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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걸린 게스트와 잔소리하는 호스트

마드리드의 에어비앤비에서

by 새벽나무

감기에 걸렸다. 4주 간 커다란 원을 돌아 마드리드에 도착한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도 이틀 남아있었다. 작고 아늑한 침대에 누워 뭉그적거렸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왜 일어나야 하냔 말이야. 꼴사나운 기침이 나왔다. 뭉개뭉개 불만이 피어올랐다. 감기의 원인은 분명 이 낡은 집의 빈약한 수압과 오락가락하는 보일러 때문이었다. 마드리드 시내 한복판에 있는 에어비앤비였다. 어차피 마지막 하루는 호텔에서 보낼 예정이라 룸 컨디션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고른 곳이었다. 호스트는 중년의 레즈비언 커플이었다. 숙소 선택에는 어쩔 수 없는 호기심도 한 몫했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건 밤 10시 즈음이었다. 아무리 시내였어도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길을 걸어 골목을 헤맸다. 숙소를 못찾겠다고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영어가 서툰 그녀(중 한 명)는 세탁소에서 꺾으면 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로드뷰 찍는 트럭의 심정으로 마드리드 구석구석의 사진을 몇 장 보내고서야 겨우 그녀들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건물 바깥 출입문까지 마중 나온 호스트 E는 반가워 웃는 내 얼굴을 보곤 다짜고짜 스페인어 몇 마디를 날리고 앞장 서서 길을 안내했다. 그 단순한 길도 못찾느냐고 투덜대며 본 흉이거나 이 늦은 시간에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고 위로한 인사말일 거였다. 발이 빠른 그녀를 쫓아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그대로 성큼성큼 복도로 꺾어 들어간 E는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남은 호스트 한 명이려나, 생각하는 와중에 까만 단발머리의 여자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Y는 스페인으로 공부를 하러 온 유학생이었다. 알고 보니 동갑인데다 성격도 워낙 서글서글한 터라 우리는 금세 말을 놓고 깔깔댔다. 영어가 서투른 호스트들을 대신해 그녀가 내가 묵을 방과 욕실, 주방을 안내해주었다. 거실 소파에선 E가 다른 호스트이자 짝꿍인 S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S는 E와는 상반된 스타일이었다. 내가 “Hola!” 인사하자 수줍은 웃음으로 화답한 S는 나와 Y가 다시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묵묵히 우리의 동선을 눈으로 좇았다.




무거운 몸을 겨우 침대에서 일으켰다. 감기 기운을 없애려면 따끈한 스프나 차가 필요했지만 주방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고작 수돗물과 가스레인지 정도였다. 나는 지갑을 들고 방을 나섰다. 거실에 있는 E에게 인사하고 "Breakfast"하며 먹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무심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골목을 지나 큰 길로 나오니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이 줄줄이 나타났다. 반가운 동시에 지겨웠다. 햄버거나 샌드위치는 더 먹고 싶지 않았다. 찾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한인마트가 있었다. 꽤 큰 규모의 마트에서는 온갖 라면과 식료품을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거의 먹을 일도 없는 컵라면을 찾아 헤맸다. 우리나라에서 파는 것보다 건더기가 알차다는 얘기를 떠올리며 국물이 있는 컵라면과 불닭볶음면을 골라들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이미 한바탕 식사를 하고 났는지 E와 S가 상을 치우고 있었다. 자기들 먹는 것 좀 나눠주면 안 되나. 그러고보니 에어비앤비인데 브렉퍼스트도 안주는 이 치사한 스페니쉬들. 감기에 걸린 나는 유난히 불만 많은 사춘기 여자애처럼 굴었다. 툴툴대고 언짢아했다. 물론 티는 안나게, 속으로만.


“헬로!”


툭 불거진 내 귓등에 활기찬 인사가 침입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들의 아침식사 자리에 포크가 하나 더 놓여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금발의 파란 눈을 한 젊은 여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E와 S의 영어 선생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곧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현관에 선 채로 나는 그녀의 쉴새없는 질문에 겨우겨우 대답을 이어갔다. 그녀는 내가 말할 때마다 열정적인 리액션으로 보답했다.


“흠.”


금세 흥미가 떨어졌는지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훑은 뒤 몸을 빙글 돌려 주방으로 돌아갔다. 악의는 없지만 호의도 없는 호기심이었다. “쟤 영어 잘하네.” 라며 E와 S에게 나와의 첫 대면 후기를 요약했다. 그녀의 일방적인 평가는 달갑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했다. 한국인 기준으로는. “아임 파인 땡큐” 정도만 해도 감탄하는 미국인 입장에서는 모르겠지만.


방에 돌아와 봉투를 내려놓은 뒤 다시 침대로 쓰러졌다. 한 것도 없는데 피곤했다. 눈을 감고 한숨 잘까 하는데 E가 방문을 활짝 열곤 스페인어로 잔소리를 했다. 빨리 일어나서 아침 해먹으라는 소리 같았다. 나는 그녀의 무례한 행동에 헛웃음이 났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쯤되면 호객보단 호갱에 가깝겠지.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알았어 알았어.” 했다. 발걸음을 돌리는 E 뒤로 Y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좋은 아침! 어디 갔다 왔어?”

“안녕… 라면 먹을래?”




나와 Y는 물을 부은 컵라면을 안고 자리에 앉아 서로의 부은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인 여자는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방방 뛰는 에너지도 그녀를 따라 간 모양인지 집 안은 다시 고요함으로 가득찼다. E와 S는 거실 쇼파에 앉아 간간히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한테는 영 언짢은 눈빛으로 방언같은 잔소리를 늘어놓는 E는 S와 함께 있을 땐 왜인지 순해보였다. 몇 마디 짧게 내뱉는 말도 다정했다.


“E랑 S는 어때? 같이 지내기 안불편해?”


나는 포크로 면을 뒤적거리며 Y에게 물었다.


“나 영어 못한다고 엄청 뭐라고 해.”

“자기네들은 더 못하지 않아…?”

“응, 근데 맨날 놀리고 잔소리 해.”


문득 좀전 미국인 선생이 나의 영어실력을 오해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게스트로서 어떠한 위상도 얻지 못한 내가 이 초라한 영어 실력마저 들통났더라면 마주칠 때마다 E의 비웃음을 살 게 뻔했다.


“E는 왜이렇게 잔소리를 많이 해? 나 손님 아니야?”

“E는 츤데레라고 생각하면 돼.”

“맞다. 어제 샤워하다가 물 끊기더니 찬물 나오고 난리였어. 10분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더니 감기 걸렸잖아.”


나는 Y에게 고자질했다. 우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우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표정으로 은근슬쩍 흘린 말이었는데 Y는 놀라는 척하더니 치사하게 그걸 또 바로 E와 S에게 쪼르르 일러바쳤다. Y가 스페인어로 내 감기소식을 알리자마자 E와 S가 성큼 주방에 발을 디뎠다.


“얌마.”


호스트들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내게 쏟아졌다. 나는 Y를 쏘아보며 그녀의 포크를 빼앗았다. Y는 장난스럽게 웃곤 컵라면을 그대로 들어 국물을 후르륵 마셨다. E와 S는 우리를 앞에 두고 갑자기 스페인어로 빠른 대화를 주고 받았다. 내가 추측해 본 바로는,


E : 뭐, 칠칠맞게 감기에 걸렸다고?

S : 샤워하다가 그랬다잖아. 뭐라하지 말고 감기약이나 찾아봐.

E : 우리 욕실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흥.

S : 여기 있네 감기약. 이거 먹어도 되는 걸까?

E : 먹든가 말든가. 죽기야 하겠어?


정도랄까. S에게 약을 받아든 E는 대충 살펴보는 척하곤 그대로 약을 내 앞에 툭 내려놓았다.


“감기약이래.”


Y가 친절히 마지막 말을 통역해주었다. 나는 떨떠름한 채 이미 주방을 빠져나가고 있는 E의 뒷통수에 대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다음날은 몸이 더 무거웠다. 점심 즈음까지도 침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어김없이 방으로 침범한 E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날도 나는 컵라면에 물을 붓고 식탁에 앉았다. 국물보다는 매운 게 더 땡겼으므로 메뉴는 불닭볶음면이었다. E와 S는 또 자신들만의 성대한 아침식사를 한 모양이었다. E가 요리 당번이었는지 S가 설거지 통에 물을 받고 있었다.


S는 나를 힐끔 본 뒤 선반 위에 놓인 라디오를 틀었다. 스페인 노래가 흘러나왔다. 구성진 가락의 멜로디가 우리나라 트로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면이 불기를 기다리며 멍 때리는 내 앞에서 그녀는 별안간 노래를 따라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설거지 통에 받던 물도 잠그고 본격적이었다. S는 첫날에 그랬던 것처럼 수줍게 미소지으며 나를 보았다. 나도 미소 지은 채 그녀의 춤을 바라보았다.


거실에서 E가 뭐라고 핀잔 주는 듯한 말을 했다. 하이고, 아침부터 뭔 주접이래, 같은.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S는 꿋꿋하게 춤을 추며 대답했다. 춤추잖아, 보면 몰라.


나는 면이 불 걸 알면서도 가만 앉아 그녀의 춤사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되려 춤을 추던 그녀가 손가락을 뻗어 컵라면을 툭툭 쳤다. 내가 일어나 싱크대에 물을 버리고 소스를 부어 면을 비비는 동안에도 그녀의 춤은 멈추지 않았다. S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허공에 뻗은 팔을 번갈아가며 천천히 휘둘렀다. 눈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주방의 이곳저곳을 스친 뒤 나와 내 아침식사에 닿았다. S가 자꾸만 쳐다보는 바람에 뻘쭘해진 나는 별 의미 없이 포크를 들어 그녀에게 권했다. 스페인어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빠에야,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맥주, 영수증 주세요, 예쁘다, 잘생겼다 정도였던 나는 그냥 한국어로 “먹어볼래요?” 했다. 어차피 그녀들도 내게 스페인어로만 말하는데 뭐. 우리 서로 다 영어도 못하는 데 뭐. 뭐 어때.


S는 거절하지 않았다. 스파게티 말듯 면을 감은 포크를 냉큼 받아가 입에 넣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건 불닭볶음면이었다. 매운 걸 좋아하는 내게는 스트레스가 풀리는 개운한 맛이었지만 나이 지긋이 먹은 스페니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맛이었는지 몰랐다.


S는 감탄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곤 선반에 놓인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춤도 멈췄다. 이윽고 뭐 그딴 걸 먹고 있어, 라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S는 혀를 빼내 바람에 식히며 거실에 있는 E에게 고자질하듯 한탄했다. 결국 나는 주방까지 쫓아온 E에게 또 한소리 들어야 했다.




이 지독한 에어비앤비는 체크아웃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호텔에 간다는 나를 E는 도통 납득이 안된다는 듯 불퉁하게 대했다. 이 여행을 떠나오기 전부터, 그러니까 한국에서부터, 심지어 너네 숙소를 예약하기 전부터 마드리드의 마지막 밤은 호텔에서 묵을 작정이었다, 고 몇 번을 얘기해도 소용없었다.


“네가 여기서 감기도 걸리고 맨날 라면만 먹어서 불만이 많다고 생각하나봐.”


E와 S가 하는 말을 70% 정도 알아듣는 Y가 나와 E 사이의 오해의 불씨를 줄이기 위해 나섰다. 나는 다시 한 번 원래 예정된 계획이었다는 말을 강조하며 도망치듯 숙소를 빠져나왔다. 무뚝뚝한 두 명의 레즈비언은 내게 작별의 포옹은 커녕 미소도 지어주지 않았다. 나도 덩달아 불퉁한 심정이었다. 라면만 먹는 게 불편했으면 자기들 먹는 밥이라도 좀 나눠주던가!


호텔은 호텔이었다. 편안하고 쾌적하고 자유로왔다. 무엇보다 따뜻한 물이 콸콸 잘도 나왔다. 나는 감기 때문에 무거워진 몸을 침대에서 한동안 굴리고서야 마지막날 아침을 맞이했다. 전날 기념품으로 사둔 온갖 잡동사니까지 쑤셔넣고나니 캐리어는 한 손으로 끌기도 버거울 정도의 무게가 됐다. 28일 간의 여행이 남긴 온갖 즐거움과 아쉬움이 다 들어 있는 탓이었다.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키를 반납하고 기다리는데 직원이 잠시만, 하곤 데스크 아래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 올려놓았다. 작은 종이봉투였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싱글 웃는 직원을 바라보았다.


“웬 마담이 너한테 전달해달라고 하더라.”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 아닐까, 생각하며 종이봉투를 들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공항까지 가는 택시를 불러놓은 차였다. 종이봉투를 열어 보니 안에는 온갖 초콜릿과 과자가 무작위로 담겨 있었다. 알록달록한 비닐로 쌓인 것들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것들을 쳐다보다 초콜릿 몇 개를 꺼내 손바닥 위에 놓고 보았다. 그제서야 문득 E와 S의 주방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나무 바스켓이 떠올랐다. 그 안에 담겨 있던 오색찬란한 초콜릿과 쿠키들. 종이봉투에 들어 있는 양이 딱 그 바스켓에 담긴 양 정도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호텔 앞으로 택시가 와 섰다. 기사가 내 묵직한 캐리어를 겨우 들어올려 트렁크에 싣었다. 나는 건물과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E와 S의 숙소 쪽을 바라보며 택시에 올랐다. 택시는 금세 시내를 빠져나가 고속도로를 탔다. 나는 구름 사이에 끼인 해를 바라보며 초콜릿을 하나 꺼내 먹었다. 진득하게 단 맛이 입 안 가득 녹았다. 주방에서 라디오를 틀고 춤을 추던 S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는데. 맨날 구박만 하던 E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동시에 무슨 얘기인지 너무나 잘 알겠던 그 잔소리들.


그 아줌마들도 참, 테이블 위에 초콜릿 먹으라는 말 한 마디 못해가지고는. 이게 뭐람.

나는 감기에 눅눅해진 코를 훌쩍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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