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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말보다 친절함을 택하라

by 새벽숨


"젤리. 젤리! 젤리 달라고, 젤리!"


"안 돼."


"왜!"


(찌릿)


(멈칫)


"이렇게 떼쓰면 돼, 안 돼? 돼! 안 되는 거야. 밥 먹기 전에 젤리는 절대 안 돼. 그러니까 배가 자꾸 아야하고 응가도 잘 못하잖아!"


요즘 계속되는 아이와 나의 대화. 내 말에 한 치의 거짓도, 틀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바른 말을 할수록 다른 길을 걷는 것 같다. 이런 식의 대화 마무리는 로디의 분노로 끝날 때가 많다.


"젤리. 젤리! 젤리 달라고, 젤리!"


"로디. 어제 응가 안 나와서 배 아야 했지? 응. 밥 말고 간식을 자꾸 먹으면 응가가 잘 안 나와."


"그래도 먹을 거야!"


"아프면 안 되잖아."


"아파도 괜찮아!"


"엄마, 아빠는 로디가 안 아프고 건강하게 클 수 있게 도와줘야 돼."


"아니야!"


"로디를 아프게 할 순 없어. 식사 전 간식은 안 돼. 밥 다 먹으면 그때 젤리 하나 줄게."


그제야 아이는 밥 한 술을 뜬다. 매일 식후 간식을 당연시 여길까봐 한 번의 허용도 용납하지 않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지나친 단호함이 식후 젤리보다 아이에게 더 위험할 것 같았다.


조금 돌아가도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시간을 들여, 친절을 더해 말해본다. 그러면 바른 말을 쏟아낼 때보다는 아이가 내 말을 듣는 것 같다.


아직 아이니까 논리적으로 길게 설명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배웠다.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라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 옳다고 배웠다. 그래. 그것도 맞다. 그런데 아파도 괜찮다고 젤리를 굳이 먹겠다는 아이를 어떤 말로 설득할 수 있을까.


설득이 아닌 규칙을 말하더라도 말투의 온도만 살짝 높여주면 아이나 나나 흥분하지 않고 서로를 듣게 된다. 같은 "안 돼."도 목소리 높여 앙칼지게 말하는 것과 낮은 어조로 단호하게 말하는 것은 다르다. 말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제하기만 해도 '나는 너를 싫어한다'는 느낌 또한 배제할 수 있다. 아이가 진정된 후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면 아이의 고집스러운 부탁을 거절하면서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제까지 아이가 강하게 나올수록 나는 아이의 기세를 꺾기 위해 더 강하게 대했다. 그렇게 아이를 꺾으면 나는 엄마로서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후폭풍은 거셌다. 아이는 고집은 더 강해지고 엄한 데에 화풀이했다.


결국 육아 콘텐츠에서 배웠던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Warm & Firm)’가 옳음을 몸소 실험함으로써 증명했다. 예시 그림이나 상황극만 보면 어렵지 않은데 실전에서는 왜 이렇게 응용이 안 되나 모르겠다.


매일같이 로디와 싸우던 나는 아이가 스트레스로 아팠던 때를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잡는다. 올바름보다 친절함을 건네는 것이 아이 건강에 더 이로울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한 영화에서 알게 된 문구가 생각난다.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인데 영화관에서 2번을 보고 소장까지 했던 작품이 있다. Wonder.


극중 주인공인 어기는 안면기형장애를 앓고 있지만 누나와 부모님의 사랑 덕에 긍정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 외에 다른 이들을 만나지 않으려는 어기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부모는 어기를 일반 학교로 등교시키는데 영화는 어기의 학교, 가정 이야기를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어낸다.


어기의 학교 수업 장면에서 문구 하나가 나오는데 내가 유일하게 외우는 영어 문장이다.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옳음과 친절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택하라.


난 옳은 것은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이 바른 삶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고 때로는 바른 소리를 내는 것보다 침묵하거나 숨겨주는 것이 누군가에겐 간절할 수 있음을, 그 간절함을 내가 채워주는 것으로 친절을 베풀 수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범죄를 묵인하는 것까지 친절로 볼 수는 없겠지만.)


물론 해야 할 건 해야 한다. 놀이를 하고 나면 정리하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건강과 예의에 관련된 일은 불편해도 해야 함을 알려줘야 한다. 다만 어떻게 친절하게 해야 할 것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바른말 대신 친절을 택하는 방법 중 내게 맞는 방법은 놀이로 전환하는 것.


상황 1. 놀잇감으로 어질러진 거실

기존. “다 갖고 놀았으면 좀 치우자.”

적용. “이야, 책 밟기 놀이 했어? 징검다리가 기네. 우리 다리 접기 놀이도 해보자!”


상황 2. 양치하기 싫어 5분 째 도망 다니는 로디

기존. “이 썩으면 너 좋아하는 과자 앞으로 못 먹어. 셋 셀 때까지 안 오면 이놈한다! 하나, 둘!”

적용. “이에 있는 벌레 잡자. 엄마가 벌레 잡는 고양이로 변신한다! 사뿐... 사뿐...!”


매번 새로운 상황이 생기기에 공식을 만들 수는 없다. 극S인 엄마는 창의적인 엄마들이 늘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래도 발전이 있겠지. 노력하다보면. MBTI도 이겨내게 만드는 것이 육아니까.




사랑하는 로디에게.


변기에서 소변을 잘 보던 로디였는데

갑자기 바지를 다 적신 후에야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서.

한 2주 된 것 같아.


그때마다 엄마의 불편한 표정이

너에게 닿았을 텐데

너도 마음이 불편했지?


잘 하다가도 퇴행될 수 있고

아직은 미성숙하기에

잘할 때도, 안 될 때도 있는 것이 정상인데

엄마가 자꾸 잊어버리네.


흔쾌히

“너무 재밌게 놀아서 신호를 놓쳤나봐.

다음엔 신호 언제 오나 기다려보자!”

라고 말하는 친절한 엄마가 될게, 오늘은.


오늘이 내일이 되고

내일이 일주일이 되는 그날까지,

작심일일은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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