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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Dec 04. 2020

늘 괜찮다고 대답했던 당신에게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기분을 모른다. 기쁜지, 슬픈지, 편안한지, 불편한지. 어찌하여 지금 감정을 알았다고 하자. 그러면 그 감정은 어디로부터 온 걸까? 불쾌한 감정이라면 그 원인을 알아야 해결을 할 텐데 아무래도 알 길이 없다. 그러면 외부 자극을 이용하여 부정적인 기분을 덮으려 한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자신에게 잘 통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맛있는 음식, 유쾌한 영화, 중독성 있는 게임.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분류된 그것들은 감정의 원인을 저 깊이 묻어두는 데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 원인이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끝까지 날 물고 늘어진다면.



브런치북 『사실은 괜찮지 않았어』는 한 번도 우울해 본 적이 없는 작가가 우울증을 진단받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화장을 지우고 침대에 눕는 것만으로도 하루 최소 다섯 시간은 극도로 행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평생 '우울'이란 기분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데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제주도 여행에서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오한이 들었다. 증상이 계속 되어 공항에서 처방 받은 약을 먹었더니 겨우 심장이 얌전해졌는데 그 약은 몸살감기약도, 근육이완제도 아니었다. 손을 덜덜 떨며 입에 털어 넣었던 그 약은 신경안정제였다. 공황 발작 증세를 겪은 후 우울증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던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우울하다는 것을. 


집에 돌아와서 여느 때처럼 휴대폰을 붙들고 있는데 유독 ‘우울증’이라는 글귀가 눈에 많이 띄었다. 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지나쳤을 단어다. 하지만 평생 남 일 같던 이 단어가 몇 시간 전부터 당장 내 일이 되어 버렸다. 하나씩 눌러 보던 나는 우울증을 경험했다는 20대 여성의 영상을 보다가 멈칫했다.

'끝없는 바다로 가라앉는 것 같고'

세상에, 나는 그 느낌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이런 걸 우울하다고 하는 거였어?


어릴 때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 쉽게 알 수 있었고 또 쉽게 표현했다. 그런데 어느새 내 감정 하나 모르는 어른으로 자랐다. 아마 가족, 학교, 회사 등 여러 공동체를 지나오면서 감정을 숨겨야 편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그 경험이 쌓이다보면 날 외면하고 속이는 데에 능숙해진다. 그러면 스스로의 감정을 읽지 못하고 결국 그 안에서 길을 잃는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우울했다 행복하고, 친절했다 화를 내는 사람이 된다. 


작가는 좋지 않은 가정환경에서도, 첫 출근 날 왜 여자를 데려왔냐고 소리치던 상사 밑에 있어도 잘 살고 싶어서 참았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밝고 씩씩한 것이 천성인 줄 알았고 그래서 우울증에 빠졌다고는 의심조차 못했다. 마음 깊이 묻힌 아픔은 결국 몸으로 반응했고 그것을 계기로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그동안 모른 척했던 자신을 발견한다. 그제야 상담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약을 먹으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해 간다.


독자는 감정에 대한 무지가 나를 어떻게 끝없는 바다로 가라앉게 하는지, 또 그 심해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 작가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 받는 일이 생각보다 그렇게 낯설거나 두렵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기계적으로 "난 괜찮아."를 남발해 온 독자라면 머리와 입술이 아닌 자신의 마음에게 이렇게 물어볼 수 있길 바란다. "천천히 대답해 봐. 정말 괜찮은 거야?"


작가는 2019년 채륜서 출판사를 통해 책을 출간했다. 브런치 10화를 마무리하면서 작가가 밝힌 사실은, 브런치에 절반 분량을 연재하고 출판사와 계약할 때만 해도 책에 가족 이야기가 담길 줄은 몰랐다. 상담을 이어가던 중 작가 내면에 깊이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책은 처음 기획과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출간되었다. 그래서 독자는 보다 더 날것으로 표현된 작가의 경험을 통해 따끈한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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