는 너무도 고급 어휘였기에 초등학생이었던
게임기 오너 친구와 저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게임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데 (~~~~~가 안 되는 거예요)"
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성상 듣고 싶은 말만 듣는지라
이해가 안 되는 괄호 안의 내용은 그냥 무시하고
게임도 지장 없고 만원이 싸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그 게임을 샀습니다.
당시 게임기는 있는 집 자식이나 가지고 있던 고가의 아이템이었는데
요즘으로 치면 포르셰를 타는 친구의 느낌이랄까.. (이건 카푸어 같다고!?)
그렇다면 반포 원베일리에 사는 친구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디오 가게 아들이었던 그 친구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며 존재하지도 않는 꼬리를 마구 흔들며
함께 게임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가난은 고귀한 자존심조차 휴지로 만들어 버린다는 걸
지나치게 빨리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게임이 너무 재밌었는데
너무도 재밌었는데..
게임을 하다가 그 '세이브' 기능이라는 게 무엇인지
왜 '세이브' 기능이 없으면 싸게 팔아야 했던 건지 알게 되었습니다.
세이브(저장) 기능이 없으니 할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했고
길고 긴 대장정을 가야 하는데 '매번 처음부터' 하려니 진이 빠져버렸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세이브' 기능이라는 건 조금 싸다고 포기하기에는
사실 엄청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인생에도 세이브 기능이 존재할까?
"Yes"
있습니다.
그건 바로 "쏟아부은 노력의 기억"입니다.
다음 주에 원어민이 출장을 온다고 하기에 긴장이 되어
무려 12년 만에 비즈니스 영어회화 MP3를 듣는데
제 몸이 기억하고 있음을 바로 느꼈습니다.
매일매일 내 앞자리에 앉아있는 외국인들에게
실시간으로 외국인투자 증명서를 발급해줘야 했던
영어 짧은 제가 말 그래도 '생존'을 위해 들었던 MP3였습니다.
산책을 하면 아이디어가 솟아나는 이유가 DNA에 남아있는
'사냥모드'가 가동되기 때문이라던데 MP3를 듣자마자
처음 이 MP3를 들었을 때의 '열정모드'가 가동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심장이 뜨거워지고 '저장된 그 텐션'부터,
20대의 그 에너지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쏟아부은 노력의 시간은
그리고 성공의 기억은
우리 몸 깊숙이 새겨집니다.
세이브가 되는 게임팩이 만원이 더 비쌌다면
세이브가 되는 사람은 얼마나 더 비쌀까요?
사소한 우연이 쌓이고 쌓이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다.
이상적현실주의 인생을 바꾸는 설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