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앞에서
입학만 하면 장땡일 줄 알았던 대학 시절에는 도통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초조함이 내내 온몸을 휘감았다. 지적 성장의 발판이 되어줄 것 같았던 대학교는 고등학교의 연장선 같았고, 동시에 성공적인 사회 진입을 위한 노골적인 사교판처럼 보였다. 동아리 활동 덕(인지 탓인지)에 내 인간관계에도 발톱 만한 진전은 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뭘 하든 결국 술로 귀결되는 신비로운 시기이기도 했다.
장학금을 받아 학빚(학비+빚) 더미에도 겨우 숨통이 트였고, 매달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채워가던 때였다. 여유로운 것도 아닌데 매일 같이 술판을 벌이니 통장은 번번이 앵꼬가 났다. 머리는 점점 굳어 갔고 속도 엉망진창이었다.
어김없이 술잔을 비워가던 어느 날, 세상이 빙글 뱅글 돌아가기 시작하다가 돌연 커다란 잔상이 눈앞에 또렷하게 나타났다. 한때는 흉측하기 그지없다며 사람들의 온갖 모욕을 들었던 철골 구조물, 에펠탑이었다. 이상한 타이밍에 나를 찾아온 그 이미지는 술잔 위에서 춤추듯이 아른거렸다.
그 커다란 잔상을 품에 지닌 채 집에 돌아온 나는 덜컥 휴학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에펠탑을 향한 나의 막무가내 짝사랑은 시작이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것이었다. 동기가 될 법한 장면조차 유추할 만한 게 없었다. 그저 10대 후반 어느 시점부터 나는 그 쇳덩이에 사로 잡혔다. 그렇다고 대단히 열렬한 짝사랑도 아니었다. 잘그럭거리는 동전지갑을 열어 에펠탑이 그려진 필통이나 엽서, 일기장 같은 것들을 소소하게 사모으는 것이 전부였다.
휴학 버튼을 누르고도 10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에펠탑 앞에 가 설 수 있었다. 앵꼬 난 통장으로는 제주도까지 갈 연료조차 없었으므로 9개월 동안 이곳저곳에서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잘그락거리는 동전을 차곡차곡 채웠다. 시급 삼천 원에서 사천 원 사이를 오르내렸던 9개월 동안 내 수첩에는 몇 번이고 유럽 여행의 루트가 그려졌다 지워지길 반복했다. 겨우 오백만 원에 가까운 돈을 모아 항공권을 사고, 여행 배낭과 카메라, 각종 자물쇠와 복대를 샀다.
나는 정말로 커다란 배낭 하나만 맨 채 유럽에 갔다. 스물둘, 여자, 혼자, 배낭의 콤비네이션을 완성한 여행객은 “아니, 한국 사람들 다 유럽에 있었구먼?”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대륙 곳곳에 넘쳐나던 한국인 중에서도 드문 편이었다.
첫 번째 도시였던 런던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길을 헤매고, 넘어지고, 경계하고, 겁에 질려 울고, 시차 적응을 못해 코피를 흘렸다. 사흘은 그렇게 정신없이 흘렀다. 상관없었다. 런던이야 뭐 어떻든. (좋았지만.) 내게는 파리가, 에펠탑이 있으니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파리로 넘어갔다. 저녁 늦게서야 도착한 한인 민박은 도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알고 보니 밤마다 파티를 열어 부어라 마셔라 하는 통에 잠자는 이들은 뒷전인 곳이었다. 나는 이층 침대 바로 옆에 모여 앉아 밤새 떠들어대는 여행객(심지어 사장이 주도한) 사이에서 파리와 낭만스러운 첫날밤을 보냈다. 그래도 그런 건 다 문제도 아니었다. 내일이면 에펠탑을 보게 될 테니까!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외곽에서 탄 지하철이 먼 길을 돌아 도시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내 가슴도 점점 크게 뛰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건물을 헤쳐 나오니 덩그러니 에펠탑이 눈앞에 나타났다.
작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작년 내 술잔 위에서 어지러이 춤을 추었던 에펠탑의 잔상이 더 커다랗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한 걸음씩 에펠탑 가까이 다가갔다. 긴 시간 품어온 짝사랑 상대의 실물을 처음 보게 되는 거였다. 매번 유튜브에서만 보던 아이돌의 콘서트를 직접, 그것도 스탠딩에서 볼 때의 기분이랄까.
가슴에서 펑하고 풍선 터지는 소리가 났다. 행복 같기도 했고,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만족감 같기도 했다. 9개월 간 돈 좀 벌겠다며 흘렸던 땀과 눈물도 떠올랐다. 동시에 알 수 없는 허망함도 찾아왔다.
나는 에펠탑에 더 다가가지 않고 한눈에 들어오는 거리에 주저앉았다. 눈싸움을 하듯 한동안 꿈쩍도 않는 에펠탑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에펠탑이 조금 애처로워 보이기 시작했다.
너처럼 나도 혼자인데 말이야.
그 생각을 언어로 만들어내는 순간 살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쳤다.
나는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아는 사람들의 얼굴 몇이 눈앞을 스쳐 지났다. 문득 엄마는 평생 에펠탑 한 번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고, 평소 효녀라는 타이틀과는 서울과 파리의 거리만큼이나 먼 주제에 염치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스스로 무안해질 정도로 현실적인 감정이 찾아왔다.
배고파.
나는 짝사랑 상대에게서 아주 무심하게 뒤돌아 섰다. 사랑도 허기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근처 스테이크를 파는 식당에 들어갔고, 언제 그리 서글피 울었냐는 듯 씩씩하게 고기와 와인을 씹어 삼켰다.
든든히 찬 배를 뚜들기며 길을 나섰다. 오른 켠에 에펠탑이 힐끔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다시 한번 에펠탑을 마주 보고 서서 가만 그것을 바라보았다.
왜 나를 울렸니.
짧은 투정을 부리고 돌아섰다.
그 이후로 파리에 있는 내내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에펠탑을 마주 보고 서거나 근처 잔디에 앉아 에펠탑을 바라보며 바게트를 뜯었다. 처음처럼 눈물을 흘리거나 괜히 서울에서 잘만 지내고 있을 엄마 생각을 하진 않았다.
대신 그냥 한없이 눈에 담아보거나 곁에 가서 내 할 일을 했다. 한량처럼 있다 보니 여러 관광객의 사진사가 되어주기도 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활짝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관광객들을 수없이 찍어 주면서도 정작 나는 에펠탑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없었다. 그 사실도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야 깨달았지만.
떠나야 하는 날이 왔다. 나는 괜히 길을 돌아 마지막으로 에펠탑을 보러 갔다. 작별인사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굳이 가까이 가지 않았다. 센 강을 잇는 다리 한가운데에 서서 에펠탑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처럼 생각보다 작고,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 그대로였다.
며칠이나 봤다고 그새 익숙하게 느끼는 스스로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났다.
또 보자.
입 밖으로 내자마자 또 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집에 돌아가려면 아직도 3주가 남았는데, 고작 두 번째 도시일 뿐인데 나는 벌써 커다란 이별을 마주한 것처럼 굴었다.
한바탕 울고 나니 후련해졌다. 고개를 돌려 센 강을 건넜다.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파리의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문득 나는 나를 이곳으로 불러온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실은 항상 내 곁에 있었던, 서울에서부터 파리에까지 단 한순간도 내게서 떨어진 적 없던
외로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