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성경] 30화, 약속의 그림자 속에서도 같은 은혜가 흐르고 있었다
"예수님을 몰랐던 구약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받았을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멈춰 선다. 모세나 아브라함, 욥과 다윗, 그들은 '예수'라는 이름 석 자조차 들어본 적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천국행 티켓을 손에 쥔 걸까?
기독교는 말한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다고. 그렇다면 예수를 모르던 시대 사람들은 구원의 대기실에서 영원히 발만 동동 구른 걸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차별하는, 좀 불공평한 분이 되지 않을까?
이 질문의 답은, 성경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구속 드라마로 보는 눈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구원의 방식을 바꾸신 적이 없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다른 두 계약이 아니라, 하나의 언약이 시간 속에서 천천히 펼쳐진 두 개의 막이다.
구약은 약속의 시대, 신약은 그 약속이 현실로 터진 시대다. 그 중심에는 한 인물, 예수 그리스도가 홀로 서 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도, 신약 시대에도,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셨다.
아브라함은 예수의 이름을 몰랐지만,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의 씨앗을 믿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창 15:6)
그의 믿음은 막연한 종교심이나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의 낙관주의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리라는 메시아적 언약을 향한 신뢰였다.
모세 시대의 제사 제도도 마찬가지다. 피 흘림의 제사는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 하는 예고편이었다.
히브리서 10장은 이를 이렇게 정의한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다."
즉, 구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뒤에서 바라본 자들'이었다. 그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실체를 약속의 그림자 속에서 믿은 사람들이었다. 마치 일출 전 동트는 하늘을 보며 해를 기다리는 자들처럼.
많은 사람이 오해한다. "구약은 율법 시대, 신약은 은혜 시대."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 교재가 아니다. 율법은 구원의 방법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의로울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진단서였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율법은 인간을 정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속주가 필요하다"라는 절망의 자리로 친절하게 안내하기 위해 주어졌다. 즉, 율법은 복음을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교육 도구, 일종의 예비학교였다.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히 11:13)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망원경 너머로 본 사람들’이다. 아직 오지 않은 메시아를 향해 신뢰의 시선을 던진 자들, 그 믿음이 곧 구원의 통로가 되었다.
신약의 성도들이 "이미 오신 메시아"를 믿는다면,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메시아"를 믿은 것이다. 구원의 방식은 같고, 단지 시점만 다를 뿐이었다. 하나는 회고형 신앙, 하나는 예고형 신앙일 뿐.
하나님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그분의 구속은 '선후(先後)'가 아니라 '영원'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A.D. 30년경에 일어났지만, 그 효력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덮는 시공간 초월 구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 8:56)
아브라함이 본 것은 시간 너머의 복음, 아직 오지 않은 십자가의 빛이었다. 믿음의 눈으로 그는 이미 2천 년 뒤의 골고다 언덕을 보고 있었던 셈이다.
성경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렇다.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약의 성도들은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하나님은 시대에 따라 구원의 방법을 바꾸신 적이 없다. 율법 이전에도, 율법 아래서도, 복음 이후에도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 구원의 문이었다.
그분은 시간의 한가운데 계신 분이 아니라, 시간 전체를 꿰뚫는 역사의 중심축이다.
복음은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창세기부터 이미 십자가를 준비하고 계셨다. 에덴동산에서 첫 죄가 일어났을 때, 하나님은 벌보다 먼저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다. (창 3:15)
즉, 복음은 인간의 실패 뒤에 급조된 대책이 아니라, 태초부터 예정된 사랑의 청사진이었다.
구약의 사람들은 그 약속의 빛을 멀리서 바라보았고,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그 빛을 눈앞에서 본다. 하지만 빛의 근원은 언제나 하나였다. 그리고 그 빛은 지금도, 여전히, 같은 방향을 비추고 있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인천성산교회 l 인천이단상담소(상담 및 문의): 032-464-4677, 465-4677
인천성산교회 유튜브: www.youtube.com/@인천성산교회인천이단
인천성산교회 고광종 담임목사 유튜브: https://www.youtube.com/@tamidnote924
인천성산교회 주소: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장아산로128번길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