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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Jul 29. 2022

민선|롱런 예술가의 ‘존버’ 비책

할머니가 될 때까지 예술하며 살고 싶은 H들에게 보내는 편지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 '끗질'

"언니도 언니가 필요하니까"

끗질은 중장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다. 시즌1에서는 4050 언니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단행본에 실릴 인터뷰 전문 외에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언니들을 만나는 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릴레이 연재로 소개한다.




H에게.


안녕, 오랜만이야. 널 마지막으로 만난 게 2011년 겨울이니까 그날로부터 벌써 11년이 지났네. 내가 그 누구보다 자유롭고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예술가가 되길 원했던 너의 바람과 달리 나는 대학을 나왔고, 빚을 많이 졌고, 하고 싶은 일 대신 그나마 조금 잘하는 일로 먹고 살고 있어. 예술과는 좀 거리가 멀지. 네가 지금의 날 본다면 사는 모습이 너무 빤해서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도 이젠 알겠지. 능력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업 예술가로 살기에 나는 욕심과 불안이 너무 많은 사람이란걸. 그 심플한 사실 하나를 받아들이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어.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너를 떠올린 건, 우연히 어떤 예술가와 길게 대화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야. 두 달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거든. 올해로 40대 중반에 접어든 그녀는 전업 예술가로 2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어. 농부 같은 성실함이지. 마켓에서 주목하는 스타 작가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것들을 관찰할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힘이 세잖아. 강남개발 시기에 태어나 서울과 주변 위성도시를 배회하며 청춘을 보낸 그 예술가는 도시를 일구고 남겨진 잔해들ㅡ이를테면 건설 현장에 쌓여있는 흙더미, 나뒹구는 비닐봉지, 버려진 나뭇가지 같은 것ㅡ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작업을 해. 늙은 나무에서 사색하는 노인의 피부를 발굴해 보여준다든가, 무생물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실은 서로를 지탱하며 완성하는 도시 한구석의 인공적인 풍경들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버려졌거나 만들어지다 만 존재들이 주인공이 되는 그림들이니까 얼핏 보면 황량하고 쓸쓸해보이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희망이 보여. 꼭 무언가로 완성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각자의 존재감을 갖고 살아있는 거구나. 예술가 대신 돈 벌고 가족 부양하며 사는 삶을 택한 뻔한 내 인생도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지.



이해민선, cast 1, <말한 적 없는>, 종이 위에 연필로 프로타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나무, 30 x30 cm, 2013 / 사진제공=이해민선


나는 편지에서 줄곧 그녀를 ‘언니’라고(내 마음대로) 불렀어. 이미 한참 전에 예술을 포기한 내 입장에서 ‘선배’라고 하기엔 억지로 접점을 만드는 느낌이고, 그렇다고 ‘선생님’이라고 부르기엔 언니가 많이 젊고 귀여웠거든. 민선 언니, 라고 부르며 8통의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네가 상상했던 예술가 희경의 모습이 이랬을까 잠시 생각했어. 나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내 재능에 대해 ‘그저 하루에 한 장씩만이라도 매일 그려보라’던 너의 조언이 떠오른 거야. 새삼스럽게도. 


빈 스케치북을 마주하는 일은 때로 우주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을 주는데, 그걸 1, 2년도 아니고 20년이 넘도록 매일 해낸다는 건 얼마만큼의 담력과 끈기가 있어야 가능한 걸까. 민선 언니와 편지를 주고받는 내내 나의 관심은 그 성실함의 비결을 캐내는 데 쏠려 있었지. ‘보리,보리,쌀’을 하는 기분으로 답장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공방전을 펼친 결과 몇 가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어. 열여덟의 내가 꿈을 접기 전에 미리 훈련해봤더라면 좋았을 ‘롱런하는 예술가의 비책’ 세 가지 말이야.




할머니가 될 때까지, 롱런하는 예술가의 생존비책


1. 필요 이상으로 예술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 균형감각


우선, 가늘고 길게 롱런하는 예술가는 자아 비대증이 없어. 마치 매일 실패할 것을 알고 실험실로 출근하는 과학자처럼 작업을 하거든. 실험체 샘플이 담긴 페트리 접시를 대하듯 작업 노트를 쓰는 거야. 적당히 거리를 두는 거지. 과몰입하지 않고 말이야. 뭐든 너무 많이 사랑하면 성실하기 어려워. 사랑은 연민을 만들고, 연민은 에너지를 빨아들이니까. 


“사십 대에 들어서야 자동차를 마련하고 컨디션에 얼추 맞는 작업실을 구하기 시작했어요. 저처럼 맨땅에 헤딩한 동료 작가 몇몇은 저랑 비슷한 시기에 초보운전을 달고 다니더라고요. 작업 특성상 짐이 많고 이동도 잦은 삼십 대를 실컷 고생하고서야 말이죠. 안타까운 건 아니고 오히려 신기하고 기특해요. 저도 포함해서요. 예술로 먹고산다는 일이 제자리걸음은 아닌가 보다 싶은 거죠. 작업이 직업이 되는 모습 같기도 하고. 

얼마 전 동료에게 작업만 하다가 죽을 순 없다고 좀 더 삶의 방향을 수정하고 살다가 그러다가 작업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긴 했는데, 사실 작업이란 것이 삶 속에서 나오는 건 분명한데 또 삶과 단절해야만 나올 수 있는 부분도 있거든요. 삶과 작업의 화해 문제로 삼십 대 와 사십 대를 고군분투해오고 있어요. 단지 삼십 대는 작업을 중심으로 삶과의 불연속성을 고민했다면 사십 대는 삶의 방향을 중심에 두고 작업의 배치 문제로 고민하는 점이 다르네요. 삼십 대와 사십 대가 의미 있게 나누어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세월은 세월인가 봐요.

                                                                                       - 이해민선, 끗질과의 편지 3화 중 


2. 어떤 상황에서도 작업자로서 관찰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


거리두기가 성실함을 실천하기 위한 장치라면, 예술가로서 타고난 예민한 감각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건 바로 끈기. 끈기야. 쉽게 포기하지 않는 거지. 이건 집중력을 발휘하는 거랑은 조금 달라. 끈기는 일종의 태도거든. 집중력은 몇 가지 환경적 조건ㅡ가령, 조용하고 잘 정리된 작업실, 공복 상태ㅡ만 갖춰지면 누구나 발휘할 수 있지만, 끈기가 발현되려면 하나가 더 필요해. ‘믿음’. 작업으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은 작가라면 짠 내 나는 삶의 저점에서도 건져낼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 말이야.


“몸이 안 좋아져 서울을 떠나 경기도에 자리한 부모님 댁에 한동안 머물러 있었어요. 수술을 안 하려고 버티는 시간이었고 처음으로 음식과 몸을 극단적으로 컨트롤하는 경험이었어요. 예를 들면 소금기 없이 음식을 데쳐서만 먹는다던가 매일 걷는다든가 하는 것들이에요. 어제의 옆구리 살이 오늘 사라지는 신기한 체험을 했었죠. (아 옛날이여) 

그때 동네를 계속 걸었던 시간이 작업이 바뀐 계기가 되었어요. 희경 씨처럼 저도 걷고 걸어야만 하는 시간들이었어요. 걸으면 감정도 생각도 보폭의 반복처럼 형태를 갖춰 나란히 걷는 것 같았어요. 이미 죽은 각목이 살아있는 나무를 지탱해 주는 풍경을 보면서 ‘직립 식물’이라는 핸드 드로잉을 하기 시작했고 ‘덜 죽은 자들’의 두 번째 버전이 시작되었어요. 풍경이라는 몸체의 아래에 서로 지속 가능하게 지지해 주는 것들이 몸의 기관들로 보였어요. 지주 목, 묶어주는 끈, 호스, 쟁여둔 돌 등.. 특히 못, 타카, 접착제와 다르게 물리적으로 파손 없이 제압하지 않고 서로를 묶어주는 ‘끈’ 들이 참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 이해민선, 끗질과의 편지 2화 중 


3. 선택받지 못해도 내 작업을 애정할 줄 아는 자존감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거. 당장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내 작업에 대한 제1의 지지자가 돼야 해. 확신을 가지라는 말이야. 당장의 타협이나 무리한 승부수를 띄우기보다 나 다운걸 잃지 않고 버텼을 때 허수 없이 인정받을 수 있게 되니까.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사십 대가 아니어도 미술작가의 평생 덕목으로 남는 게 '버티기' 죠. 제가 존경하는 故 공성훈 선생님께서 미술작가의 삼대 덕목으로 '우기기, 쑤시기, 버티기'를 늘 말씀하셨지요. 일단 쑤시느라 정신없던 삼십 대. 그중에서 막 서른이 되었을 때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하면서 작업이고 뭐고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또 작업을 했어요. 좀 더 상업적으로다가 , 좀 더 대중적으로다가, 전 지구적으로 소통 가능한 그런 작업스러운 작업에 대해 한 일주일 컴퓨터로 만들다가 정신 차려보니 결국 버릇을 개 못 주고 어쩐지 전 지구적이지 못한 것 같은 작업을 향해 전진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포토샵을 이용했는데 기능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이 서툴러 동그라미와 네모만 사용하는 것밖에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동그라미와 네모만 가지고 그림을 그려보자 했어요. 그랬더니 그 한계가 오히려 독특한 맛이 나더라고요. 그게 저의 방식이에요. 여태껏 그 정신으로 삼십 대를 쑤시고 우겨왔어요. 작업을 시작하고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에 몰라줘서 서러워할 일도 없었고 제외되어서 절망할 일도 없었어요. 저는 '일희일비'에 재능이 있는 사람 중에서도 특히 '희'에는 의심 없이, '비'에는 속지 않으려 하는 인생을 살아왔거든요. 절망을 조금 하다가도 지구력 딸려 못해요. 이런 성격 탓도 있고 운이 좋았던 것도 있었어요. 작업하는 대로 주목해 주었고 필요한 만큼 기회가 주어졌으니까요. 그래서 작업에 미쳐 살았어요.” 

                                                                                       - 이해민선, 끗질과의 편지 3화 중 




그런데 써놓고 보니, 이 세 가지 요소들이 꼭 예술가로서 롱런하는 데만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더라. 그런 말 혹시 들어봤어?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하나의 경지로 통한다’는 말. 10년 전의 너보다 조금 더 살아보니 내 생각에 그 ‘경지’란 결국 예술을 말하는 것 같아. 어떤 일을 천직으로 삼든, 그걸 10년, 20년 포기하지 않고 해낸 사람들은 꼭 예술가처럼 사고하고 말하더라고. 그게 기업투자자건, 마케터건, 개발자던 말이야. 예술은 매혹과 설득을 오가는 고도의 커뮤니케이션이잖아. 실은 모든 일이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니 위로가 되더라. 난 꿈에서 실격당한 게 아니고, 내 속도에 맞는 길로 조금 천천히 걸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네가 생각하던 그런 예술가는 되지 못했지만, 나도 내 나름의 예술을 하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는 얘길 하고 싶었어. 지구는 둥글고, 모든 길은 한 곳으로 통하니까. 이 길을 너무 애쓰며 사랑하지 않고, 끈기 있게 시간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내가 나의 가장 든든한 격려자로 그렇게. 조금씩. 지금처럼. 계속해볼게, 희경아.


이해민선, <사라지는>, 돼지사료포대에 잉크, 강원국제비엔날레(2018) / 사진제공=이해민선



(민선 언니와의 인터뷰 전문이 궁금하다면? : 끗질 인터뷰집 <우리는 넘어지며 언니가 된다> 펀딩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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