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어떻게 놀아야 잘 놀았다고 소문이 날까

by 새벽숨


우리도 가을에 캠핑 가보자


응, 가자


진짜! 진짜다!


응응, 가자가자



코로나가 빼앗아 간 봄. 그래서 더욱 반가웠던 계절, 가을. 어떻게 하면 잘 느껴볼 수 있을까. 폐를 열어 작은 구멍으로 가을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 보지만 이내 마스크에 부딪혀 사라진다. 감각 기관이 코밖에 없을까! 눈과 손도 있다. 연차도 많이 남았겠다, 우리 부부는 미뤄왔던 캠핑을 단풍이 사그라드는 느지막한 가을에 실행해 보고자 계획을 짰다.


해외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라 캠핑족이 늘었다고 하지만 앞으로 한두 달은 주말 예약이 끝나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평일에 가야 해야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한 곳을 정했다. 숙박 비용에 석식이 포함되어서 따로 고기를 사 먹지 않는 한 추가 비용은 들지 않았다. 자는 곳이 깨끗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가도 충분할 만큼 넓었다. 게다가 감성을 더해 줄 해먹도 있었다.


예약 후 글램핑에 가기까지 일주일이 남았다. 그동안 비가 오면 어쩌나, 아이들이 너무 많아 시끄러우면 어쩌나 등 별의별 걱정을 다 했다. 하지만 비가 와도 데크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었고, 아이들이 만드는 소리는 캠핑 느낌을 돋우는 효과음으로 받아들여 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완벽한 글램핑을 꿈꾸며 여행을 기다리는 7살짜리 아이처럼 일곱 밤을 하나 하나 세면서 잠을 청했다.


띵동.


드디어 가을을 한껏 누릴 휴가가 도착했다. 오전 근무를 마친 남편을 만나 맥도날드에서 부담스럽지 않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글램핑장 근처 마트에 들러 간단히 간식거리를 샀다. 보통 캠핑에 간다 하면 아이스박스에 온갖 재료를 준비해 가겠지만 음식에 빨리 질려하고 배부르다고 칭얼거릴 나를 잘 알기에 이번엔 글램핑장에서 제공하는 400g의 고기와 그 외의 부속재료(버섯, 소시지, 새우 등)로만 해결하기로 했다. 대신 집 냉장고에 남아있던 파프리카와 마늘, 양파를 챙겨 가서 알뜰하게, 욕심 없이 만족스러운 한 끼를 완성할 계획이었다.


글램핑장에 도착해서 사장님께 몇 가지 설명을 들은 후 텐트로 향했다. 생각보다 넓고 깨끗한 숙소 덕에, 처음 체험해 보는 해먹 덕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십여 분을 보내다가 숙소로 들어가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잠자는 곳과 분리된, 하지만 하나의 천장으로 보호된 데크로 나왔다. 이런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우리(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나)를 담기 위해 삼각대에 카메라를 세팅한 후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쳤다. 그런데 30여 분 지났을까, 정말 생각지도 못한 감정에 휩싸였다.


심심하다



책은 재미있었다. 내가 하루 동안 누릴 장소도, 환경도 완벽하리만큼 좋았다. 그런데 왜 심심할까. 내가 책을 읽는 동안 남편은 핸드폰으로 소설인지 스포츠인지를 보고 있었다. 좁은 의자에 앉아 불편한 자세로 그 작은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나 혼자 이 행복을 누리는 것 같아 미안했다. 함께 즐기자고 온 여행인데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할 수 있는 독서를 굳이 캠핑장에서까지 하는 것이 왠지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사장님께 고기를 받아오기까지 1시간은 남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일단 같이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야 했다.


책을 덮고 같이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배가 조금 고파져서 과자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TV를 켰다. 채널을 하나 하나 돌려 가면서 볼 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그때 이제 막 캠핑장에 도착한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소리가 들려 왔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뛰어가듯 걷는 아이들, 데이트를 즐기러 온 20대 커플들. 우리 옆 텐트는 스피커도 챙겨 왔는지 감성 넘치는 곡들을 아주 빵빵하게 틀어 대면서 분위기를 돋웠다. 그 음악을 듣고 있자니 우리가 틀어 놓은 TV 소리가 더없이 소음으로 다가왔다.


얇은 천막 사이로 흐르는 괴리감. 나만 느끼고 있는 걸까?


오랜만에 오롯이 둘 만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즐겨 보려 했다. 그런데 나는 고기 구워 먹을 시간, 오로지 그 이벤트가 빨리 시작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보드게임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라고 물으며 남편의 눈치를 살폈는데 남편은 "그런가?"라고 대답하며 눈은 TV에 고정하고 있었다.


나의 복잡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제 속도대로 흘렀고 곧 식사 시간이 되었다. 이제야 뭔가를 하는구나 싶어 신나게 상을 차렸으나 생각보다 고기는 부족했고 찌개를 대용할 요량으로 사 온 인스턴트 국물은 30% 부족한 맛을 내었다. 고기가 부족해도 상관 없을 정도로 야심차게 계획했던 소시지 꼬치는 처절하게 실패했고 설상가상 동물을 끔찍이 무서워하는 나에게 고양이가 고기를 달라며 자꾸 울어댔다. 즐거워야 한다는 압박감에 어떻게든 즐겨보려 했으나 고양이를 이길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서둘러 식사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보루였던 대망의 바베큐파티까지 기대와 달라 조금 적적해졌다. 하지만 할 건 해야 했으므로 마지막 계획을 이행하기로 했다. 밤중 독서. 책과 커피, 담요를 들고 데크로 나왔다. 그러고는 김영하 작가의 책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펼쳤다. 작가가 부인과 함께 한 시칠리아 여행에 대해 쓴 글인데 '의외로' 이번 여행 내내 안고 있던 고민을 풀 수 있는 힌트를 주었다.




P287


"(아내) 난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작가) 어떤 사람?"


"난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었어." ... "특히 여행 같은 거 떠날 때는 더더욱 그랬지. 예약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 보니까,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뭔데?"


"그냥, 그냥 사는거지. 맛있는 것 먹고 하루종일 얘기하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그러다 자고."





작가는 여행 내내 의외로 힘들었고 의외로 계획이 흐트러지는 상황을 무수히 경험했지만 의외인 곳에서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 시간들이 의외성을 힘들어 하는 와이프의 성향을 바꿀 만큼 놀라운 경험이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여러 가지 의외성이 나타났다. 우선 가장 넓고 좋은 곳이라 생각했던 우리 숙소는 화장실, 쓰레기장과 가까워서 사람들에게 계속 노출되는 자리였다. 그래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유유자적한 독서 시간을 가질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기대했던 식사 시간은 고양이의 울음과 매서운 시선 때문에 편치 않았고 음식도 충분하지 않았다. 왁자지껄한 커플과 가족들 사이에서 '놀 줄 모르는 부부'로 자리를 꿰찬 기분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우리가 예약한 텐트로 걸어가는 동안 발에 채여 오돌오돌 굴러가는 돌멩이 소리가, 나뭇잎에 부서져 떨어지는 햇살이 완벽한 가을을 더 완벽하게 꾸며 주었다. 공용 시설이라 걱정했던 화장실은 너무나 깨끗했고 마찬가지로 공용으로 사용해야 했던 샤워장이었지만 쾌적하게 혼자 샤워할 수 있었다. 핸드폰 용량과 배터리가 모자라지 않아 그 어떤 여행보다 많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고 밤이 조용해서 혼자 데크에서 커피를 마시며 독서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다음 날 아침에는 퇴실 전까지 어제 못한 '유유자적한 독서'를 누릴 수 있었다. 그것도 커다란 행복인, 커다란 기쁨인 가을 아침에. (feat. 아이유) 이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니!


항상 행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고. 그러니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의외로 심심해서 당황했던 상황 때문에 의외로 좋았던 기억들을 잃어버렸다. 그것도 꽤 많이. 아침 8시쯤 일어나 세수를 하고 한적해진 주변을 돌아보았다. 전날보다 조용해진 덕에 물레방아를 돌며 떨어지는 물소리가, 걸음마다 부서지는 낙엽의 바스락거림이, 어제는 보지 못했던 바람개비의 회전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렇게 15분 정도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날 둘러싼 가을을 느껴 보았다.








그러고 2주 후 주말, 약속을 마치고 밤늦게 집에 들어 온 내게 남편이 깜짝 제안을 했다.


"우리 일출 보러 갈래?"


주말 오프를 함께 하는 기념으로 즉흥적인 일탈을 기획해 준 남편은 5시간도 못 잔 채 날 데리고 1시간을 달려 울산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지구가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 쉬지 않고 임무를 다하는 태양의 '출근'을 지켜보았다. 얼마나 열정적인지 내 시야의 저 끝에서 이 끝까지 붉게 물들였다.


또 오늘은 연차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조금 있다가 선물이 하나 갈 거예용. 초인종 소리 들려도 놀라지 말아요."라고 하더니 정말 조금 있다 선물이 도착했다. 내가 애정하는 가게의 커피와 마카롱이. 어느 때보다 바쁜 요즘을 보내고 있는 남편인데 집에서 쉬고 있는 나를 기억해주고 더 행복한 쉼을 선물해 주려는 그 마음이 놀라워 살짝 눈물이 났다.


여행이든 데이트든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하는 날이면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날 위해 남편은 부단히 노력해 주었다. 심지어 빼곡한 일상에서도 틈을 만들어 내 행복을 위해 계획하고 실행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각자 시간을 보내면서도 우린 나름의 방식대로 서로를 느끼며 즐거울 수 있다. 지금도 나는 거실에서, 남편은 서재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뭔가를 하고 있다. 그러던 중 남편의 뜻 모를 리액션(웃음, 흥얼거림, 추임새 등)이 들리면 무슨 재밌는 걸 보나 싶어 입꼬리가 올라간다. 남편은 곧 브런치 알람을 듣고 내 글을 보며 와이프 시선에 비친 자신을 보겠지. 그러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러고보니 2주 후면 딱 결혼 2주년이다. 나중에 2주년에 뭐하고 놀지 물어봐야지. 아니, 이 글을 보고 나면 알아서 물어 보겠지.


우리 2주년에 뭐하고 놀까?


(라고 적고 글을 수정하는 동안 남편이 침실로 들어가더니 바로 뻗어버렸다. 뭐, 내일 물어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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