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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아들의 사회생활 엿보기

by 새벽숨


아들 로디와 유치원 버스를 같이 타는 동갑내기 여자 아이 로아(가명)가 있다. 로디와는 어떤 날은 죽고 못 살다가 또 어떤 날은 눈도 안 마주치는 그런 사이다.


언젠가 스쿨존에서 만난 로아가 로디를 아는 체도 안 한 날이 있다. 현관문을 나설 때부터 로아와 같이 앉겠다던 로디는 로아의 반응에 많이 실망한 듯했다.


로디는 로아에게 말을 붙여보려 했지만 로아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때 내 아들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김로아! 너 나랑 앉기 싫어?”


사실 적잖이 놀랐다. 우리 로디는 보통 마음이 상하면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줄 것처럼 말한다.


“내가 더 싫거든!”, “나한테 오지 마!”, (말없이 먼저 버스에 들어가 혼자 앉아버린다.)


내가 예상했던, 봐왔던 로디의 행동은 이 정도인데 전혀 다른 재질의 물음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우리 아들의 사회생활을 엿본 느낌이랄까.


결국 그 날 로아는 로디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먼저 버스에 올라 타 다른 친구 자리에 앉았다. 로아를 졸졸 따라 간 로디는 다른 친구 옆에 앉은 로아를 보고서도 다른 자리로 가지 않고 서성였다. 선생님이 로디를 그 앞좌석에 데리고 간 다음에야 로아를 포기하고 안전벨트를 하면서 내게 인사를 했다.


이 장면만 보면 우리 로디가 안타까울 수 있지만 사실 로디도 만만치 않게 다른 친구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줬을 것이기에 크게 마음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당시 마음이 저렸던 건 어쩔 수 없다.)




근처에 같이 어울리는 친구가 없을 때는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길이 없어 로디의 사회생활이 퍽 궁금했다. 어린이집에서 몰래 아이의 행동을 관찰해볼까 싶기도 했고 키즈카페라도 가서 낯선 친구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런데 로디가 두 돌 정도 되었을 때 모르는 친구가 옆에 오기만 해도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능한 또래가 적은 공간을 골라 다녔다.


그랬던 로디가 세 돌이 지나면서 많이 달라졌다. 관심 있는 친구를 발견하면 처음 보는 아이라도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말을 붙이고 같이 놀이를 해보려 한다. 이제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종종 만났던 친구를 자신의 제일 친한 친구라고 이름을 대며 내게 소개할 정도다.


친한 친구랑 놀더라도 마음이 안 맞는 순간은 토라지기도 하지만 이전처럼 몸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설명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질 것이라는 주변 선생님들과 온라인 선생님들의 말씀을 눈으로 보는 순간들이다.


유치원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로디는 참 사랑이 많은 아이다. 하원하면서 선생님 손에 뽀뽀를 해주고 사랑한다는 애정 공세도 서슴지 않는다. 하고 싶은 놀이가 있다면 주변 친구들을 모집하고 역할극도 좋아해서 요즘 한창 ‘여보 놀이’에 빠져 있다 한다. 선생님에게 ‘여봉봉(우리 부부의 애칭)’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굴이 너무나 화끈거렸지만 엄마, 아빠가 싸운 이야기를 떠벌리는 일은 하지 않으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어린이집에서 아이 기질을 검사 받아보라는 말에 덜컥했던 날도, 유치원 입학 시 아이 특성을 적어달라는 종이를 빼곡히 채웠던 순간도, 우리 애만 이런 거냐며 날뛰는 아이를 보며 허탈하게 눈물짓던 장면도 이제 보내줘야 될 때인가 보다.


혼자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싶지만 태초부터 우리는 혼자 사는 게 불가능한 인간으로 태어났고 결국 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된다면 그 안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를 지키는 방법들을 계속 배워나가야 된다. 30년을 넘게 살아간 나에게도 어려운 사회생활 수업에 아이가 원활하게 임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기특하다.




사랑하는 로디에게


친구한테 손 내밀 때,

그 손이 거절당할 때

너의 반응들을 살펴봐.


엄마는 애초에 손을 내밀지 않는 사람인데

로디는 아빠를 닮았는지

애써 낸 용기를 거절당한 후에도

친구에게 또 다가가는 다른 종류의 용기를

배워가는 것 같더라구.


너를 보면서 배운다.

건강한 사회생활이란 저런 것인가, 하고.


엄마는 네 나이의 7배를 살고도

상처에 면역되지 않아.

상처를 감내할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지경에 이르렀어.


너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행여나 다른 친구에게 말을 걸까봐

두근대기도 하고,

혹시나 다른 아이 엄마가 말을 걸까

놀이터에서는 오직 너만 쫓아다니지.


사실 로디를 데리고 놀이터에 잘 가지도 않지만.


로디의 사회생활을 보며

엄마도 이제 용기를 내야 될 때임을 직감하고 있어.


내년에 로디 동생 열매가 나오면

엄마에겐 워킹맘이라는 도피처를 마련해 준

회사도 사라져.


이제 엄마의 사회는

아이들의 하원을 기다리는

엄마들의 무리가 되지 않을까.


맘카페, 블로그를 전전하면서도

얻지 못한 많은 육아 정보들을

발품 팔아 수집할 때가 왔나봐.


2년 뒤면

엄마는 로디 초등학교 정보를 얻으러

토끼처럼 귀를 열고 다니겠지.


용기를 줘, 로디!

새로운 사회로 들어설 엄마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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