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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Dec 05. 2020

아빠 환갑에 김가네 웃음꽃이 폈다

아빠도 드디어 환갑이구나. 요즘 세상에, 또 이 시국에 무슨 환갑 잔치냐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엄친딸만큼은 못해도 내가 보고 들은 것 중 할 수 있는 것은 해 드리고 싶었다. 그간 부모님 생신이나 기념일은 타지에 있는 오빠 대신 나홀로 챙겨 드렸다. 하지만 올해 초 퇴직을 하시고 하루 종일 집에 계시면서 별다른 이벤트 없이 지내시던 아빠를 위해 올해는 이전 생신보다는 재밌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오빠에게도 내려와서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생일잔치를 준비하면서 파티 비슷한 것을 준비한다는 설렘이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생일은 엄마가 해 준 잡곡밥, 미역국, 잡채로 채워진 밥상과 후식 케익을 먹는 날이다. 물론 이것으로 충분하지만 우리 집 생일 잔치는 아주 차분하다. 안방에서 케익에 불을 켜고 박수를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지만 방 문을 뚫지는 못할 만큼 조용 조용하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 동안, 즉 내가 결혼하고 이 집에서 나갈 때까지는 늘 그러했다. 그러니 요란한 생일 잔치는 친구들과만 나눌 수 있는 특별한 행사였다. 그마저도 나이가 들면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올해는 아빠 환갑이지 않은가. 요란한 것을 즐기지 않으시지만 적당한 재미는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남매는 평소답지 않게 꽤나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셨는지 전화할 때마다 강조하셨다.


간단히 하자, 간단히.

너무 신경쓰지 마.


남편과 내가 모두 출근하는 날 식사를 해야 해서 우리 회사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한정식 집을 예약했다. 아빠, 엄마, 오빠가 먼저 도착하고 남편과 내가 케익을 들고 예약된 방에 들어서는데 차분-하고 조용-한, 아주 우리 집다운 분위기였다. 셋이 쪼로미(경상도 방언; 나란히) 앉은 모습이 귀여워 마스크에 감춰질 만한 옅은 웃음이 나왔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그냥 참았을 텐데. 그래, 우리 집 분위기는 이렇지.


경상도 특성인지, 엄하고 별난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서인지 우리 집은 좋은 감정을 잘 숨길 수 있다. 들뜨지 않을 수 있고 설레발치지 않을 수 있다. 그나마 엄마가 즐거우면 즐겁다고, 신나면 신난다고 표현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힘듦은 내색하지 않는 능력도 겸비했다.) 그에 반해 김가네 세 명은 밍숭맹숭 혹은 무뚝뚝 혹은 까칠하다는 평을 받는 편이다. 우리 중 까칠에 가장 가까운 아빠를 즐겁게 할 수 있을까.


기나 긴 코스 음식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수정과와 과일이 나왔다. 이때다 싶어 케익을 슬그머니 꺼냈다. 하지만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인싸들만 할 것 같이 생긴 오천만 원이 꽂힌 토퍼!


회사에서 꼬깃꼬깃 만드는데 "새벽쌤이 이런 것도 하구나"라는 말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오늘은 아빠의 날이니까. 아빠만 즐거우면 되니까. 그런데 돈 가지고 장난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여러 가지 걱정이 떠올랐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뭐라하지 마!"라고 선포한 다음 케익 위로 토퍼를 딱 꽂았다.


이게 뭐야!

박수와 웃음소리가 터졌다. 예상보다 더. 아니 넘치게! 생각보다 반응이 좋길래 문구를 쓴 액자와 용돈도 드렸는데 아빠가 신나하셨다. 그리고 그 신남을 숨기지 않으셨다.


돈이 최고여! 땡큐!


김가네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웃음꽃이 만발했다. 사실 내가 결혼하고 남편이 우리 가족이 되면서 웃음이 더 커지고 잦아졌는데 그 차이는 엄마를 보며 느꼈을 뿐, 아빠는 말투가 조금 부드러워진 것 말고는 큰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빠가 이렇게 즐거움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가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아빠의 생신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 3일은 기분이 좋았다. 내적으로 평온한 강이 흐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2주 뒤 알람이 왔다.


엄마님이 100,000원을 보내셨습니다.


곧 이어 또 알람이 울렸다.


아빠님이 200,000원을 보내셨습니다.





엄마, 돈이야?


아, 결혼 2주년 놀러 간다며? 재밌게 놀다 와, 딸~


아니, 아빠도 돈 줬던데? 둘이 상의 안 하고 보냈지!


에?! 너네 아빠는 왜 말도 안 하고 보냈대!

그럼 내 돈은 돌려줘ㅠㅠ


(안 들리는 척) 아빠는 어딨어?


옆에 있어. 저, 저 모른 척 하는 거 봐! 잠시만.


< 바꿔주는 중 >


어.


아빠, 우리가 환갑이라고 돈 드렸더니

그걸 나한테 다 주면 어떡해!


어. 우리 사위 맛있는 거 사주라고.


아, 사위... 사위 고기 많이 먹여야 겠네. 감사합니당.


그려.




그렇게 우리는 마음을, 물질을 주고 받았다. 이제 기쁜 것은 기쁘다고 표현하는 김가네의 변화가 반갑다. 그래서 기쁘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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