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천사 '미숙 언니'와의 인터뷰 비하인드
"언니도 언니가 필요하니까"
끗질은 중장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다. 시즌1에서는 4050 언니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단행본에 실릴 인터뷰 전문 외에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언니들을 만나는 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릴레이 연재로 소개한다.
글쓰기는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동작이다. 낫이 아니라 낫질이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의 최전선>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에 걸려 넘어져 한참을 머물렀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다 얼떨결에 낫을 잡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구원의 동작인 줄도 모르고 어설프게 낫질하던 때가. 글쓰기를 구원의 도구로 써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내게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책이었다. 평생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다짐한 내게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즐기는 것은 구분” 하라고 충고하는 엄한 선생님이었다.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신청한 건 그 때문이었다. 글쓰기에 이토록 진심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에게 직접 혼나면서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은유 선생님은 전혀 엄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정하고 관대했다… 그리고 너무… 멋져…)
온오프로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에는 스무명 남짓한 학우들이 모였다. 자기소개 시간, 우리는 각자 글쓰기 별명을 지었다. 내 별명은 ‘나무’였다. 망고, 오후 2시, 무아, 당최, 막쓰 등 다양한 별명 사이에 ‘요리천사’가 등장했다. “어떻게 그런 멋진 별명을 지었냐”는 은유 샘의 질문에 “요리를 좋아하고 요리해서 남들 먹이는 건 더 좋아한다”라는 대답으로 모두의 감탄을 자아낸 사람,
그렇게 요리천사, 미숙 언니를 만났다.
미숙 언니의 첫 인상은 별명만큼이나 따뜻하고 포근했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식 셋을 다 키우고 취미생활을 누리는 여유로운 중년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착각은 세 번째 만남만에 와르르 무너졌다.
매주 세 명씩 하는 합평시간이었다. 언니는 ‘장녀 그까짓 게 뭐라고’라는 제목의 글을 가져왔다. 50대 여성의 K-장녀 스토리라니 유구한 역사가 있는 주제였다. 언니는 살짝 떨리는 미성의 목소리로 낭독을 시작했다.
국민학교 4학년 겨울방학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짧은 글 속엔 언니의 인생 전반이 담겨 있었다. 어린 시절 찾아온 “불행의 시작”은 언니의 삶에 끈덕지게 붙어 쉬이 끝나질 않았다. 글의 주인공은 미숙 언니의 ‘언니’, 그러니까 장녀인 ‘영숙(가명)’이었다.
아버지의 노름빚을 갚기 위해 타지에서 일하다 간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다섯 식구를 입히고 먹여야 하는 건 영숙의 몫이었다. 아버지를 포함해 집안에 남자만 셋인데도 그랬다. 고작 열여섯이던 영숙은 학교에 있는 시간 외에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밥을 짓고 빨래를 했다. 아버지와 오빠들은 그런 영숙의 희생을 당연히 여겼다. 장녀란 원래 그런 거니까.
영숙은 막내 동생인 미숙을 다른 가족보다 더 아꼈다. 성인이 되어서도 “똑똑하고 예쁜 내 동생”하고 불렀다. 미숙이 러시아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도 유일하게 비행기 값을 보내준 언니였다.
어린시절부터 익숙했던 희생의 역할을 영숙을 도통 내려놓지 못했다. 미숙이 아이 셋 키우는 중년이 될 때까지도 영숙은 아버지와 작은 오빠를 돌봐야 했다. 미숙이 몇 번이고 “집에서 나오라”며 설득해도 영숙은 “장녀만 아니었으면 그랬을 텐데”라고 했다. 매번 같은 핑계, 매번 같은 말로 미숙을 돌려보냈다.
“야무진 내 동생. 똑똑한 내 동생.”
미숙아, 네 언니가 죽었다. 13층에서 뛰어내렸대.
4년 전 아침, 작은 오빠에게 온 전화였다. 미숙은 머리부터 감았다.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인터뷰 중에 언니는 이 이야기를 하며 덧붙였다.
“죄책감이 들었어요. 언니가 죽었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맨정신일 수 있지 싶은 거야.”
미숙 언니는 책임감을 죄책감으로 해석했다. 그날 밤 장례식장에서는 슬픔이 결국 분노가 되어 터져나왔다. 가족에게 등 돌리고 남처럼 살던 큰 오빠, 언니가 짓는 밥으로, 언니가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면서도 고마움을 모르던 작은 오빠가 밉고 원망스러웠다.
평생 뒤치다꺼리만 한 언니, 고생만 하다가 간 언니,
불쌍한 언니... 우리 언니...
미숙 언니의 합평 글은 남은 자의 혼잣말로 끝을 맺었다.
좋은 말을 더 많이 해줄 걸. 평생 사랑에 굶주린 우리 언니, 말없이 그냥 따뜻하게 안아줄 걸. 다정한 눈빛으로 좀 바라봐줄 걸. 나라도 그렇게 해줄 걸.
글쓰기 수업이 끝난 뒤 한 달만에 미숙 언니를 만나는 자리였다. 언니는 나와 소진을 그의 집으로 초대했다. 볕이 잘 드는 거실 테이블에 마주앉아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듯 인터뷰를 했다.
글을 쓰면서 또 한 단계를 지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이제는 별로 남은 게 없어요. 신기할 정도로.
언니가 구원의 동작으로서 글을 쓰는 동안 사라진 것은 무엇일까. 회한일까, 서러움일까, 언니를 향한 그리움일까. 이제 언니는 달라진 자기자신을 바라본다. 앞으로의 인생은 망설이지 않고 도전하며 살고 싶다고 한다. 용감하고 유연하게 때로는 강인하게 자신을 채우겠다는 다짐이다.
"어릴 적부터 콤플렉스가 많아서 딱 봐서 승산 없어보이면 오만가지 핑계를 대면서 안 했어요. 근데 나이 드니까 그게 아쉽더라고. 막상 해봤는데 좋은 것도 있고, 시도하는 횟수에 비례해서 뭔가 건질 수 있다는 걸 안 거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일 년에 하나씩 새로운 걸 시도하는데, 하는 것마다 또 너무 잘하잖아(웃음)."
하는 것마다 잘하는 언니가 제일 잘 하고 좋아하는 건 역시 ‘요리해서 남들 먹이는 거’였다. 이날의 저녁식사는 요리천사표 알리오 올리오와 비트 샐러드. 선물로 들고 간 레드와인과 곁들였는데 신선하면서 감칠맛이 나는 조합이라 한 입 한 입 감탄하며 먹었다.
자신을 구원해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 또 있었다. 후련함. 글은 끝났지만 삶은 계속된다는 깨달음. 언니가 더 넓게, 계속해서 자신의 한계를 부수고 확장해나가길 선택한 만큼 언니의 낫질도 멈추지 않을 거였다.
아무튼, 진짜 야무지고 똑똑한 언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