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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울렁증 엄마, 발표천재 아들

by 새벽숨


아들 로디가 많이 컸다고 생각하는 포인트는 주로 엄마인 내가 못하는 걸 해냈을 때다. 상대가 실수했을 때 흔쾌히 “괜찮아.”라고 해줄 때,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해!”라며 얼굴에 뽀뽀를 퍼부을 때, 사람들 앞에서 신명나게 춤을 출 때. 단순히 흥과 표현이 많은 아이라는 생각보다 어쩜 저런 용기를 내는지 기특할 따름이다. 내겐 이 모든 것에 큰 용기가 필요하기에.


그런데 유독 로디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때가 있는데 바로 교회 영아부 예배다. 부모와 함께 드리는 예배인데 어른도 아이도 많아서인지 앞에 나가서 율동하는 시간에도 아빠 무릎에만 앉아 있다. 우리가 율동을 권하기라도 하면 자신의 머리를 격하게 때리며 거부한다. 그럼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엄마도 이런 거 제일 싫어해.’ 그러곤 다짐한다. 아이에게 함부로 어떤가에 나서길 강요하지 않기로.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을 때 떠미는 것은 번지점프대에서 그냥 밀어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올해부터 유아부 예배를 드리게 된 로디는 사뭇 다르다. 선생님 말로는 에이스라며,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지내고 발표도 잘한다고. 아이를 정말 잘 키우신 것 같단다. 네? 우리 아이가요? 부모가 없어야 잘하는 아이인지, 사람이 많지 않은 곳에 한해 용기를 낼 수 있는 아이인지. 어쨌든 우리 아이가 발표를 하다니. 어릴 적 발표만 할 때면 염소 목소리를 내다 이내 뛰는 심장에 목구멍이 닫혀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고 자리에 앉았던 수많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로디가 이런 엄마를 닮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강하게 남아있는 12살 어느 날의 한 조각. “발표할 사람?”이란 질문에 어제도, 그제도 손들던 아이들이 또 손을 든다. 그것이 너무 화가 나셨는지 선생님은 눈을 피하는 아이들을 지목하며 발표를 하라며 소리를 지르셨다. 그러다 “김새벽! 너 답 몰라? 손 들어!” 내가 참 좋아하던 온화한 선생님이었는데. 고개를 숙이고 팔을 들었지만 선생님은 누구의 손도 선택하지 않았다. 분에 찬 선생님 표정과 얼어붙은 분위기가 선명하다.


18살 가창시험. 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시키고, 달리기를 시켰던 예체능 시간이 정말이지 너무 싫었다. 선생님 앞에서만 시험 볼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 손에서 정처 없이 흔들리던 악보. 음 하나 하나가 제 위치를 이탈한 목소리. 반주를 하시던 선생님이 조용하고 부드럽게 내 손을 잡아주셨지만, 어찌어찌 완창을 하고 단상에서 내려오긴 했지만 내신에 가창 점수를 포함시키는 학교에 불만을 쏟으며 붉어진 얼굴을 두 팔 사이로 묻었다.


그런데 우리 로디는 큰 목소리로 발표도 하고 무대에서 춤 출 사람을 찾을 때 손을 번쩍 들면서 앞으로 종종 걸어 나갈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부디 틀린 답변을 내질러도, 무대에서 춤을 추다 넘어져도 개의치 말고 다음 기회에도 같은 용기를 내줄 수 있길. 아, 강요는 아니다. 다만 용기 있는 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평생을 살며 배웠기에 로디는 엄마와 달리 그 기회들을 잡을 수 있는 아이로 커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하는 로디에게.


예배에 엄마가 함께 하진 않지만

유튜브 영상에 담긴 너의 용기를

엄마, 아빠가 다 지켜보고 있어, 로디.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한 가지 바람은

엄마, 아빠가 지켜보는 것이

너에게 창피함이 아니라

뿌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단 거야.


엄마는 사실

부모님이 엄마를 지켜보는 것이

늘 창피했고 부담스러웠거든.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가

엄마에게 특별한 반응을 보인 것도 아닐 텐데

왜 그랬나 모르겠어.

그걸 알면 엄마도 로디의 용기에

적절한 반응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그냥 성격 탓일까 싶지만

로디는 엄마와 다른 것 같아서

엄마, 아빠의 반응을 더 고민하게 돼.


로디가 클수록

부끄러운 감정을

더 많은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데

그때는 엄마의 무조건적인 칭찬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있겠어.


그래도 아직까지는

로디의 용기에

열심히 박수 치고

안아주고 뽀뽀해도 되는 거지?


너무 대견해, 너무.

정말 자랑스러워.


앞으로의 로디도

이렇게 자신감 넘치고

깔아둔 판에 나설 줄 아는

아이가 되길 응원해.


오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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