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을 지나 유아식에 접어든 아이들은 본인 밥상 건너에 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른들 음식을 궁금해 한다. 말 못할 시기에는 어른 음식을 가리키거나 자신의 음식을 두고 장난치고 어떨 땐 숟가락을 집어 던지기까지 한다. 그러다 말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엄마, 뭐 먹어?”, “나도 이거!” 등의 말로 어른 음식을 탐낸다.
하지만 그때마다 부모들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똑같다. “아냐. 이거 매워!” 처음엔 우리 집 아이에게만 통하는 방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자기 아이한테 케이크를 두고 “이거 되게 매운 거야.”라고 가르치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이 현상은 마치 우리 집 아이만 하는 말과 행동인 줄 알았더니 다른 집 아이들도 똑같이 하는 걸 보며 ‘얘네들은 어디서 이런 걸 똑같이 배워오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아이들에게 금기되는 맛, 매움. 쓴 맛도 싫어하는데 어른들은 유독 매운 맛으로 아이들의 식욕을 잠재운다. 왜일까? 아무래도 아이들에게 쓴 맛을 권할 때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일 테다. 채소와 약은 써도 먹여야 할 때가 있지만 매운 음식은 아이에게 꼭 먹여야 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나 아이도 크면서 다양한 음식을 맛본다. 특히 부모가 보지 않는 곳에서 더 빨리, 더 많이. 어느 날 놀이터에서 만난 할머니가 주신 하리보를 두고 이건 매워서 못 먹는다고 말하는 내게 이건 젤리라고 말하는 아들 로디. 엄마는 거짓말쟁이가 돼 버렸다. 아이에게 허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상황에서 거짓말을 했을까.
이제 종종 매운 맛도 탐낸다. 기껏 만든 아기 김치는 안 먹으려 하면서 내 라면은 꼭 맛보려는 로디다. 하도 한 입만 달라고 울어서 만 3세도 안 됐을 때 입에 면 하나를 넣어줬는데 눈을 번쩍 뜨면서 더 달라는 것이다. 큰일이다 싶었는데 다행히 로디는 입에 들어오면 안 될 것이 들어왔음을 직감하고 크게 소리지르며 울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달라고 매달리는 통에 (또 주지는 않고) 2분 만에 다 먹어해치우고 안아줬다. 혀를 때리는 면발 하나가 로디 마음을 사로잡을 줄이야. 이젠 내 소울푸드 라면조차 아이 앞에서 자유롭게 못 먹게 생겼다.
사랑하는 로디에게
젤리와 초코만은 가장 늦게 맛보게 하고 싶었는데.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젤리, 아이스크림에 눈 뜬 너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엄마이지만
사실 언제까지
이런 간식들을 통제할 수 있겠어.
로디가 초등학교만 가도 못할 거야.
엄마도 밥보다 간식이 좋고
건강식을 먹길 바라는 외할머니 말을
지지리도 안 들어.
그래서 더욱
엄마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엄마 말을 그래도 들을 시기에
건강한 음식을 입에 넣어주고 싶어.
나중에 로디가
엄마의 거짓말과 모순을 알고 나서
크게 실망하게 되더라도
엄마는 너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엄마 역할을 해야 하잖니.
또 몰라.
로디가 크고 나면
엄마도 엄마 위장이 걱정되어
건강 식단을 고집할지도.
그때는 거짓 없이 당당하게
로디에게 초록색 음식을 권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엇이든 잘 먹는 로디에서
편식쟁이에 가까워지는 로디야.
그래도 너가 깨끗한 위장을 갖출 수 있게
엄마가 열심히 도울게.
일단 네 앞에서
간식과 라면 먹는 모습을 좀 줄여야 겠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야...
함께 하자...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