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혼자 있기 좋은 방; '방'의 재해석

by 새벽숨


책 표지를 보았을 때 ‘나도 이런 생활하고 싶다’며 부러워했다. 책 제목을 보면서는 ‘그게 내가 원하는 공간이야!’라며 답답해했다. 그러면서 책 소개를 읽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림만으로 내가 원하고 필요한 방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책 '혼자 있기 좋은 방'은 방을 주제로 한 명화와 함께 삶의 여러 영역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방은 사전적 의미로 '사람이 살거나 일을 하기 위하여 벽 따위로 막아 만든 칸'이다. 하지만 작가는 '방'을 ‘한 인간의 생이 압축되어 있는 곳’이라고 재해석한다.






1. '방’의 재해석


책은 크게 네 가지 콘셉트로 나눠서 방을 설명한다. 조용히 숨고 싶은 방, 완벽한 휴식의 방, 혼자 울기 좋은 방, 오래 머물고 싶은 방. 저자는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론에서 이야기했듯 책 속 명화의 주제는 ‘방’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집 속의 방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지닌다. 저자는 침실, 욕실, 부엌, 거실, 서재, 화실, 자동차와 같은 사적인 공간뿐 아니라 카페, 지하철, 성당, 교실, 미술관 등 공적인 공간도 방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삶이 녹아있는 곳이 방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혼자 있기 좋은 방’이란 어떤 감정 상태도 자유롭게 둘 수 있는 곳이고 하루 종일 떠돌던 생각을 정리하고 압축할 수 있는 곳이다. 해야 할 일을 세거나 압박을 느끼는 곳이 아니라 편안하게 오늘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그런 방. 나에게는 욕실, 귀갓길, 카페가 그런 곳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도,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도 심리적으로 평온한 상태를 제공하는 방이 될 수 있음을 난 이미 알고, 누리고 있었다.




2. '혼자’ 또는 ‘함께’ 하는 방


나는 오래전,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혼자일 때 이어폰만 있으면 오롯이 나만의 세상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행복한 시간을 이렇게 정의 내렸다. ‘새로운 나를 건축하는 시간.’ 책의 마지막 장을 보면 저자는 나와 '소름돋게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삶이란
방을 구축하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바닥과 천장, 벽과 문으로 이루어진
공통된 네모 상자를
자신만의 고유한 장소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거듭 살피고 관리하며 가꾸어가는 것,
때로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자신의 힘으로 조금씩 헤쳐나가는 것,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각의 여백을
아름답게 채워나가는 것이 인생일테다
p 387


그런데 우리가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챙겨야 하는 이유는 ‘나’를 알기 위함도 있지만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함도 있다. 결국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시간과 공간을 나누며 살아간다. 혼자 휴식을 취하며 채운 에너지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소비한다. 아니, 새로운 종류의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서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한 곳에 오래 머물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면 더없이 즐거울 수 있다. 실제로 많은 화가들이 자신과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 또는 가족을 그림으로 남겼다. 나의 사람과 함께 한다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소소한 행복 거리가 된다. 나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곳, 그 또한 완벽한 휴식의 공간이자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다. 저자도 자신의 이야기로 이에 동의한다.


내 앞에 놓인 인생을
살아내기도 버거울 만큼
하루하루 힘들고 지치는 일투성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상대를 살피고 마음을 기울이며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거두지 않는다.
문득 이런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우리는 마지막 잔을 부딪히며
기쁘면서도 슬픈,
힘들면서도 즐거운 삶을
예찬했다.
p 170




3. 방에 걸어두고 싶은 작품


지나이다 세레브리아코바,「화장대에서」, 1909 | 지나이다 세레브리아코바,「자화상」, 1956


이 책에 나온 그림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꼽으라면 ‘지아니다 세레브리아코바’의 ‘자화상(1956년 作)'이다. 그녀의 1909년 작품인 ‘화장대에서'는 자신을 꾸밀 줄 아는 여성, 곧 자신을 그렸다. 화장대에는 화장품, 향수, 장신구들이 놓여져 있고 거울을 직시하는 그녀의 눈과 미소는 당차고 매혹적이다. 그녀와 그녀가 생활하는 방의 모습은 과하거나 거북하지 않고 제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과 에너지로 가득하다.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고,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통해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이는 그녀에게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혁명은 그야말로 폭풍이었다. 그녀는 많은 것을 잃었다. 전 재산을 약탈당하고, 남편은 교도소에 끌려가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생계를 잇기 위해 슬퍼할 새도 없이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재료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프랑스에서 일을 의뢰받아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 후 36년만에 프랑스 시민권을 얻었고 그제야 온 가족이 재회할 수 있었다. 이대로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녀는 곧 남편 곁으로 떠나버렸다.

세레브리아코바의 ‘자화상(1956년 作)’은 일흔이 넘은 그녀를 보여 준다. 하지만 그림에서는 그녀의 기구한 삶을 찾을 수 없다. 40여년 전과 같이 여전히 아름답고 다부지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깊어진 주름만큼 굴곡진 시간을 넘어왔지만, 그래, 다 겪어냈다. 그림만 봤을 땐 ‘곱게 세월을 비껴 간 여성 화가’인 줄 알았지만 그녀의 삶을 알고 나니 이 모습을 지니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도 안 간다. 차분한 방에 앉아 팔레트를 들고 초연한 미소를 건네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울컥했다. 서러운 건지, 안타까운 건지, 슬픈 건지. 이 작품을 방에 걸어놓고 매일 볼 수 있다면 힘듦과 아픔이 와도 끝내 미소를 띠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4.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글쓰는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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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면서 '화가가 무슨 글도 이렇게 잘 쓰나’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림도, 글도 모두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고는 질투가 아닌 수긍을 해야 했다. 저자는 독자에게 145점의 명화를 보여주며 화가와 그림 속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준다. 그림만 보면 느끼지 못할 것들에 화가의 삶이 덧입혀지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읽힌다. 하지만 이것은 그림 해설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첨가한다. 그림 속 식물과 요리, 청소를 주제로 예술과 삶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그림의 배경에서 우리가 살면서 지녀야 할 태도를 제시한다. 작은 현상 하나에도 저렇게 깊고 넓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보잘 것 없는 식견을 가진 나는 저자의 '세상과 사물을 보는 통찰력'이 부러웠다. 저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덕분에 미술 문외한이 그림에서 문화와 인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스스로에게 솔직할 수 있는 방을, 미뤄선 안 될 오늘의 행복이 담긴 방을, 웃을 수 없는 환경에도 미소 짓게 하는 방을 잘 누릴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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