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성경] 79화,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그러나 일본 육군 정보 장교였던 오노다 히로오는 필리핀 루방섬의 밀림에서 29년을 더 싸웠다. 종전 소식이 가짜라 믿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고, 그래서 여전히 전쟁 속에 갇혀 살았다. 많은 기독교인이 그렇다. 십자가는 2000년 전에 완성되었는데,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마음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영생 및 구원의 확신이 없는 이유는 대부분 신앙심 부족이 아니라 복음의 미적용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객관적 사건을 나를 위한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후 13:5). 바울은 체험, 은사, 봉사, 직분 같은 행위에 기대던 고린도 교회에게 기준을 바꾸라고 선포한다. 시험의 기준은 뜨거웠던 밤의 눈물도, 직분의 무게도 아니다. 오직 복음이다.
오늘 우리도 고린도 교인과 다르지 않다. "나는 오래 다녔으니, 봉사하니, 방언하니… 구원받았겠지." 그러나 확신이 흔들린다면, 그 근거가 복음이 아닌 나의 무엇에 기대기 때문이다. 바울의 명령은 잔인할 만큼 정확하다. 너 자신을 시험하라. 무엇으로?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죄'를 처리했다는 복음으로.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리운 자니라."그는 단언한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나는 정말 구원받았는가?" 만약 이 물음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의 정체를 직시해야 한다. 확신의 부재는 대부분 복음의 오해에서 온다.
성경은 죄를 두 종류로 가르친다. 하나는 원죄로 과거의 죄, 아담 안에서의 죄, 반역죄를. 다른 하나는 자범죄로 미래의 죄, 내가 일상에서 짓는 죄를 일컫는다. 이 구분이 흐려지면, 영생의 확신, 구원의 확신은 무너진다. 원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영은 여전히 죽어 있고, 사람은 평생 두려움 속에서 산다. 반대로 자범죄를 원죄처럼 취급하면, 이미 자녀인데도 매번 신분이 취소될까 전전긍긍한다.
확신은 정확한 구분에서 시작한다. "무엇이 이미 끝났고(원죄), 무엇이 지금 다뤄지는가(자범죄)?" 이 대답이 선명할수록 믿음은 견고해진다. 그렇다. 영생의 확신,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은 죄 문제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서다.
사람은 과거의 죄, 곧 원죄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한다. 원죄는 속사람(영)이 지은 죄로 태어나기도 전에 지은 죄이다. 사람은 원죄 때문에 죽는다. 하지만 이 죄는 회개를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성경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 이미 2000년 전에 원죄 문제를 해결해 놓으셨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음이 적용된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이다.
다음의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원죄를 간과하셨고, 기억하지 않으시고, 도말해 주셨다는 것을 믿고 나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 보라.
1) 간과하심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바울은 그리스도의 피를 '화목제물'이라 부르며, 하나님이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고 선언한다. 간과는 그냥 '눈감아줌'이 아니다. 공의가 이미 충족되었기에 법정이 지나가 버린 판결이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죄의 형벌을 이미 그리스도께 돌리셨고, 따라서 우리 앞의 칼날은 더 이상 머물 권리가 없다. 믿음은 막연한 끄덕임이 아니라 이 판결문을 나의 판결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2) 기억하지 않으심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0:17)
전능한 분이 잊어버리셨다? 신학적으로 이는 언약적 망각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원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우리가 죄책감을 재소환할 때, 사실은 하나님이 없는 파일을 내가 꺼내 오는 셈이다. 확신이 흔들리는 대부분의 성도는 하나님의 망각보다 자기 기억을 더 신뢰한다. 믿음은 내 기억을 이기고 그분의 망각을 믿는 것이다.
3) 도말하심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같이 네 죄를 안개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 44:22)
도말(塗抹)은 페인트칠해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다. 법적 기록이 지워졌다. 주목할 것은 순서다. "도말(완료) → 돌아오라(초대)." 회개하면 용서가 되는 게 아니라, 용서해 놓으셨기 때문에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복음은 "돌아오면 용서해 줄게"가 아니라 "이미 도말했으니 이제 돌아오라"다.
이 세 복음은 하나로 합쳐진다. "그분이 하셨다. 완전히. 영원히. 법적으로." 그래서 구원은 단번의 신분 변화다. 거듭남, 의롭다 하심, 자녀됨은 모두 이 복음으로 해결된다. 여기에 인간 행위가 끼어들 틈은 0.00000%다. "복음 + 무엇이라도 = 다른 복음." 확신은 감정의 뜨거움이 아니다. 간과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시고 도말하심을 나에게 적용할 때 생기는 법적 평안이다. 종전은 끝났다. 이제 숲에서 나올 차례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내가 또 죄를 지으면 지옥 가는 거 아냐?" 원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이미 신분은 바뀌었다. 살다가 자범죄를 지어도 징계받을지언정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자범죄는 미래의 죄, 겉사람(육신)이 지은 죄, 내가 지은 죄다. 자범죄는 이 땅에서 다루는 것이며, 구원과는 상관없다. 성경에서는 미래에 지을 죄인 자범죄도 해결하셨다. 성경이 제시하는 방법은 놀랍도록 명료하다.
1) 정죄함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 8:1~3)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구원받고 20여 년이 흐른 뒤에 쓴 것이다. 그가 구원 받은 후 지은 죄인 자범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께 소속되었고,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갈3:27),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구원 받지 못하고 마귀에게 소속된 자다. 바울은 선언한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미래의 죄는 구원 취소의 스위치를 건드릴 수 없다.
2) 죄와 멀리 분리되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이 말씀은 다윗이 구원 받은 후 인생 황혼기에 쓴 시다.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니 자신의 수많은 죄를 지었으나, 그 죄와 자신의 거리가 다시는 만나지 않는 무한대의 거리로 옮겨 주셨음을 선언한다. 그가 회개하지 않은 죄도 얼마나 많았겠는가? 만약 하나님께서 그 죄를 따라 일일이 정죄했다면 육신이 온전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10절에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벌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다윗은 고백한다. 그런 자신을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고(시 103:13), 자신이 죄를 짓는 체질임을 아시는(시 104:14)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3)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셨다
"그가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실 것이요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9)
하나님께서 깊은 바다에 죄를 던져버리셨으니 다시 찾을 수도 없다. 하나님은 아들을 버리지 않는다. 대신 훈련한다. 징계는 파괴가 아니라 치유다. 징계가 오면 정죄로 오해하지 말고, 훈련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미래의 죄는 신분의 문제가 아니며, 하나님과의 관계, 징계, 성화의 문제다. 그러니 회개는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범죄를 씻는 일이다.
오노다는 명령서를 믿지 못해 29년을 숲에서 보냈다. 오늘 어떤 교인은 자기 기억을 하나님의 기억하지 않으심보다 더 신뢰한다. 십자가는 이미 끝났다. 간과하심, 기억하지 않으심, 도말하심은 문장 속 동사가 아니라, 나의 무죄함을 확증하는 법적 선언이다. 확신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이루신 사실을 나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쟁은 이미 끝났다. 이제 숲을 나오라. 영생의 확신은 막연한 심리적 위로가 아니다. 복음으로 확증받고 법적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이 평안이야말로 거듭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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