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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이에게 어른을 기대하는가

by 새벽숨

요즘 육아법을 공부하시는 분들은 보통 아이가 잠들기 전 수면의식을 행한다. 우리는 시력을 포기하고 간접등 아래서 책을 읽어준다. 거실의 환한 빛 아래서 책을 읽고 나면 아이를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힘들어서 침실 무드등을 켜서 책을 읽는다.


“좀 비켜 줄래, 엄마?” 꼭 내 등받이쿠션에 등을 대고 엄마 팔에 안겨 책을 읽어야 하는 로디다. 나는 슬금슬금, 로디는 옆으로 비켜 주면 “고마워, 엄마” 하고 책 읽을 자세를 잡는다. 로디가 골라온 책은 자연과학 책. ‘박, 박, 수박과 호박’.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면 늘 놀라곤 한다. 글을 모르는데 내가 어느 부분을 읽고 있는지 어떻게 알까? 그림과 내 말소리를 일치시키면서 외우는 걸까? 그 능력이 늘 감탄스럽다. 내가 실수로 두 페이지를 넘기면 앞 페이지로 되돌려놓고, 특정 부분은 내가 읽기도 전에 본인이 읽어버린다. 약 올리려 그 부분만 쏙 빼고 넘기려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반응한다.


로디가 엄마 품에 쏙 들어와서 도톰한 이불 덮고 같이 책을 읽는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머리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그런데 요뇨석, 머리를 박, 박 닦는다.


(입 삐죽거리며) 왜?


(쳐다도 안 보는 로디)


(시무룩해하며 조용히) 스박 이픈 뾰조옥, 호박니픈 너얿게 자라요.


(뒤에 있는 나를 쳐다보며) “엄마, 왜 그래?”


“엄마가 왜?”


사실 놀랐다. 아이가 나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릴지 몰랐다. 아이에게 티내려 시무룩한 척을 심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에게 장난치려 삐친 척하는 정도, 섬세하지 않은 어른이라면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라고 생각했다. 로디가 섬세한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였단 말인가.


모른척하고 계속 책을 읽었다. 그런데 로디가 한 번 더 물었다.


“엄마, 왜 그래?”


그래서 대답했다.


“엄마가 왜? 이상해?”


그 뒤에 이어진 로디 말이 나를 꽤나 놀라게 했다.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엄마 여기 뽀뽀해 줘.”


“응? 응...”


(쪽)


“(꼭 잡은 손을 흔들며) 이야아아아~ 너무 좋아~”


세상에. 38개월, 4살짜리 아이가 엄마 감정을 읽고 엄마 기분을 풀어주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사실 로디와 함께 지내면서 아이의 섬세함에 놀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다 큰 줄 알았다. 부모 말을, 사건의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점점 아이와 소통할 때 ‘설득하려는 노력’을 집어넣었다. 아이가 내 말을 이해할 능력이 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길게 설명하며 마침내 납득하고 수긍하는 아이를 보려 했다.


그런데 아이가 어떨 때는 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다 큰 어른처럼 행동하다가 또 어떨 때는 신생아 아기마냥 부모 마음을 전혀 몰라주는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이 ‘어떨 때’를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는 줄 알았다. 부모 마음을 다 알아도 ‘자기 편할 때’, ‘자기가 유리할 때’는 얼마든지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른같이 행동할 때는 그렇게 기특하고 사랑스럽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않고 생떼를 부릴 때는 괘씸했다.


그런데 어제 내가 좋아하는 소아청소년전문의가 나오는 영상을 봤는데 결론은 로디를 여전히 아이로 봐줘야 한다는 것이다. 자라나지 못하는 아기로 평생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기에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미성숙함이 튀어나와도 철저한 계산 아래 의도한 행동이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상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네 가지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앞글자만을 딴 PACE로 기억하면 좋다.


Playfulness 유쾌함

Acceptance 수용

Curiosity 호기심

Empathy 공감


우리는 아이가 어릴 때 아이가 응가만 잘 싸도 기특해하며 박수를 치며 응가를 닦아줄 때 눈을 맞추며 장난을 친다 (유쾌함). 그러다 아이가 응가를 못 싸면 왜 그런지 궁금해 하고 (호기심), 아이의 힘듦을 함께 아파하며 (공감), 배변이 쉽지 않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 (수용).


그런데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부모에게서 아이를 대할 때 PACE를 잃는다. 아이가 다 큰 것 같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이 앞에서 재롱을 부리지 않아도 될 것 같고, 아이가 분명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못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래서 아이가 우는 소리를 내도 공감하지 못하고 아이의 마음 또한 궁금해 하지 않는다. 시기마다 아이가 행해야 하는 ‘과업’을 잘 해내는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면 아이를 보지 못한다.


부모는 아이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도 지치지 않고 PACE를 가슴에 새기며 아이에게 다가가야 한다.




로디가 899일 째에 처음으로 변기에 응가를 성공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으나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나도 변기를 힘들어했다. 곧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아직도 응가를 하려면 기저귀만 찾는 아이를 볼 때 답답했던 것이 사실이다. 응가할 때마다 많이 안아주고 용기를 주려고 했는데 만 3세가 지나고 나니 배변 훈련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에 불안해졌다.


12월 13일 지난 주 금요일. 아이가 1166일째 되는 날. 드디어 성공했다. 변기에. 그렇게 노력할 때는 안 되더니 외할머니가 1시간 이상 기다려준 끝에 아이는 변기에 응가를 성공했다. 그리고 어제 밤, 또 성공했다.


그래도 오늘 다시 기저귀를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답답하지 않다. 로디가 겨우 만 3세라는 사실을, 그래서 아직 한참 미성숙하다는 것을 늦었지만 깨달았기에.


변기에 앉을 때마다 용을 쓰며 힘들어하는 로디를 꼭 안아줄 테다. 말을 할 줄 안다고, 엄마가 시무룩할 때 풀어줄 줄 안다고, 3번이나 변기에 응가를 성공했다고 어른처럼 행동할 것을 기대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사랑하는 로디에게


“내가 엄마 시무룩 다 먹어 버릴거야! 앙!”


한동안 ‘시무룩하다’는 단어에 꽂힌 너.

어느 날은 너가 기분이 안 좋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엄마 표정이 안 좋을 땐

엄마의 시무룩을 다 먹겠다는 너다.


그러면서 엄마와 눈을 마주치면

어느 새 시무룩은 온데간데없고

앞이 보이나 싶을 정도로

눈을 꼭 감고 웃어 보이는 너는

정말 엄마같기도, 정말 아빠같기도 한

우리의 로디다.


오늘도 넌 아침에

엄마에게 호되게 혼나고

어린이집을 안 가겠다며 뒤집어졌지.


“할머니를 발로 찬 건 정말 잘못된 행동이야!

엄마가 몇 번 말했어!“


요새 엄마는 너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지.

“엄마가 몇 번 말했어!”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건

미성숙한 너뿐만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인데

엄마는 늘 잊고 산다.


로디가 또래보다 말을 잘하는 편이라,

주변을 세심하게 볼 줄 아는 편이라

더 그런가봐.


PACE.

엄마도 계속 지니고 싶다.

유쾌하고, 수용하고, 궁금해 하고, 공감하는 자세.


엄마가 좋아하는 그 의사 선생님이

“PACE! 제가 몇 번 말했어요!”라고 말하지 않게

계속 되새겨야 겠어.


오늘 집에 가면

어떤 모습의 로디가 기다리고 있을까.


끝까지 너를 이해하는,

이해해 보려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현관 앞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PACE! PACE! PACE!


PEACE!!



어린이집에서 세상 따분한 어른이구나,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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