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성경] 10화, 무기력과 불안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성경의 지혜
섬기는 교회의 한 청년이 전도사님께 보낸 카톡 메시지가 가슴에 와닿았다. "전도사님, 영혼의 구원은 확실히 받았는데, 현실의 삶은 하나도 풀리지 않아요. 교회에 올인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제가 더 열심히 일해야 할까요? 어디까지가 제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하나님의 섭리인지 경계선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숨과 눈물이 배어 있는 이 메시지를 읽는 순간,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는 사람일수록 이런 고민에 더 깊이 빠진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싶은데, 동시에 땅 위에서 발 딛고 살아내야 하는 현실은 냉혹하다. 기다리면 게으른 것 같고, 움직이면 불신앙처럼 느껴진다. 기도는 드리지만 응답은 더디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무기력한 존재인가?"라는 자기 부정의 수렁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 고민은 신앙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신앙이 '살아 숨 쉰다'는 증거다. 문제는 자꾸 하나님의 주권과 사람의 몫을 뒤섞어 버린다는 데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결과를 통제하고 싶어 한다. 취업의 합격 여부, 배우자의 만남, 재정의 형통, 병의 치유까지.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이렇게 썼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7).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열매까지 움켜쥐려 한다. 결과까지 책임지려 하면 좌절이 온다. 반대로 내 몫마저 내려놓으면, 하나님이 우리 손에 쥐여주신 기회를 스스로 놓쳐버린다.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성도들은 파도에 떠밀린 배처럼 끊임없이 흔들린다.
성경은 놀랍도록 일관되게 '하나님의 주권(God’s Sovereignty)과 사람의 몫(Human Responsibility)의 조화'를 보여준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계획은 사람의 몫, 인도는 하나님의 몫이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 수고는 필요하지만, 그 의미를 완성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빌립보서는 더욱 명확하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성화의 과정조차 인간의 순종과 하나님의 주권이 동시에 맞물린다.
요셉을 보라. 그는 감옥에서도 성실히 간수를 도왔지만, 총리가 되는 타이밍은 하나님께 속해 있었다. 다윗은 어떤가. 그는 물맷돌을 던졌지만, 골리앗을 쓰러뜨린 건 하나님의 손이었다. 에스더도 그렇다. 그녀는 '죽으면 죽으리이다' 결단했지만, 왕의 마음을 움직이신 건 하나님이셨다.
성도들이 자주 부딪히는 지점은 바로 이런 현실의 필요들이다.
취업 앞에서: "내가 준비해야 하나, 하나님이 길을 여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결혼 앞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나, 아니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짝을 기다려야 하나?"
재정 앞에서: "치열하게 벌어야 하나, 아니면 복 주시기를 그냥 기다려야 하나?"
질병 앞에서: "치료받아야 하나, 아니면 기도만 해야 하나?"
교육 앞에서: “자녀 교육을 철저히 준비해야 하나, 아니면 하나님께 맡기면 되나?”
이직 앞에서: “내가 조사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하나, 아니면 하나님이 길을 여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시험 앞에서: “밤새워 공부해야 하나, 아니면 기도하고 맡기면 되나?”
해답은 단순하면서도 깊다. 내 몫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기도하지 않고 움직이는 건 내 욕심이고, 준비하지 않고 기다리는 건 무책임이다. 신앙은 둘 중 하나를 버리는 게 아니라, 둘을 동시에 붙드는 지혜다.
성경은 씨와 열매의 원리를 반복해 말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 126:5).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씨를 뿌리는 건 내 책임이다. 열매를 맺게 하는 건 하나님의 몫이다. 그래서 성도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첫째, 기도로 분별하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주시는 말씀을 붙들며 내 욕심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먼저 묻는 것이다.
둘째, 성실로 준비하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눅 16:10). 하나님은 작은 일에 성실한 자에게 큰일을 맡기신다.
셋째, 결과는 맡기라.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 최선을 다한 후에는, 결과를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하는 것이다.
넷째, 인내로 기다려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하나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견디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만 붙들다 보면 무기력에 빠지고, 사람의 몫만 붙들다 보면 불안에 빠진다. 균형은 '동행의 원리'다. 그런데 이 동행은 동료 간의 협업이 아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동행이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를 생각해 보라. 아버지는 아이를 안고만 다니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이가 스스로 한 걸음씩 내딛도록 격려하신다. 넘어지는 것도 허락하신다. 무릎이 까지는 아픔도 경험하게 하신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멀리 떠나지 않으신다. 아이가 넘어졌을 때 혼자 일어나도록 기다리시되, 언제든 손을 내밀 수 있는 거리에 계신다. 일어서려고 애쓰는 아이를 지켜보시며, 때로는 손을 잡아주시고, 때로는 스스로 일어서기를 기다리신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 8:15).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며 오늘도 성실히 씨를 뿌리는 것이다." 작은 성실이 쌓이고, 시행착오가 쌓일 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열매를 키워가신다.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린 후, 밤낮 자고 깨도 씨가 자라나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막 4:26-27),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의 넘어짐까지도 성장의 과정으로 만드신다.
영혼 구원과 영화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자 그분의 몫이라면, 삶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지만 사람의 몫을 남겨두셨다. 현세적 형통을 고민하는 성도에게 성경이 주는 원리는 분명하다.
내 몫: 씨를 뿌리는 것.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것.
하나님 몫: 자라게 하시는 것. 넘어진 자녀를 지켜보시며 때를 따라 손 내미시는 것.
최선의 결정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행하는 것이다. 기도로 묻고, 성실히 준비하고, 결과를 맡기고,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넘어지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아버지는 당신이 스스로 일어서기를 기다리시되, 결코 혼자 두지 않으신다. 그러면 결국,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그 청년에게 나는 이렇게 답장하고 싶다. "OO 형제, 당신은 이미 영혼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삶의 구원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씨를 뿌리세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세요. 아버지는 당신이 걷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반드시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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