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물고기, 정말 삼켰을까?

[궁금했성경] 34화, 과학이 멈춘 자리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

by 허두영

1. 보이는 것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을 해부하듯 살아간다. 물리 법칙으로 낙하를 설명하고, 화학식으로 연소를 증명하고, 생물학으로 생명을 분류한다. 이성의 메스를 든 채, 모든 것을 재단하려 한다. 그런데 그 메스로 성경을 해부하려는 순간, 칼날이 무뎌진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냈다니, 사라가 아흔 살에 아이를 낳았다니, 홍해가 갈라지고, 태양이 멈추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말까지, 도무지 과학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성경은 이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아니, 답할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오히려 불가능의 연속을 당당하게, 심지어 무덤덤하게 기록한다. 왜? 이성의 증명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력서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2. 과학이 멈춘 곳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이야기


성경의 첫 문장부터 과학은 멈춘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무(無)에서 유(有)가 생긴다는 말은, 질량보존의 법칙이 생기기도 전부터 그것을 초월한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노년의 출산, 홍해의 갈라짐, 광야의 만나, 태양의 정지, 사자 굴의 보호, 그리고 요나의 3일. 모두 물리 법칙으로는 불가능한 사건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불가능의 틈새를 통해 자신의 손길을 새긴다. 과학은 '어떻게'를 추적하지만, 신앙은 '왜'를 질문한다. 왜 하나님은 자연의 문법을 깨뜨리셨을까? 답은 간단하다. 자신을 증명하고,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3. 요나의 뱃속 3일, 부활의 그림자


요나의 사건은 불가능 중의 불가능이다. 어떤 해양생물학자도 이 시나리오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산소 공급, 위산 농도, 체온 유지, 공간 확보까지. 이 모든 조건이 '사망'을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 사건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셨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 12:40).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예언이었고, 선언이었고, 복음의 암호같은 것이었다.


요나가 물고기에게 삼킨 것처럼 예수님은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에 삼켜지셨다. 요나가 사흘 후 살아나 니느웨로 향했듯, 예수님은 사흘 후 무덤을 깨고 부활하셨다. 요나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 자였다면, 예수님은 죽음을 끝낸 분이셨다. 요나의 표적은 그래서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부활의 그림자이며, 하나님이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일으키신다”라는 복음의 암호다. 불가능한 사건이 곧 구속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표식이었다. 예수님은 요나의 사건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요나의 사건은 나의 사건이다. 너희가 요나를 믿지 못한다면 나의 부활도 믿지 못할 것이다.”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사를 쓰셨다.


4. 기적은 자연법칙의 위반이 아니라, 창조주의 개입이다


성경의 기적은 자연 질서를 뒤엎기 위한 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한순간 창조주의 권한으로 다시 세상에 개입하신 사건이다. 태양이 멈추었을 때 하나님은 시간의 주인이심을 드러내셨고, 불 속에서 타지 않은 세 친구를 통해 존재의 주권을 보여주셨다. 요나를 통해서는 죽음의 권세조차 하나님 손안에 있음을 선포하셨다.


기적의 본질은 가능성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서사를 쓰기 위해 일시적으로 자연의 펜을 빼앗으신 사건이다. 우리가 그것을 '비과학적'이라 부르는 것은, 아직 그분의 각본을 다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5. 불가능은 믿음의 적이 아니라, 믿음의 무대다


성경 전체는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불가능들이 이어질 때 한 줄의 궤적이 그어진다. 아브라함의 불가능한 출산은 ‘약속의 생명’을, 홍해의 갈라짐은 ‘구원의 통로’를, 요나의 표적은 ‘부활의 그림자’를, 예수님의 부활은 그 모든 불가능의 완성을 의미한다. 결국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보낸 이야기는 비과학이 아니라 복음의 과학, 즉 하나님의 구속 법칙으로 읽혀야 한다. 하나님은 과학이 침묵하는 자리에서 말씀하시고, 이성이 멈추는 지점에서 기적을 쓰신다.


요나의 표적이 믿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상 부활이 믿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그 믿기 어려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 구원의 세계를 열어 보이셨다. 불가능은 믿음의 적이 아니라 믿음의 무대다. 하나님은 그 무대 위에서 자신의 구속사를 써 내려가신다. 그리고 오늘도 조용히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과학이 아니라, 나를 믿느냐?”


그 질문 앞에서 요나의 물고기, 홍해의 갈라짐, 사라의 웃음, 그리고 무덤의 빈자리까지 모두 한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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