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훼방죄, 정확히 뭐지? 정말 용서받지 못할 죄일까?

[궁금했성경] 57화, 복음을 모르는 것과 거부하는 것의 결정적 차이

by 허두영

교회에서 '성령훼방죄'라는 말이 나오면, 묘한 침묵이 흐른다. 목사님도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신자들은 고개를 숙인다. 마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는 '그 죄'를 마주한 것처럼.


이 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용서받지 못하는 죄"라는 말만 귓가에 맴돌 뿐,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흐릿하다. 그저 막연하다. 어떤 이는 예배 중 딴생각한 게 혹시 그 죄가 아닐까 불안해하고, 어떤 이는 하나님께 대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다.


이 모든 두려움의 뿌리에는 '개념의 부재'가 있다. 성령훼방죄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모든 실수가 그 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이 죄의 윤곽을 정확히 그려야 한다. 성령훼방죄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실수의 문제도 아니다. 이건 '결단'의 문제다. 복음을 알고도 믿지 않기로 마음을 닫는, 그 의지적 거부의 문제다. 이 죄를 걱정하는 사람은 이미 그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진짜로 성령을 훼방한 사람은 자기가 죄를 지었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1. 성령훼방죄란 무엇인가?


성령훼방죄를 정의하려면 먼저 성령의 사역을 알아야 한다. 성령은 신비한 능력이나 감정의 바람이 아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하시는 분이다(고전 12:3). 진리를 깨닫게 하고, 죄를 자각하게 하며, 회개의 길로 인도하는 분이다(요 16:8). 따라서 성령훼방이란 그분의 사역,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게 하시는 일을 거부하는 것이다.


헬라어로 '훼방(blasphemia)'은 '거룩한 것을 악하다고 규정하다'라는 뜻이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그들은 눈먼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쫓는 예수를 보고 "저 사람은 귀신의 힘으로 일한다"(마태복음 12:24)라고 말했다. 예수님의 말씀은 칼처럼 그들을 향했다.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1). 그들은 빛을 보고도 "이건 어둠이야"라고 선언했다. 이것이 성령훼방의 원형이다.


따라서 성령훼방죄는 단순히 예수를 모르는 사람의 불신이 아니다. 그건 아직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 무지다. 성령훼방은 복음을 알고도 믿지 않기로 결심한 의지적 불신이다. "예수가 구주라는 걸 안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다." 이 결심이야말로 성령을 거스르는 죄다.


2. 왜 용서받지 못하는가?


이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용서받을 마음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문을 닫지 않으셨다. 하지만 사람이 안에서 빗장을 걸었다. 히브리서 6장은 말한다. "한 번 빛을 받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회개할 수 없나니"(6:6). 이 말은 하나님이 회개를 금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마음이 완전히 닫혀 더는 회개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용서의 능력은 여전히 하나님의 손에 있지만, 용서를 받아들일 통로가 끊긴 상태. 그것이 '용서받지 못함'의 실체다.

이건 좀 섬뜩한 이야기다. 문이 열려 있는데, 손잡이가 안쪽에만 달려 있는 방에 갇힌 사람의 풍경이랄까.


3. 교회 안의 더 깊은 성령훼방


많은 사람이 성령훼방을 교회 밖의 불신자 문제로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의 경고는 교회 안을 향한다. 복음을 가장 잘 알고, 설교하고, 가르치는 사람들 중에도 복음의 주권에 굴복하지 않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의 신앙은 체계적이고 논리적이지만, 실제 마음은 복음의 빛을 가로막고 있다. 이건 무지가 아니라 지식으로 포장된 불신이며 반역'이다. 예수를 말하면서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복음을 알고도 믿지 않기로 결정한 자들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경고한 것도 이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딤후 3:5).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되, 삶으로는 부인하는 자들. 그들이 성령을 훼방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4. 흔한 오해 다섯 가지


1. "말로 욕하면 훼방이다?" 아니다. 말이 아니라 마음의 결단이 문제다.

2. "두려워서 의심했는데 나도 그 죄인가?" 아니다. 의심은 신앙의 과정, 훼방은 거절의 결정이다. 도마는 의심했지만 결국 무릎을 꿇었다(요 20:28).

3. "성령의 일인지 몰라서 판단했는데?" 분별은 신앙의 책무다.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요일 4:1)라는 명령이 성경에 있다.

4. "하나님이 그를 버리신 건가?" 아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기다리신다.

5. "회개의 가능성도 완전히 사라졌나?" 아니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마음이라면 성령은 여전히 부르신다. 성령훼방은 하나님이 자비를 철수하신 게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자비를 밀어낸 사건이다.


5. 복음은 여전히 열린 문이다


성령훼방의 경고는 공포가 아니라 은혜의 경고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벧후 3:9). 따라서 교회는 어느 누구에게도 "당신은 끝났어"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전도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 성령은 오늘도 문 밖에서 두드리신다(계 3:20). 어쩌면 그 두드림은 교회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한 소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복음을 알면서도 복음에 굴복하지 않은 채, 습관과 체계와 전통 안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 3:20)라는 말씀은,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 라오디게아에 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6. 결론 - 빛을 본 자가 눈을 감을 때


성령훼방은 빛이 사라진 사건이 아니라, 빛을 본 자가 스스로 눈을 감은 사건이다. 그 어둠은 형벌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 문 앞에 서 계신다. 문이 다시 열리는 날, 성령은 다시 그를 부르실 것이다. 성령훼방죄의 본질은 '예수를 믿지 않기로 한 마음의 반역'이다. 용서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회개의 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나는 예수를 안 믿고 있는가, 아니면 믿지 않기로 결심하고 있는가?"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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