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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한테 배운 손난로

by 새벽숨

아우, 추워.


입버릇처럼 나오는 말. 추울 때 춥다 하면 온 동네에 추위를 전염시키는 듯하여 가능한 밖에서는 말로 표현하지 않으려는데 집에서는 사회생활에서 발동되는 제동 장치가 다 풀려버리기에 느끼는 대로, 생각한 대로 입에서 튀어나온다. 그때 로디가 저 멀리서 우다다 달려오더니 아빠 다리를 하고 양손을 빠르게 비벼댔다.


“로디가 엄마 따뜻하게 해줄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손 위에 올려 진 한참 작은 손. 집에 있어도 얼음장인 엄마 손발을 녹여주던 아빠를 보고 자란, 그 아빠에 그 아들이다.


반팔 차림으로 출장 간 남편은 단풍이 다 떨어질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내 손발의 온도는 떨어지고 있고 로디는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다. 남편이 없는 집에서의 나는 몸과 마음이 꽤 착잡하다. 이런 내게 남편을 대신하여 아빠 미니미가 달려와 안기는데 아이들의 체온은 어른보다 높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통통한 어깨와 목에 코를 박고 침묵하는 3초.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한 시간이지만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바람이 시작될 때쯤 로디가 갑갑한지 빠져나간다.


괜히 아쉬워 로디에게 다시 부탁한다.


“로디, 엄마 손 아직 차가운데! 조금 더 오래 잡아줘.”


“알겠어. 잠시만!”


다시 힘껏 비빈다. 모양은 솥뚜껑인데 크기는 내 손바닥만한 작은 손을 열심히 비벼 내 손등 위에 올려 둔다.

사실 내 손이 더 따뜻하다. 몸은 따뜻한데 손발은 유독 찬 로디다. 그래서 손등 위의 로디 손을 다른 손으로 꼭 잡는다.


“하, 따뜻하다. 고마워, 로디. 아빠 닮아 손난로 기능이 좋네.”


남편의 부재가 내게 많은 바람을 낳는다. 차가운 나를 데워줬으면. 아이가 크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으면. 그렇게 셋이 같은 기억을 나눴으면.


아. 남편이 영영 떠났나 싶은 절절함이지만 주말에 달려온다. 격주로. 처음 남편이 떠났을 때와 비교해서 지금이 그래도 버틸만한 이유는 요 쪼꼬만 미니미가 남편의 빈자리를 잘 채워주기 때문인 듯하다.


오늘 새벽에도 그랬다.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한데 (얼마 전에는 남편이 죽는 꿈을 꿨더랬다.) 오늘도 께름칙한 꿈을 꿔서 1시간가량 잠을 뒤척였다. 그래서 옆에서 배를 내놓고 자고 있는 로디를 괜히 건드려봤다. 내 쪽으로 돌아눕는다. 재수! 볼에 뽀뽀를 쪽 하니 손으로 볼을 벅벅 닦는다. 요 녀석.


한 번 더 쪽 하니 슬쩍 웃는다. 잠결에도 엄마 사랑이 느껴지는 듯 했다. 다행이다.


퇴근 후 기꺼이 난로가 되어줬던 로디 손이 그리웠다.


이불 속을 더듬어 찾았다. 한 줌에 담기는 부드러운 내 사랑. 이불에 폭 담겨 있던 터라 이번엔 따뜻하다. 진짜 손난로다.




사랑하는 로디에게.


그거 아니, 로디?

너가 잠들어있을 때

엄마가 자주 널 괴롭힌다는 것을.


참 신기하지.

한참 작고 약한 듯한 네가

말도 안 되게 의지되고 든든하다는 게.


의지의 대상이

꼭 나보다 크고, 힘이 세고,

능력이 많아야 하는 건 아닌가봐.


엄마가 요즘

‘사랑의 기술’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일주일 못 읽었는데 어쨌든)

이런 내용이 나와.


사랑은 본래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다고.

물질이 아니라 내 속에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줘야 한다고.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인 것이며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하나의 ‘기술’이기에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고.


엄마는 아빠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는데

아빠가 없으니 금세 슬퍼지고 불안해져.

그 빈자리를 우리 로디가 채워주는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떠올라.


평소 주는 사랑을 많이 했다면

지금처럼 힘들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받는 것에 열중이다 보니

그 부재가 금방 드러나는 것 같아.

주는 것으로 내 안에 사랑이 채워지기도 하는데 말이야.


오늘은 엄마가 로디의 난로가 되어야 겠다.

마침 손난로를 챙겨 왔거든.

집에 가면 너를 꼭 안고 손을 데워줄 테야.


평생 원 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될게.

엄마 옆에 오래 있어줘.


오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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