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기록된 나의 하루

by 새벽숨

김영하 작가의 책 '여행의 이유' 중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호텔은,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집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가? 집은 의무의 공간이다.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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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안식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상처의 쇼윈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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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머무는 호텔에서 우리는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떠나면 그만이다.




그렇다. 집은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흡수한 공간이다.


내가 기대한 '거실'은 가족이 한데 모여 TV를 보거나 밥을 먹으면서 마음으로든 말로든 소통하는 장소다. 하지만 우리 집은 달랐다. 우리에게 거실은 할아버지로부터 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실로 두꺼운 장벽이었다.


내가 기대한 '나의 방'은 내가 가장 안락함을 누리는 장소다. 하지만 내 방은 방이라기보다 요새였다. 누구도 노크 없이 열 수 없도록 단단히 닫혀 있어 가족에게는 접근이 어려운 동굴과 다름없었다.


내가 기대한 '욕실'은 방보다 개인적인 공간으로, 아무 생각 없이 혹은 별의별 생각을 하며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다. 하지만 우리 집 욕실은 외부와 통하는 창문 덕에 택배 아저씨가 올 때면 실루엣이라도 보일까 얼른 주저 앉아 씻게 되는, 즉 프라이빗한 공간이 아니었다. 또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아빠가 뜨거운 물로 미리 덥혀 주지 않으면 샤워하기가 겁나는 곳이었다.


힘들고 지쳤던 바깥 생활에서 날 해방시켜 주리라 기대한 현관문을 열면 해방이 아닌 또 다른 종류의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고된 생활을 끝내고 들어온 집에서도 적잖은 피곤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집에 계신 동안은 줄곧 그랬다.


결혼 후 친정에서 나와 구속이 없는 새 집으로 옮겨왔지만 집은 집이다. 30년을 따로 살아온 사람과 하루 아침에 한 공간에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데 깨만 볶을 수는 없을 터.


주방에서는 "나만 살림해?"라는 나의 날카로운 언성이, "결혼해서 행복한 거 맞아?"라는 남편의 젖은 목소리가 들린다. 침실에서는 돌아누워 우는 내가, 그런 나를 가만히 안고 생각에 잠긴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그 마음만큼 넓고 묵직한 그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토닥, 토닥. 그 울림에서 나는 안락함과 죄책감을 느끼며 쓸쓸하게 잠든다.


그런데 집에 새겨진 우리의 감정이 그것뿐일까. 그랬다면 친정을 떠나왔을 때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았다. 곰팡이 슨 내 방은 내가 떠난 후 새 벽지로 도배되었는데 천장의 형광별이 사라진 것을 보니 못내 아쉬웠다. 대학 때까지 불을 끄고 혼자 자지 못했던 내게 형광별은 어둠 속에서도 평온할 수 있도록, 가끔 찾아오던 가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준 꺼지지 않는 빛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둡고 칙칙했던 내 방이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최적인 서재가 되어 주었다.


신혼의 불안정이 계속 되었다면 우리 집을 떠올릴 때 가슴이 답답해 올 것이다. 하지만 띠리릭- 도어록 소리만 들려도 강아지처럼 방방 뛰며 남편에게 달려간다. 인사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가방을 들어 내가 좋아할 만한 간식을 쏟아낸 채 칭찬을 기다리는 남편의 모습이 식탁 모퉁이에 선명하다. 목과 어깨 통증으로 두통까지 오는 날 위해 온 힘을 실어 안마를 해주는 남편 덕에 시원한 고통이 자아낸 곡소리가 침실을 가득 채운다. 지금 나는 우리 집을 떠올릴 때 남편이 생각나고 그것만으로 평온함을 느낀다.


집은 분명 정리되지 않은 슬픔과 아픔을 흡수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어느 것과도 바꾸지 않을 소소한 만족감이 층층이 자리한다. 삶에 생긴 균열 사이사이에 축적되어 내 불안함을 잠재우는 그 만족감은 ‘우리 집’에서 만들어 졌다.




결혼 6개월 전 우리 집


신혼 1년차 우리 집


현재 즐거운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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