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들

론다의 절벽을 바라보며

by 새벽나무

그날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만난 이방인들이었다. 서울에서 한 번 보았던 R은 우리의 두 번째 낮이자 첫 번째 밤에 T를 데려왔다. 함께 묵기로 한 숙소에는 커다란 방이 3개나 있었다. 거실과 이어진 아담한 발코니가 절벽과 이어진 구조의 집이었다. 덕분에 아주 아찔한 곳이기도 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이 완벽한 숙소를 찾은 나는 숙박비도 아낄 겸 동행을 구했다.


서울에서 만난 인연은 한 달 뒤 론다에서 이어졌다. 웃을 때면 눈이 예쁘게 휘는 R이 나를 부르며 총총 뛰어왔다. 그 뒤로 큰 키의 T가 휘청거리며 다가왔다. 우리는 한국인과 여행객이라는 것 외엔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서울에 가서 다시 마주치기나 할까 싶은 인연이었다. 그런 셋이 모여 한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아주 대단한 인연이기도 했다.


론다는 대부분의 여행객이 세비야나 마드리드에서 당일치기로 잠시 들리는 곳이었다. 어스름이 지기도 전에 사람들이 썰물처럼 마을을 빠져나갔다. 우리는 핑크빛으로 물드는 공기 속에서 슬렁슬렁 걸었다. 론다는 절벽을 깎아 낸 누에보 다리 말고는 별 볼 것 없는 곳이긴 했다. 우리는 서로가 낯선 탓에 시답잖은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며 길을 걸었다.


R과 T는 직전에 들린 세비야에서 마주친 사이였다. R은 이 머나먼 나라에서도 타고난 명랑함을 잃지 않는 아이였다. 그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을 모두 자신의 친구로 만들었다. T는 R에 비하면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종종 농담을 던지거나 장난을 치기도 했으나 자신의 얘기를 먼저 꺼내는 법은 없었다.


우리는 저녁으로 토끼고기와 와인을 먹었다. 관광객 하나 없는 한적한 레스토랑이었다. 울퉁불퉁한 돌로 동그랗게 둘러싸인 벽이 세로로 길게 뻗어 있었고 옅은 조명 탓에 마치 동굴 같았다. 와인을 잔잔마다 빠짐없이 챙 부딪히고 마셨다. 이방인들은 낯선 도시의 동굴 속에서 차츰 녹아가는 손을 비비며 콧물을 쿨쩍댔다.


얼어붙었던 혈관이 녹으며 와인을 빠르게 몸 여기저기로 퍼뜨렸다. 우리 사이 대화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던 R은 오히려 술이 들어가자 말과 행동이 조금씩 느려졌다. 반대로 나와 T는 알코올형 인간이었다. 우리는 술이 들어갈수록 말과 행동이 조금씩 빨라졌다. 술은 여러모로 굳게 다문 입을 벌리는데 효과적이었다.


“나는 이런 게 좋아. 하룻밤이면 잊혀질 인연들.”


그래 봤자 여전히 시답잖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깔깔대는 중에 T가 툭하고 한 마딜 내뱉었다. 그 순간 그의 목소리는 마치 다른 사람의 것처럼 이질적으로 들렸다. 찢어서 쪼개보면 거기 든 진의는 꽤 의미심장했는데 그때 우린 손안에 든 것도 미끄덩거리고 있었다. 기껏 해봤자 “나도! 나도 그게 좋아!” 정도의 맞장구뿐.


토끼굴에서 나온 이방인들은 그렇게 낯선 마을에서 2차까지 갔다. 동네 배불뚝이 아저씨들로 북적거리던 펍에서는 한껏 취한 동양인 3명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우리는 거기서 또 한껏 맥주를 마시고 비틀대며 길을 나섰다. 누구 하나 내일을 생각하는 이가 없었다.


그 늦은 밤, 여전히 술이 부족했던 우리는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술 파는 가게를 찾아다녔다. 겨우 한 곳을 찾아 와인 한 병을 샀다. 숙소까지 돌아가는 길에 불쑥 R이 물었다. 겨울밤 낯선 길을 걷다가 뜬금, 없게


“언니, 사랑을 믿어요?”


누구 하나 멀쩡한 이 있었다면 “취했네 취했어” 하고 웃고 넘어갔을 말에 우리는 모두 심각해졌다.


“사랑 안 믿으면 어떻게 살아?”


T가 끼어들었다.


“역시 어리긴 어리다, 네가.”


내가 T에게 면박을 줬다.


“아니 그럼 사랑 안 했다고? 5년을 만났다매.”


T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하... 나도 모르겠다. 그게 뭐였는지.”


내가 담배 한 대를 물고 말했고,


“아, 언니 나도 줘.”


R이 비틀대며 담배를 빼앗아갔다.


그대로 숙소에 들어간 우리는 발코니 창문을 열어놓고 어두운 절벽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셨다. 토끼굴에서도, 배불뚝이 펍에서도 깔깔대던 이방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온갖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아무한테도 해본 적 없는 속 얘기도 하나 둘 꺼내어졌다. 서로가 낯선 탓에 다루기 조심스럽고 동시에 내 일이 아니라 다행이네,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밤을 지새우며 하나둘 터져 나온 심각한 얘기들은 도통 언제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새에 우리를 침실로 데려다 놓았다. 언제 어떻게 누가 먼저 KO패를 선언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다음 날, 가장 먼저 기상한 건 나였다. 이른 새벽 세비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다. 우렁차게 울려대는 알람에도 두 사람의 침실에선 아무 기척이 없었다. 가장 안쪽 침실을 차지한 나는 느긋하게 샤워를 마친 뒤 짐을 쌌다. 이불까지 정리하고서 복도로 빠져나왔다. 양쪽에 놓인 침실 문이 모두 활짝 열려 있었다. 침대에서 죽은 듯이 기절해 있던 R을 살피고 반대편 T의 침실을 보았다. 겨우 눈만 뜬 그가 피실피실 손을 들어 까딱 흔들었다.


“못 일어나겠어, 누나. 미안해. 조심히 가.”


나도 웃으며 인사했다.


“고마워. 잘 자.”


다음에 또 보자는 뻔한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거실로 나오니 테이블에 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듯 그 모습을 오래 눈에 담았다. 육중한 문을 온몸으로 밀어 열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순식간에 뺨에 와닿았다. 문이 쾅, 하고 닫혔다. 그제야 온몸의 감각이 돌아오는 듯했다. 드륵드르륵. 캐리어가 돌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고요한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때 우리가 나눈 수많은 질문과 이야기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았겠지만, 이것만큼은 (아직까진) 유효하다.

우리는 그 이후로 서울과 론다, 그 어디에서도 마주친 적 없다.


우리는 완벽한 이방인이자 하룻밤이면 잊혀질 인연이었다.

서로의 비밀을 아주 깊은 곳에 함께 묻어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