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성경] 35화, 주일성수의 회복, ‘해야 한다’에서 ‘사랑한다’로
일요일 아침, 누군가는 이미 출근길에 오른다. 병동의 불빛 아래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 주일 아침에도 공장을 지켜야 하는 노동자, 시험을 앞두고 책상 앞에 앉은 학생, 그리고 오랜만에 가족과 여행을 떠난 이들. 모두의 마음 한켠에는 비슷한 불편함이 자리한다.
"오늘 교회 못 가는데… 괜찮을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갈등을 겪는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다만 현실이, 삶이, 도무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속으로 자신을 정죄한다.
"주일성수를 못하면 나는 불신자인가?" "혹시 하나님이 실망하신 건 아닐까?"
여기서 질문을 바꿔보자. 주일성수는 단순히 '교회 출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앙의 중심을 비추는 거울이다. 왜냐하면 주일성수는 '해야 구원받는 행위'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드리는 사랑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일성수는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구원을 이룬 것은 예배당의 문이 아니라 십자가의 문이다.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라는 말은 경건해 보이지만, 복음의 순서를 뒤집는다. 복음은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순종한다"인데, 율법주의는 "우리가 순종해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라고 말한다. 이 미세한 차이가 신앙을 병들게 한다.
에베소서 2장 8~9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주일성수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열매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거래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말했다. "율법의 목적은 인간에게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게 하고, 오직 은혜에 피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율법은 목적지가 아니라 표지판이다. 표지판이 목적이 되면 신앙은 길을 잃는다.
하나님이 주일을 제정하신 이유는 "하루를 비워라"가 아니라 "내가 너를 책임진다"라는 사랑의 선언이었다. 하나님은 노예처럼 일만 하던 이스라엘에게 쉼을 명령하셨다. 그 명령은 통제가 아니라 초대였다. "너희는 더 이상 애굽의 종이 아니다. 나의 자녀로 살라."
안식일은 해방의 상징이었다. 그 안식의 정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완성되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 다음 날, 곧 주일에 부활하셨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일요일을 ‘주의 날’(The Lord's Day)이라 부르며 함께 모였다. 주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죽음이 생명으로 바뀐 부활의 날이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그러므로 주일성수는 하나님께 시간을 '바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고백이다. 히브리어로 '거룩히 지키다'는 '따로 떼어놓다'라는 뜻이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주일성수란, 세상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 하루를 '떼어드리는 사랑의 멈춤'이다.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시험을 앞둔 학생, 생계를 책임지는 직장인, 가족과의 여행 중인 이들도 있다. 이들이 예배당에 나오지 못할 때 하나님은 책망하지 않으신다. 대신 이렇게 물으신다.
"오늘 너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
하나님은 완벽한 출석보다 진실한 시선을 보신다. 도서관의 책상 위에서도, 병실에서도, 여행길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다면, 그 자리가 예배의 자리다. 주일성수의 본질은 날짜의 준수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다.
예배를 빠졌다고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 출석을 채운다고 구원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예배 없이 살 수 없다. 주일성수는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반사작용이다.
진짜 복음은 사람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 복음은 자유하게 한다. 율법주의가 "해야만 한다"의 종교라면, 복음은 "하고 싶어진다"의 관계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주일성수는 완벽한 출석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시선 고정이다.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드리는 예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선물하지 않듯,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배를 억지로 드리지 않는다. 그 사랑이 발걸음을 예배당으로 이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나는 네가 무서워서 나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네가 사랑해서 나오는 것을 원한다."
이것이 주일성수의 회복이다. 주일은 '해야 하는 날'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날'로 바뀌어야 한다.
주일성수의 회복은, 율법의 굴레에서 사랑의 리듬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주일은 '출석의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친밀한 교제'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초대이며, 우리는 그 초대에 응답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주일성수는 완벽이 아니라 방향, 행동이 아니라 중심, 의무가 아니라 관계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멈추셨듯, 우리도 그분을 위해 하루를 멈추는 것, 그것이 주일성수의 회복이다.
주일성수를 안 하면 지옥에 가는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일을 지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그게 복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출석보다 중심을, 행동보다 사랑을, 완벽보다 진심을 보신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지켜낸 하루가 아니라 돌아온 마음이다.
결국 주일성수의 회복은, "나를 위해 멈추신 하나님을 위해 내가 하루를 멈추는 것." 그 사랑의 방향을 잃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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