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오지 않는 벽화마을에서
내내 죽고 싶다는 생각에 매여 있을 때가 있었다. 스물 다섯 때 일이다. 두 번째 휴학계를 내고 방구석에 누워 시간을 죽이는 일을 했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어도 마냥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사는 데엔 돈이 들었다. 일주일에 다섯 번은 동네에 있는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네다섯 시간 서빙 일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좋았다. 동기들은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거나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나는 내 미래가 두려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찬란하고 빛나는 모습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 더 두려웠다. 좋은 걸 알지 못하니 상상의 크기도 작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언제 죽어야 할지 고민했다. 모든 것엔 딱 맞는 타이밍이 있을 것 같았다.
당시 사귀었던 애인과 전주 여행을 가기로 했다. 금요일 회사 일이 끝나고서야 출발할 수 있는 그를 두고 나는 아침 일찍 먼저 여행길에 올랐다. 초여름의 전주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처음 가본 한옥마을은 아담하고 단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 같진 않았다. 소박한 한옥 숙소들이 드문드문 있었고 그 골목길을 단정한 카페나 가게, 식당이 채우고 있었다. 나는 단숨에 그 고요함에 매료되었다. 미리 예약해두었던 한옥 숙소로 향했다. 육중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사각형의 마당을 품고 있는 작은 한옥집이 나왔다. 양옆에 방이 있고 한가운데 난 마루가 마당과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마루에 놓인 탁자 앞에 앉아 초여름의 열기를 식혔다. 사장님이 내어준 시원한 오미자차를 들이켰다. 빨갛고 차갑고 신 액체가 온몸으로 퍼졌다.
짐을 풀고 나와 한옥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벽화마을로 향했다. 산 아래 구석에 위치한 허름한 마을이어서 그런지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작게 흐르는 개울천을 옆에 끼고 알록달록 그림이 새겨진 흰 벽들이 보였다. 산 입구까지 이어진 오르막길이었다. 골목 사이로도 꼼꼼하게 나비나 날개, 어린아이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집을 둘러싼 벽도, 그 안에 놓인 집도 모두 키가 작았다. 나는 어깨쯤까지 오는 담장 사이사이를 걸었다.
한낮이 되니 해는 더욱 맹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흰 벽에 반사되어 나오는 햇빛에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좁은 길이었다. 머리 위가 뜨끈뜨끈했다. 무방비로 노출된 팔다리가 따끔했다. 고무 샌들의 밑창이 울퉁불퉁한 길에서 힘없이 꺾이고 흔들렸다. 새빨갛게 물들던 발가락 위로 물집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송골송골 맺히던 땀은 곧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서늘했던 마루에서 담아온 물을 거듭 마셨다. 물도 조금씩 미지근해져 갔다. 길을 천천히 오르며 골목을 헤매던 중에도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았다. 관광객뿐 아니라 주민들도 보이지 않았다. 개울천 건너편에는 풀숲과 경계가 모호한 집들이 몇 채 놓여 있었다. 삶의 흔적으로 흉터만 남은 집들 사이로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있었다. 그 아래 평상에 몇 안 되는 주민들이 부채질을 하며 앉아 있었다. 그들은 내게 아주 짧은 시선을 두고 말았다. 아주 먼 곳에 와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발가락 사이사이 물집이 잡히고 종아리가 뻐근할 정도로 굳어 왔다. 그래도 나는 걷기를 멈추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하얀 잔상만 남을 정도로 강렬한 햇빛에도 계속 걸었다. 마을 꼭대기에 닿고서야 몸을 돌려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아찔해지는 기분에 벽을 짚고 주저앉았다. 온몸이 땀으로 함빡 젖었다.
나는 한참을 꼼짝하지 않은 채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만 들었다. 심장의 존재를 그토록 강렬하게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귓가도 둥둥 울렸다. 손가락 끝까지 아주 얇은 핏줄이 콩콩 뛰는 게 느껴졌다. 눈을 감은 채로 나는 땅바닥에 털썩 누웠다. 얼굴에 정면으로 햇빛이 내리쬤다. 나는 각오하듯 눈을 바짝 떠서 태양을 바라보았다. 몇 초 참아내지도 못한 채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 안이 온통 하얀빛으로 물들었다. 어둠보다 짙은 빛이었다. 배에서 간질간질 무언가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실소였다. 나는 시멘트 바닥에 대자로 누워 실실 웃었다. 크게도 웃었다. 내 마음도 몰라주고 영영 살아보려고 하는 몸이 우스웠다.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하는 게 웃겼다.
얼마쯤 지났을까, 모든 감각이 무뎌질 즈음 나는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천천히 눈을 떠서 다시 그 길을 내려다보았다. 개울천이 쉼 없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올라온 길이니 내가 내려가야지. 벽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사이사이 물집 잡힌 발과 너덜대는 샌들을 보았다. 여전히 뜨거운 태양에 몸은 식을 새도 없이 뜨끈뜨끈했다.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생각보다 가벼운 발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