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하와이의 거북이

by 새벽나무

“이런 곳에 있다고?”


휑한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S에게 재차 물었다.


“여기 내비에 나와 있는데. 터틀... 베이...”


S가 차를 빌리며 옵션으로 달았던 구식 내비게이션 화면 가까이 고개를 들이대며 더듬더듬 지명을 읽었다.


“뭐, 일단 나가보자.”


인천공항에서 거금을 내고 빌려온 와이파이 에그는 별 힘도 못쓰고 있었다. ‘터틀 베이'를 검색한 J의 스마트폰은 순백의 화면 위로 원만 뱅글뱅글 돌리고 있었다. 나는 조수석 차 문을 열고 몸을 길게 빼내어 뒤켠에 절벽을 바라보았다.


“거북이 찾으러 가는 거야?”


상기된 목소리의 J가 쏜살같이 차에서 튀어 나갔다. 잠시 눈을 붙이겠다는 S만 차에 남겨둔 채 J와 나는 거북 찾기 탐험에 나섰다. 이른 새벽부터 혼자 운전하느라 피곤할 터였다. 거북이가 있을 리 만무한 곳이었지만, S에게 휴식도 줄 겸 우리는 슬렁슬렁 절벽으로 걸어갔다. 파도가 철벅철벅 벽에 닿는 소리가 폭포 소리처럼 웅장하게 들렸다.


“조심해.”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무질서하게 엉겨 있었다. 수영복 위에 얇은 원피스만 걸치고 있던 우리는 알록달록 장난감 같은 쪼리에 몸을 싣고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넘어지면 금세 피투성이가 될 터였다.


“우리는 다쳐도 되지만 바위가 피로 물들면 안 되잖아.”

“기껏 거북이랑 만났는데 피라도 묻히면 어떡해! 상어한테 잡아 먹혀!”

“근데 상어가 거북이를 먹어?”

“못 먹나? 등껍질 때문에...?... 거북이 짱이다!”

“맞아, 거북이는 짱이야!”


이상한 헛소리를 주고받으며 웃느라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점심에 곁들인 맥주 한 잔에 취기가 오른 모양이었다. 아니, 이른 새벽부터 길을 달려와 해치운(혹은 해낸) 첫 일정이 스카이다이빙이었던 게 문제일지도 몰랐다. 그 짜릿하면서도 환상적이고 무시무시한 낙하를 경험한 우리는 하루 종일 헤롱헤롱, 헤실헤실댔다.


사실 어쩌면 지금 이곳이 하와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일지도 몰랐다. ‘지상 천국’이라는 진부한 수식어가 뻔질나게 반복되는 이유가 있었다. 하와이는 바다도, 하늘도, 산도, 들도 모두 찬란했다. 호텔이나 쇼핑몰, 식당이 온통 모인 와이키키의 도로조차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날씨조차 후덥지근하거나 끈적거리지 않는, 그러나 수영하기에 딱 좋은, 그야말로 완벽한 여름 같았다.


그런 비현실적인 곳에 있다 보면 모든 게 다 꿈처럼 몽롱했다. 술을 안 마셔도 취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내내 시답잖은 농담에도 아주 즐거워했다.


“라니아케아 비치로 가래!”


그새 차에서 나온 S가 핸드폰을 쥔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소리쳤다.


애초에 “코앞에서 거북이를 볼 수 있는 해변이 있대. 일몰 보기에도 좋다는데?”라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터틀을 검색한 게 문제였다. 고물 내비게이션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 ‘터틀 베이’라는 곳을 추천해주었고, 터틀 베이라니 뭐, 터틀이 있겠거니, 하고 무작정 달려온 것이다. 이 무슨 멍청이들의 티키타카인가 싶겠지만 아무튼 이게 다 하와이 때문이다.


나와 J는 힘겹게 바위를 들추면서 “여기 있니, 거북아.” 하던 참이었다. 지금 밟은 게 바위인지 거대한 거북이의 등인지 어떻게 아냐며 또 한참을 낄낄대고 있었다. S의 말에 우리는 서로를 부축하며 다시 뒤뚱뒤뚱 차를 향해 걸어갔다.


라니아케아 비치에서는 한낮에 거북이가 햇살을 쬐며 잠을 자고 휴식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실컷 잠을 자고 해가 질 즈음이면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게 그들의 일정이었다. 딱히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가만 잠을 잘 뿐이었다. 아니 그걸 굳이 왜 찾아가서 봐?라고 묻지 말라. 여기는 하와이다.


터틀 베이를 헤매던 중에도 시간은 착실히 흘렀다. 거북이 퇴근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정말 딱 한숨 자고 일어난 S는 그래도 기운이 찼는지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 이제는 낯선 하와이 도로에서도 운전을 곧잘 했다.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라니아케아 비치에 도착한 우리는 차를 세운 뒤 함께 해변가로 찬찬히 내려갔다. 하와이에선 길을 잃고 일정이 꼬여도 왜인지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 모래 위로 검은 형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와 멀지 않은 곳에 하나, 둘, 세 마리 거북이가 각자 자리를 잡고 쿨쿨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을 둘러서 안내선이 쳐 있었고, 거북이들 앞에 각자의 이름과 나이가 적힌 팻말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안내선 바깥에 놓인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쉴 새 없던 수다도 멎었다. 눈 앞엔 바위에 턱을 얹은 채 미동도 없이 자고 있는 거북이가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묵묵하고 꿋꿋하게 낮잠을 잤다. 어느새 꽤 많은 사람들이 해변에 몰려들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거북이를 깨울까,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곤 했다.


말없이 거북멍(?)을 때리던 우리는 부쩍 소란스러워진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다와 가장 가까이 있던 거북이 한 마리가 눈을 떠 슬금슬금 몸을 돌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6시가 다 되어가는 중이었다.


“칼 같네.”

“그렇지, 퇴근은 칼같이 해야지.”

“역시 하와이에서는 거북이도 칼퇴를 하는구나.”

“칼퇴 아니고 정퇴. 정시퇴근이지.”

“우리는 거북이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네.”

“하와이에서 노숙자로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아.”


언제 그쳤냐는 듯 다 같이 입을 열어 한껏 헛소리를 주고받았다. 처음 퇴근길에 오른 거북이가 거의 파도에 맞닿을 즈음 두 번째 거북이도 한쪽 앞발로 모래를 밀며 몸을 틀고 있었다. 우리 앞에 있던 거북이만 잠잠했다.


“너도 얼른 일어나. 집에 가야지.”

“깊게 잠들었나.”


우리는 왜인지 진심으로 걱정하며 거북이가 깨기를 간절히 바랐다. 우리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거북이도 곧 살포시 눈을 떴다.


“오 일어났어.”

“그래그래 얼른 집에 가자.”


그때 거북이가 눈을 굴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오묘하고 신비로운 눈빛이 우리를 차례차례 훑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시선이 지나고 바위에서 턱을 든 거북이는 바다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방금... 뭐야?”

“약간 우리 한심하게 보지 않았어?”

“참 인간들 할 일도 없다, 이런 느낌이었지?”


시답잖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괜히 거북이한테 툴툴거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셋 모두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으로 가슴이 콩콩 뛰고 있었다. 꿈같은 시선이었다. 거북이는 천천히 몸을 돌려 바다를 향해 조금씩 모래를 타고 갔다. 우리는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안녕. 안녕. 안녕. 인사했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S가 먼저 바위에서 엉덩이를 떼며 말했다. 우리는 차례차례 일어나 거북이가 돌아간 바다와 등을 졌다.

우리가 나눈 짧은 시선을 아주 오래 그리워하게 될 것을 직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