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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가 정확히 뭐예요?

[궁금했성경] 81화,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삼위일체의 구속 드라마

by 허두영

1. 하나님은 혼자가 아니다


인간의 언어로 하나님을 설명하는 일은 바닷물을 손바닥에 담으려는 일과 비슷하다. 우리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문장을 암송하면서도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이라고 셋으로 부른다. 이 수수께끼 같은 진실을 깨닫지 못하면 신앙은 머물고, 논리로만 붙들면 신앙이 메마른다. 성경은 논문처럼 증명하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로 보여준다.


창세기 첫 장면이 그렇다. 성부가 ‘창조’하시고, 성령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며, 성자가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다. 그러자 혼돈은 질서로, 공허는 충만으로, 흑암은 빛으로 바뀐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첫 사역인 창조에는 이미 구속의 원리가 새겨져 있다.


2. 창조의 장면 - 혼돈 위에 드러난 삼위의 손길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로 시작한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엘로힘, 복수형이다. 창조의 설계자인 성부, 질서를 준비하시는 성령, "빛이 있으라"(창 1:3) 하고 명령하신 성자, 그분의 말씀으로 세계가 탄생했다.

혼돈은 질서로, 공허는 충만으로, 흑암은 빛으로 바뀐다. 이 패턴이 그대로 인간 구원에도 반복된다. 죄로 무너진 인간의 혼돈을 성부가 질서로 세우시고, 비어 있는 마음을 성령이 채우시며, 흑암 같은 영혼을 성자가 빛으로 살리신다. 그러니까 창세기의 창조는 단순한 자연의 시작이 아니라, 복음의 리허설이랄까. 구속사는 창세기 1장에서부터 시작된다.


3. 구속의 구조 - 한 구원, 세 역할


성부는 구원의 설계자, 성자는 구원의 성취자, 성령은 구원의 적용자이다. 성부 하나님은 구원을 계획하시고(엡 1:36), 성자 예수님은 구원을 이루시고(요 19:30),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을 적용하셨다.(요 3:58, 엡 1:13~14)

세 위격은 결코 따로 일하지 않으신다. 한 분이 세 길로, 세 분이 한 뜻으로 일하신다. 모든 것이 성부로부터(from the Father) 시작되어, 성자를 통하여(through the Son) 이루어지고, 성령 안에서(in the Spirit) 우리에게 적용된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맥이다.


4. 삼위일체의 세 축 - 존재, 관계, 사랑의 균형


삼위일체를 이해하려면 3가지 축을 알아야 한다.


첫 번째, 존재의 축이다. 본질(essence)은 하나로 존재한다. "여호와는 오직 하나"(신 6:4). 신성을 가진 나뉘지 않는 유일신이라는 것이다. 본질은 ‘무엇인가(what)?’의 답이다.


두 번째, 관계의 축이다. 위격(persons)이 셋인데,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별된다(마 28:19). 위격은 ‘서 있는 위치’를 뜻하는 자리 위(位)와 ‘성품’, ‘개성’, ‘인격적 특성’을 의미하는 품격 격(格)이 합쳐진 한자어다. 위격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인격의 자리와 성품이다. ‘하나님은 누구인가(who)?’의 답이다.


person의 어원은 라틴어 persona이다. 이건 본래 고대 그리스 연극의 ‘가면’에서 왔다. 배우 한 명이 여러 가면을 쓰고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 가면이 바로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얼굴’을 뜻했다. 교부들이 이 단어를 택한 이유는, 하나님이 세 ‘가면’을 번갈아 쓰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세 ‘관계적 얼굴’이 있다는 걸 표현하려 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세 방식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세 인격으로 서로 관계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어거스틴의 ‘사랑’의 고전적인 비유가 대표적인데, “성부는 사랑하는 자, 성자는 사랑받는 자, 성령은 그 사랑 자체다.” 이건 삼위일체의 본질을 사랑으로 본 비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라고 하셨듯. 그 말은 하나님 안에 사랑의 근원(아버지), 대상(아들), 소통(성령)이 이미 존재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축인데, 셋은 동일하고 영원히 공존하며 서로 내주한다(perichoresis). 즉 세 위격은 서로 안에 거하시며(요 14:10~11), 영원히 동등하시다. 이 축이 흔들리면 서열론(=종속론)이 된다. 존재는 하나, 위격은 셋, 관계는 동등. 세 축이 어그러지면 교리는 균형을 잃는다.


5. 세 가지 왜곡 - 삼위일체를 잃어버린 신학


오해는 언제나 한쪽을 과장하고 다른 쪽을 삭제한다. 세 가지 왜곡이 대표적이다.


먼저, '삼신론'은 구별을 과장하고 일치를 삭제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셋이 되어버린다. "세 신이 협력한다."라는 오해는 유일신 신앙을 붕괴시킨다.

다음, '양태론'은 일치를 과장하고 구별을 삭제한다. 하나님은 변신의 달인이 된다. "물-얼음-수증기"라는 비유는 결정적 문제가 있다. 동시적 공존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서열론(종속론)'은 질서를 과장하고 동등을 삭제한다. 성자는 하위, 성령은 더 하위라고. "태양-빛-열" 비유로 본질의 동등이 종속으로 격하된다.


하나의 본질을 붙들어 삼신론을 막고, 셋의 위격을 붙들어 양태론을 막고, 관계의 동등을 붙들어야 종속론을 막을 수 있다.


6. 성경 전체의 리듬 -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구약의 하나님은 설계자이시며, 복음서의 예수는 성취자이시고, 사도행전의 성령은 그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성경의 모든 장면은 이 흐름 위에서 흘러간다. 성부의 뜻이 성자의 순종으로 나타나고, 성령의 능력으로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한다. 마치 성경은 한 분 하나님의 세 박자 교향곡이라고 할까.


성부의 약속 → 성자의 성취 → 성령의 인침(엡 1:3~14)

성부의 뜻 → 성자의 말씀 → 성령의 조명(요 14~16)

성부의 보냄 → 성자의 순종 → 성령의 권능(마 3:16~17, 행 2장)


이 흐름이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관통한다. 창조의 장면에서는 혼돈이 질서로, 공허가 충만으로, 흑암이 빛으로 바뀐다. 구원의 구조에서는 죄인이 의롭다 함을 얻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원수에서 자녀로(롬 8:15) 변한다. 완성의 순간에는 눈물이 닦이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계 21~22). 우리는 이 맥락 안에서 성경을 읽는다. 성경은 나의 성공을 돕는 매뉴얼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대서사다. 그러니 이 관점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7. 삼위일체에 대해 가장 혼동하는 7가지


1) 하나님이 한 분인데 어떻게 셋인가요?

→ 하나님은 본질에서는 하나이며, 위격에서는 셋이시다.


2)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왜 아버지께 순종했나요?

→ 성자는 본질적으로 동등하지만(빌 2:6), 구속사 안에서 사랑의 질서 안에 순종하셨다.


3) 성령은 힘인가요, 인격인가요?

→ 인격이다. 말씀하시고, 뜻하시고, 근심하신다(엡 4:30). 성령은 불과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다.


4) 삼위일체를 물-얼음-수증기로 설명하면 안 되나요?

→ 안 된다. 그건 양태론이다. 삼위는 동등하게, 영원히, 상호 내주하며 공존한다.


5) 구약에는 삼위일체가 없나요?

→ 있다. 다만 암시적 계시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창 1:26)


6) 삼위 사이에 순서나 서열이 있나요?

→ 없다. 존재의 동등성 안에 역할의 질서만 있다. 서열이 아니라 일종의 사랑의 순환이다.


7) 삼위일체를 꼭 알아야 구원받나요?

→ '완벽히 설명'은 못해도 '누구를 믿는지'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의 계획, 성자의 성취, 성령의 적용 안에서 일하시는 한 분이시다.


8. 결론 - 삼위일체, 구속의 언어


삼위일체는 관계의 문제다. 하나님은 혼자가 아니시다. 그분 안에는 영원한 사랑의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이 '관계적 존재'로 창조된 것이다. 사람이 고립될 때, 삼위 하나님의 형상이 무너진다.

삼위일체는 딱딱한 신학이 아니라 구원의 공식이다. 성부가 질서를, 성령이 충만을, 성자가 빛을 가져오신다. 그 질서와 충만과 빛이 교회와 성도 안에 재현될 때, 삼위일체는 철학이 아니라 삶이 된다.


삼위일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으로 일하신 방식을 깨닫는 일이다. 그분은 분리된 셋이 아니라, 완전한 사랑의 하나이시다. 그 사랑의 흐름 속에서 성경이 쓰였고, 구원이 이루어졌고, 지금 우리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 한 분은 성부·성자·성령, 셋의 위격으로 영원히 동등하시며 서로 안에 거하신다. 성부는 계획하시고, 성자는 이루시며, 성령은 적용하신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그리고 오늘 내 삶까지. 그분의 구속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허두영 작가


현) 인천성산교회 안수집사, 청년부 교사

현) 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 요즘것들연구소 소장


인천성산교회 홈페이지: http://isungsan.net

인천성산교회 l 인천이단상담소(상담 및 문의): 032-464-4677, 465-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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