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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May 11. 2022

어머니, ‘우울’ 점수가 높게 나왔어요

아이가 100일이 조금 넘었을 때, 보건소에서 ‘생애초기 건강관리사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사업은 임산부 및 산모에게 영유아 간호사가 방문하여 무료로 엄마와 아이의 건강을 체크해주는 서비스다. 나도 이 서비스를 신청했으나 코로나 대유행으로 사업이 일정 기간 중단되면서 결국 이 좋은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간호사 분으로부터 사업이 다시 진행된다고 문자가 온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이제 7개월이 되었고 나도 아주 힘든 ‘초보 엄마' 시기를 넘겼기 때문에 ‘우리집에는 방문하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답했다. 그렇게 문자가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간호사 분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당시 산모 우울 검사에서 점수가 높게 나왔는데 지금은 어떠신가요?’


아, 그랬구나. 나 그때 힘들었지.




아이를 낳자마자 친정집에 들어왔고 그 생활은 아이가 7개월인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계약 문제로 집이 붕 떠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집, 특히 친정집은 날 보호하는 듯하면서도 이제 치유됐다고 믿은 상처를 보란듯이 끄집어냈다. 집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을 흡수함으로써 그들의 마음 속에서 자신을 키워 간다. 나 또한 내 안에 자리 잡은 집을, 그 안에 터 잡은 고통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결혼 후 이곳을 떠났던 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단숨에 이 집의 막내딸로 돌아갔다. 그늘이 드리운 눈빛, 날카롭게 베인 미간, 무겁게 침잠된 목소리. 딱 결혼하기 전의 나로.


이렇게 어두워진 나를 밝은 빛으로 끌어내 줄 사람은 남편밖에 없는데 출산 직후 남편은 장기 출장을 떠났고 우린 두 달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매일 영상통화를 했는데 그것으로는 갓 태어난 아기와의 ‘멘붕'같은 하루를 충분히 나누지 못했다. 매일 밤 남편 전화만 기다렸지만 막상 전화를 받으면 ‘여보세요'말고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척척한 흐느낌을 한참 들어주던 남편은 자신이 옆에 있어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며 “여기서 같이 살래?”라고 물어주었다. 실현 가능성은 적었으나 그 말은 진심이었고 내가 원한다면 단기 임대를 해서라도 나와 함께 해 줄 사람이기에 랜선으로나마 위로가 되었다.


두 달간의 출장을 마친 남편은 다시 세 달출장을 떠났고 우리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토요일 저녁에 남편이 집에 오면 부모님이 사위의 편안한 쉼을 위해 당신들이 아이와 함께 자겠다고 말씀해주셨다. 마냥 신나하는 내 모습에 피식 웃으시며 아이를 데려 가셨고 나와 남편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새벽 1시쯤, 갑자기 숨이 가빠져 잠에서 깼다. 보일러 때문에 방이 답답한가 싶어 화장실로 갔다. 창문이 있어 밖과 통하기 때문에 방보다는 덜 갑갑했다. 5분 후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는데 아까보다 심하게 숨이 막다. 들숨과 날숨의 박자가 들쑥날쑥하더니 급기야 끅끅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이 보고는 놀라서 날 안고 토닥여줬는데 어찌 된 일인지 가빴던 숨이 차분해지면서 크고 안정된 호흡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증상은 두 번의 주말, 그것도 남편과 내가 단둘이 잘 때만 나타났다. 이를 두고 남편과 새벽 4시까지, 약 3시간 가량 토론하였는데 결론은 비교적 단순했다. ‘눌러온 스트레스가 안정을 주는 남편 앞에서 터져버린 것’으로. 그리고 얼마 후 엄마와 깊이 대화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 집에 16년간 살면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심장병으로 오해할만한 그 증상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짧고 굵게 지나간 에피소드였지만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부모님이 날 진심을 다해 사랑하시구나, 그럼에도 나는 부모님과 이 집으로부터 상처를 받았구나, 나의 내면을 나보다 잘 이해하고 가장 적절하게 처리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구나. 호르몬 영향을 잘 안 받는 줄 알았는데 임신 때는 많이 울었고 출산 직후에는 우울했다. 겪어본 적 없 ‘호르몬 노예' 신분을 경험해 보았는데 세상에는 겪지 않아도 될 경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살면서 시 슬프고 잠시 무기력할 수는 있지만 우울이란 단어말고는 설명이 어려운, 그러니까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 오래 머무르진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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