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의 원인이 아니다

by 심홍석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사람의 마음에 늘 관심이 많았다. 궁금했고, 이해해 보려 애썼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예측해 볼 때도 있었고, 마음을 읽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 어려운 상황들이 자꾸 나타났다.


마음에 대해서 오랫동안 공부도 하면서 마음에 대해 이해하려 집착해 봤지만, 어느 정도 알 것 같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여전히 중요한 순간마다 뒤통수를 쳤다. 마음엔 항상 수많은 변수가 존재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꽁꽁 숨겨놓았다. 자신의 마음과 다르게 말하고, 움직이고, 선택했다. 자기 자신조차 자신의 마음을 모르니까. 나 역시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을 예측하는 건 사실 나의 생존 기술이었다.


날씨와는 달리, 예고도 없이 변화무쌍한 부모님의 마음. 느닷없이 변해버리는 집안의 온도와 세상의 풍경들. 그리고 폭력과 버려짐. 그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나는 늘 상대의 마음을 예측하려고, 이해하려고 애썼다. 예측하면 내가 조금은 통제할 수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일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게 너무 무기력하고 불안했으니까.


내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내 습관이 내 마음을 어떻게 괴롭히기 시작했는지.


나는 점점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내 탓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그때 눈치채지 못했을까?’ ‘내가 왜 대비하지 않았을까?’ '그때 내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됐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더 악착같이 더 잘 예측하고, 뭔가를 더 해보려고 애썼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원인이라는 유아적 전능감을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끝은 반복되는 실패마다 들러붙는 자기 비난이었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내 탓으로 돌렸다. 교회에서 들은 어떤 언어들은 거기에 한 숟갈을 얹었다. ‘내가 왜 더 기도하지 않았을까?’ ‘난 무슨 죄를 지은 걸까?’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불안이 증가한 원인을 ‘능력주의(Meritocracy)’로 꼽는다. 과거 계급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별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그 말은,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을 탓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삶은 자신이 하기에 달렸다’는 허울 좋은 신화가 퍼져나가면서, 자유라는 명목으로 삶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게 됐다. 이제 자신의 삶은 자기 탓이 된 거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무언가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사람의 마음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이 늘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불안해하게 만든다. 빨리 눈치채야 하고, 대비해야 하고, 더 잘해야 한다. 나에 대한 그 사람의 마음은 다 내 탓이 되어버린다. 날 좋아하는 것도, 날 미워하는 것도, 나에게 거리를 두는 것도, 날 떠나는 것도. 그래서 늘 불안하다.


불안은 악순환이 되어서 더 상대의 마음을 예측하고 통제하려 애쓴다. 그게 잘 될 땐 죄책감과 불안함을 느낀다. 상대방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믿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밀어내고 무심하게 대한다. 내가 애써서 얻은 마음은 나를 불안하게 하니까. 그러다 상대의 마음을 잃게 되면 무기력함과 거절감에 고통받는다. ‘거봐. 내가 애쓰지 않으면 날 좋아할 리 없잖아.’




사람은 무언가를 통제하려 들 때 그것에게 통제받게 된다.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할 때 그것에게 소유당한다. 내가 그것을 움켜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나를 움켜쥐고 있다. 불안이라는 무기로.


그 지독한 감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주문이 있다. 이 주문은 한 번 외운다고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어쩌면 백번쯤, 어쩌면 천 번, 만 번, 그 이상을 외워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이 주문을 믿음으로 외칠 수 있게 된다면 결국 그 감옥의 문은 열리게 될 것이다. 그 주문은 바로 이거다.


“나는 세상의 원인이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내 탓이 아니다.”



사실 난 사람의 마음을 잘 모르고,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는데도 서툴고, 무심한 사람인게 맞다.


괜찮아.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그대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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