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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혼나서 우는 게 아니라

by 새벽숨


만 3세가 갓 지난 우리 로디. 참 짧은 생을 살았는데 그간 혼난 횟수가 어느 정도 될까. 또래와 비교했을 때 더 많을까. 횟수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얼마만큼 크게 받아들이느냐도 중요할 테다. 정말 필요한 훈육도 있었지만 그중 일부는 엄마의 인내가 다 닳아버려 푸념처럼 나온 잔소리와 한숨이었다. 아이에겐 비논리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아이와의 대화가 점점 논리를 갖추고 짜임이 견고해진다. 아이가 어제의 일을 기억하고 인과관계를 이해하기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생긴다. 그래서 말 한 마디 꺼내는 것에 한 번 더 생각하고 조심을 더한다.


어느 날, 아이가 혼나고 보이는 반응이 내 어린 시절을 기억나게 해서 소름끼쳤던 적이 있다. 정확한 사건은 기억나지 않지만 로디가 예의 없는 행동을 해서 “왜 이렇게 행동해?”라고 물었는데 그 이유가 얼토당토않던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블루베리 더 줘.


하루에 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어. 더 먹으면 배 아야해.


(물건을 집어 던짐)


로디, 이게 무슨 행동이야? 화나도 물건을 집어던지면 안 돼!

블루베리 더 안 준다고 해서 화난 거야?


엄마 때문에!


엄마가 뭐! 블루베리 더 먹으면 로디 배 아프니까 안 준 건데.


엄마가 이거(물건) 바닥에 세게 놔서 로디 귀 아팠어.


엄마는 이거 안 건드렸어.


건드렸어! 귀 아야해!


논리 있는 대화가 가능한 아이가 되었음에도 물건을 던진 잘못을 어떻게든 합리적인 행동으로 우겨보려 노력한다. 난 그 이유를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내가 그랬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기에.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같은 아파트 친구 이모에게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다. 피아노를 배운 기억은 거의 없고 하교 후 친구와 그 집에서 만나 책도 읽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았던 것 같다.


그러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선생님께 크게 혼이 났다. 살면서 별로 혼나본 적이 없던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울어버렸다. 그런데 우는 걸 들키기 싫어 혼자 놀이방에 들어가 훌쩍이고 있는데 선생님이 날 보시고 왜 우냐고 물으셨다. 그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분명 “선생님한테 혼나서요.”는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는 이유를 묻는 그 질문에 굳이, 굳이 다른 이유를 만들어 낸 데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혼나서 운다고 말해버리면 혼난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서. 그리고 “네가 뭘 잘했다고 울어?”라며 더 혼날 것 같아서.


선생님도 알고 있었을 테다. 내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내 자존심을 지켜주시기 위해, 혹은 내가 어떻든 상관이 없었기에 내 감정을 모른 척 해주셨다.


사실 로디는 솔직한 편이다. 엄마의 이러한 말 때문에, 아빠의 이러한 행동 때문에 속상하다며 감정을, 그 이유를 감추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 “로디, 삐져써!”라며 돌아서거나 “로디 화났어! 엄마가 실수한 거지? 다음부터는 이러케 행동하면 안 돼!”라며 내가 말하는 화법을 따라한다. 이때 엄마인 내가 정말 실수한 것이라면, 로디 감정과 행동이 마땅하다면 사과를 하든, 공감을 하든 마음을 만져주려 한다. 그렇게 로디 마음이 풀리면 언제나 그랬듯 웃으며 안긴다.


그랬던 로디가 엉뚱한 이유를 말하며 감정의 원인을 감추려는 모습을 보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나와의 거리가 눈에 띄게 벌어지는 듯하다. 어린이집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소설처럼 꾸며 이야기하는 천진난만한 창작력이 아니다. 솔직함이 조금씩 사라지는 중이다.


자존심이 상했을까. 아니면 솔직하게 말하면 더 혼날 것 같아서 화내도 마땅한 이유를 찾고 싶어서였을까.


이렇게까지 생각할 일인가 싶다가도 이렇게까지 생각을 해야만 필터 없이 행해지던 양육을 되돌아볼 수 있다. 내가 아이를 숨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본다.




사랑하는 로디에게


로디.

넌 항상 엄마 생각보다 커져 있어.

로디는 어제보다 성장한 오늘을 살고 있는데

엄마는 한 달 전의 너를 생각하며 대해.


엄마가 널 이끌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넌 어느새 엄마보다 앞서있을 때가 많아.


그래서 엄마는 종종 불안해.

널 놓칠까봐.


엄마가 로디를 이해하지 못해

서운하게 하지 않을 정도까지는

엄마가 얼른 널 따라 잡았으면 좋겠어.


너가 아무리

엄마 생각보다 큰 사람이 되어 있어도

로디가 도움이 필요할 때

마지막까지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엄마이길 바라기에

부지런히 널 따라가 보려 해.


기다려라,

엄마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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