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성경] 28화, 결혼의 왜곡과 구속의 인내 사이, 하나님의 침묵
라멕의 집 거실에는 웨딩사진이 두 장 걸려 있었다. '아다와 씰라'(창 4:19). 인류 최초의 일부다처, 그러니까 결혼 역사상 첫 번째 사고 현장이다. 창세기 2장 24절이 선언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창조의 문법을 단숨에 무시한 사건. 이 장면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중요한 구분을 배운다. 하나님은 일부다처를 허락하신 적이 없다. 다만 묵인하셨다. 왜 그랬을까?
성경의 결혼은 제도가 아니라 언약이다. '둘이 한 몸'이라는 전인격적 결합, 이것이 결혼의 DNA다. 일부다처는 이에 대한 신학적 반역으로 등장한다. 라멕의 두 아내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폭력 서사의 시작이었다. 그는 아내들 앞에서 살인을 노래했다(창 4:23-24). 사랑이 언약을 잃는 순간, 욕망은 관계를 거래로 만들고, 권력은 사랑을 질서 대신 소유의 도구로 바꾼다. 구약의 다처제는 그 왜곡의 연대기다.
예수께서 열쇠를 주셨다. "모세가 너희 완악함 때문에…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않다"(마 19:8). 핵심은 여기다. 하나님은 죄를 승인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구속사의 줄기를 단칼에 베어버리지 않으시려고, 죄의 현실을 인내로 견디신 것이다. 이 인내는 방임이 아니라, 심판 유예 속에서 작동하는 일종의 교육이었다. 율법은 이미 방향을 밝혔다. "그는 아내를 많이 두지 말지니라"(신 17:17). 즉, 축복이 아니라 경고였다.
고대 근동에서 후손은 언약의 계승과 직결됐다. 대를 잇는 문제(수혼, 신 25:5–6), 전쟁·기근·질병으로 무너진 가족 구조 속에서 약자 보호라는 명분이 다처제를 합리화했다. 하나님은 무너진 현실을 단칼에 베지 않고, 점진적 계시로 교정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명령보다 결과로 심판한다. 아브라함의 사라–하갈 갈등(창 16장), 야곱의 레아–라헬 질투극(창 29–30장), 엘가나 집안의 눈물(삼상 1장), 다윗 가문의 참사(삼하 13–18장), 그리고 솔로몬의 영적 붕괴(왕상 11장). 결말은 한결같다. 일부다처는 언제나 파국으로 끝났다. 하나님은 '결과'를 통해 "이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는 결혼의 본질을 새로 제정하신 게 아니라, 창조의 원점으로 되돌리셨다.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마 19:4–6). 결혼은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설계하신 창조의 질서였다.
바울은 이 결혼을 복음의 표징으로 본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언약적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십자가적 사랑의 그림자다. 그러므로 결혼은 한 몸, 한 언약이어야 한다.
교회 지도자 기준을 "한 아내의 남편"(딤전 3:2, 12)이라 한 이유도 여기 있다. 결혼은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복음의 신실함을 증거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새로운 윤리를 발명한 게 아니다. 처음 것을 다시 세웠다. 구약의 허용은 잠시 눈감아준 것이었고, 신약의 표준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나 된 사랑이다.
"구약에 있으니 지금도 가능하지 않은가?" 이 질문은 성경 읽기의 초보적 오류다. 구약의 다처제는 기록된 사실이지, 처방된 윤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요셉 이야기로 이 원리를 미리 해설하셨다. "너희는 악을 꾀했으나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사…"(창 50:20).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실 수 있으나, 그렇다고 악이 선이 되지는 않는다(롬 6:1). 구약의 허용은 은혜의 견딤이지, 허락은 아니었다.
일부다처는 제도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기도 하다. 한 사람과 살면서 마음을 여기저기 나누는 영적 다처도 있다. 우상, 쾌락, 일, '나'라는 작은 신 같은. 복음은 우리를 한 주님, 한 사랑으로 부른다.
구약의 일부다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완악함 속에서 구속사를 잇기 위한 하나님의 인내였다. 하나님은 법 조항보다 더 강력한 방식으로 가르치셨다. 역사의 비극으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언하셨다. 처음으로 돌아가라. 한 몸, 한 언약.
독자가 이 문장을 속삭이길 바란다. "아, 하나님은 일부다처를 허락하신 게 아니라 허용하셨구나." 이제 우리의 질문은 명확해진다. 그 복음을 닮아, 오늘도 '한 몸'으로 살 것인가.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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