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빠, 엄마, 오빠를 이야기했다. 할아버지를 말하지 않은 건, 글쎄. 할아버지도 분명 한 집에 사는 우리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왜 5인 가족이 아닌 4인 가족만 떠올렸을까.
요즘 세상에 빗물을 받아 쓰고, 6.25 전쟁 직후의 한국을 이야기하고, 새 우산이 삭을 동안 헌 우산을 고쳐쓰고, 자주 만지면 해진다고 넥타이를 묶은 후 풀지 않고 걸어두고, 몇 십년간 같은 옷을 기워 입고, 병원에서 약을 타 와서는 낫지 않는다고 환불을 받아내는 사람. 이 분이 바로 우리 할아버지다.
평생 그렇게 사신 분에게 변화를 바라는 것보다 우리가 맞춰가는 게 빠르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작은 생채기도 반복되면 흉터가 되고, 그것은 아주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할아버지를 마주할 때면 상처가 다시 살아나 때로는 억울함으로, 때로는 분노로 표현되었다.
1.
중2 때였나 수학여행을 가서 할아버지께 드릴 부채를 선물로 사왔는데 쓸데없이 돈을 쓴다며, 정신머리가 글렀다며 정말 진심을 다해 훈육하셨다.
2.
오빠가 수능 후 경험삼아 하루동안 공장에서 일을 하고 일당을 받아왔다. 늘 아껴써라, 젊을 때 고생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께 엄마는 손자가 이런 기특한 일을 했다고 알리기 위해 아들의 노동 경험을 직접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공부해야 되는 놈이 어디서 그런 일을 해!"라며 있는대로 소리를 지르셨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너(엄마)는 집에서 놀면서 애한테 일을 시키냐?" 이후 엄마는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계신다.
3.
입사 3개월 후 회사에서 내보내졌을 때 한 달 반 가량 할아버지와 집에 있어야 했다. 젊은 애가 나가서 일을 하지 않으니 걱정이 되셨던지 상공회의소에서 취직을 도와준다던데 한번 알아보라고 말씀하셨다. 상공회의소를 통하지는 않았지만 자력으로 취직을 했고 얼마 후 회식을 했다. 자정을 넘겨 귀가했는데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면서 당장 회사를 관두라 하셨다. 백수일 때 나가서 일하라고 눈치 주던 할아버지가. 단 한 번도 논다고 술을 마시거나 12시를 넘겨 귀가한 적이 없는 나에게.
4.
내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날 거짓말처럼 외할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부모님은 정신없이 짐을 챙겨 병원으로 가셨다. 수술 후 집에서 쉬고 있는 내게 할아버지는 '(네 부모는) 이 겨울에 창문도 안 닫고 가고.'라며 쯧쯧거리셨다. 외할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경찰조사 등 처리할 것이 많아서 부모님은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만에 집에 오셨다.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다녀왔다고, 저녁은 잘 드셨냐고 물어보는 엄마에게 할아버지는 집을 오래 비웠다는 이유에서인지 엄마를 쳐다보지도,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으셨다.
5.
내가 곧 결혼할 것이라고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상견례도 마쳤고 결혼식장도 다 예약한 후 말씀드렸더니 집이 어떻게 돌아가길래 집안의 큰 어른인 본인에게 상의도 없이 일을 진행했냐며 노발대발하셨다. 언제부터 내 인생에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그러셨다. 예약한 식장이 일반적인 결혼식장임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네가 뭐가 잘났다고 그리 좋은 식장에서 애 결혼을 시키느냐'며 '정신머리없는 놈'이라고 호통을 치셨다. '집은 어떻게 구하냐'고 물으셔서 아빠는 '남자 쪽에 아파트가 있으니 거기에 살림을 차릴거다'라고 하니 이제 결혼하는 부부가 단칸방에서 생활해야지, 정말 세상이 거꾸로 돌아간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방 건너 그 대화를 지켜보는 나를 지키기 위해 아빠는 내 방패가 되어 같이 소리를 지르며 할아버지와 싸웠고 난 약국으로 달려가 아빠에게 줄 청심환을 사왔다. '합동결혼식,' '들판결혼식'을 주장하셨던 할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난 일반적인 결혼식장에서 결혼을 했지만 식 전날까지 할아버지가 내 결혼식에서 "이 결혼식 무효다!"라고 소리치는 꿈을 반복해서 꿔야 했다.
6.
결혼식 전날, 할아버지는 방으로 나를 부르셨다. 16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할아버지 방에서 단둘이 대화를 나눴다. 사실 대화라기 보다 할아버지가 내게 주는 마지막 교훈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아끼고 또 아껴라."
"젊을 때 고생해야 한다."
"시댁에 10번 갈 동안 친정에는 한 번만 와라."
"엄마 보고 싶어도 집에 자주 오지 마라."
7.
절대 약해지지 않을 것 같던 할아버지는 내 결혼식 이후 점점 쇠약해지셨고 결국 몸을 움직이지 못하셨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시더니 어느 날 곡기를 끊은 채 "난 오늘 죽는다"라고 선언(?)하셨다. 나쁜 꿈을 꾸셨단다. 그래서 급하게 남편과 친정에 가서 할아버지를 만나 뵈었다. 건강이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지만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어 인사만 드리고 나왔다. 그렇게 본인은 곧 죽을 것이라 하시던 날, 할아버지는 밤에 아빠를 부르셨고 두 시간동안 말씀하셨다. 엄마 말로는 아빠가 할아버지 방에서 나오자마자 그렇게 우셨다고 한다. 유언이 될 수도 있는 그 말들에는 온갖 악담이 서려있었고 예순을 바라보는 아빠는 똑바로 살지 못한다며 할아버지로부터 온갖 비난을 들으셨다.
8.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죽기 싫다며, 요양병원은 더 가기 싫다며 집에 있길 고집하셨고 결국 아빠는 몇 달 동안 새벽에, 업무 중간에, 저녁에 수시로 할아버지를 돌보았다. 기저귀에 쏟아붓는 돈이 아까워 대신 자신의 것을 침대에 그대로 쏟아 내셨고 아빠는 그런 할아버지를 다 받아냈다. 그렇게 집에서 몇 달 보내시다 결국 그렇게 가기 싫다던 병원으로 실려가셨다.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던 할아버지였는데 마지막은 누구보다 고요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잠시 부산 집에 내려 온 오빠는 할아버지 병실에 들렀다가 기차를 타고 경기도 본인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너무 야위어 눈을 감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간병인이 중간중간 깨워서 생사를 확인했다. 그런데 계속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아 간병인이 아빠에게 연락하고 의사를 불렀다. 마침 주차를 하고 병실로 올라가던 아빠는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갔으나 할아버지는 이미 떠난 후였다. 볼을 만졌을 때 따듯한 걸로 보아 오래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아빠가 도착한 후 의사가 왔고 곧 사망선고를 내렸다. 오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다시 표를 끊어 부산으로 내려왔다.
장례식장에서 아빠는 내게 '그래도 할아버지 덕에 너네가 부족함 없이 잘 컸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렇게 억척스러워야 했는지, 조금은 편안해질 수 없었는지, 그 삶에 행복한 순간이 있긴 했을지. 아빠는 본인의 아버지 영정사진을 보며 그렇게 아쉬워했다. 조문객들은 하나같이 할아버지보다 아빠와 엄마를 보며 눈물을 지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오래토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아빠 동료 분이 조문을 하고 나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엄마 손을 꼭 잡고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라고 하던 모습을.
이렇게 글을 적다 보니 소설 '제인 에어'에서 제인과 친구 헬렌의 대화가 떠오른다. 제인이 헬렌에게 숙모가 자신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설명했는데 헬렌은 이렇게 얘기한다.
(숙모가) 너한테 심하게 굴었어. 틀림없이.
...
그렇지만 넌 그이가 한 말이나 네게 한 짓을 너무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어.
그이의 구박이 네 가슴에 못을 박아놓은 것 같아.
나는 아무리 구박을 받아도 그렇게 뼈아프게 외어두지는 않는단다.
그이의 구박이나 거기 따른 분한 생각은 잊어버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원한을 품거나 원통한 생각을 꼬박꼬박 외어두기에는 인생이란 너무 짧은 것 같아.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쓰다 보니 너무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날 발견하곤 역시 나답다 싶었다. 짧은 생을 살면서 가슴 깊이 원통한 마음을 품은 채 살아가는 나다. 할아버지가 어떤 세계에 갇혀 사셨는지 아직도 다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앞서 꺼내 둔 기억만이 할아버지의 모든 면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한 집에 살게 된 12살 때, 여자 아이에게는 침대가 필요하다며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 중 내 방에만 침대를 놓아주셨다. 수학여행가서 사온 부채를 두고 그렇게 날 혼내시던 할아버지는 어느 새 그걸 사용하고 계셨다. 그렇게 내 결혼식을 반대하던 할아버지는 내 남편을 처음 만난 날 "잘 부탁하오."라며 날 부탁하셨다. 결혼식 후 오빠가 "아까 할아버지가 약 기운에 정신이 없어서 전달을 못하셨다더라."라며 건넨 봉투에는 만 원짜리 30장이 들어 있었다. 결혼 후 만날 때마다 "몸 관리 잘해라."라고 날 걱정해주셨다. 돌아가신 날, 손의 피부가 다 벗겨져 많이 아프실 텐데도 마지막으로 보게 될 오빠 손은 꼭 잡으셨다.
돌아가시기 3일 전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를 뵈었다.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이불 속에서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보고 계셨다. 또 집안 어딘가를 고치고 계셨나보다. 이젠 어디에도 쫓기지 않고 걱정없이 행복하시려나.
후회하기 싫어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아버지를 돌본 아빠도, 되도 않는 악담을 받아내며 오랜 기간 시아버지를 모셨던 엄마도 이제는 조금 편안해지시길 바란다.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