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디를 본 사람들은 단번에 안다. 나를 닮지 않았음을. 로디와 그 아빠를 본 사람들은 꽤나 놀란다. 아빠를 똑 닮은 외모에. 한 번 마음 준 사람에게 완전히 직진하며, 사람이 많은 곳에서 자신의 장기를 수요가 없어도 쏟아내고 결국엔 박수를 받아내고야 만다. 두세 번 간 길이면 건물과 방향을 기억한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으며, 사람들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길눈이 밝은 로디는 아빠를 꼭 닮았다.
동시에 예민한 구석이 있다. 이 성향은 분명 엄마 것을 받았을 테다. 마냥 아빠를 닮았다면 특별한 경계 없이 주변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두루두루 잘 지냈을 것이고, 별 생각 없이 던져진 말에 크게 반응하지도 않을 텐데. 다양한 사람들에 갇혀 복잡한 세상을 무난히 살아내려면 조금은 둔한 마음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가진 엄마에게서 예민함 한 조각을 가져간 로디다.
이런 예민함은 언어 영역에서도 빛을 발한다. 또래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조사 선택이나 활용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좋은 듯한데 이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미묘하지만 다른 어감을 구분할 수 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첫째라 비교할 대상이 없고 몇 개월만 지나도 또래와 같을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다.
아이의 내면이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지 부모는 알 수 없다. 어른들의 대화를 얼마나 잘 알아듣는지, 쏟아지는 말들에서 화자의 감정을 얼마나 잘 읽을 수 있는지. 대놓고 아이 앞담화를 하던 중에 자기 얘기를 하지 말라는 아이 말에 섬뜩했던 기억. 아이들은 말로 표현하는 능력보다 훨씬 더 빠르게 말의 뜻을, 말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로디를 통해 느낀다.
‘너’라는 단어에 담긴 엄마의 감정을 단번에 알아채는 로디를 보고서 더 확신했다.
며칠 전 로디가 밥을 먹는데 먹는 태도가 영 시원찮았다. 누구보다 끼니로써 밥을 잘 먹었던 로디가 이제는 간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을 더 즐긴다. 아이 하원을 맡아주시는 외할머니에게 물어보면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를 뒤지면서 먹을 것을 달라 하는데 이전에는 구황작물을 내놔도 먹었지만 지금은 배도 안 차는 달달한 것들을 내놓으라며 시위 한단다. 그날도 역시나 저녁 밥을 먹기 싫어했고 밥으로 장난 치는 로디를 보니 단번에 버릇을 고치고 싶었다.
“너 빨리 먹어!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밥 다 먹으면 밥상 치워야 해!”
하원 후 간식을 아예 안 줄 수는 없다는 외할머니, 식사 시간을 지키게 하기 위해 타이머를 식탁에 갖다 두는 것은 질색하는 로디. 으름장이 답이라고 생각한 나는 밥 가지고 장난만 치는 로디에게 또 한 소리를 날렸더랬다. 그런데,
“너,라고 하지마, 엄마!”
“너한테 너라고 하지, 그럼 뭐라 그래?”
“예쁘다, 해야 돼.”
로디에게는 ‘너’가 ‘이놈’과 같은 것일까.
“예쁜 로디, 밥 한 술 떠보자.”
그제야 한 숟갈 떠먹는 로디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른과 대화할 때는 어조, 표정까지 조심하면서 이야기하는데 로디에게는 왜 이렇게 날것을 던지는 걸까. 성의 없이. 이렇게 민감하고 섬세한 아이한테. 이 아이한테 어른의 행동을 기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대화할 때만큼은 어른으로 대해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사랑하는 로디에게.
오늘 아침,
잠결에 로디와 외할머니의 대화를 들었어.
“너 빨리 안 먹으면 어린이집 늦어”라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너라고 하지 마세요오.”라고 당당히 말하는 너.
할머니는 당황해서 “그럼 뭐라 그래?”라고
엄마랑 똑같이 질문했는데
엄마는 이미 알고 있었지. 너가 할 대답을.
그런데 할머니와의 대화는
엄마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더라.
“할머니, 뭐라고 하지 마요오. 로디 슬프잖아요!”
엄마나 할머니나
널 다그치는 말투가 많았나보다.
아니, 그럼 좋게 말할 때
밥도 잘 먹고, 목욕도 군말없이 하러 가고,
잠도 자러 가고 하면 얼마나 좋아...
한 번 말하면 바로 행동하는 건
어른도 어려운데 너에게 기대하는 건 너무 무리겠지?
그래... 엄마가 ‘너’를 최대한 빼볼게.
그럼 로디도 “우리 예쁜 로디”로 불리면
“네, 엄마!”하고 엄마랑 딱 눈 마주치기야!
엄마 말 안 들리는 척, 엄마 안 보이는 척하면 안 돼!
약속. 도장, 꾹!
오늘 저녁식사부터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