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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May 26. 2022

마음이 돌이었으면 좋겠다고? 그건 소시오패스야

회사에 다니면 많은 감정을 맞닥뜨렸. 뿌듯, 만족, 보람, 성취, 환호, 동료애, 동질감 등. 하지만 이런 산뜻하고 따듯한 감정보다는 미적지근하거나 열에 받치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더 많다. 대부분 권태로이 보내다가 한 번씩 차고 올라오는 억울함, 혹은 울분 때문에 자리에서 벗어나 탕비실로 혹은 화장실로 직행다. 열을 한 김 식힌 후에는 사무실로 돌아와 눈은 모니터와, 손은 키보드 싸우며 남은 시간을 보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 일로 감정 조절에 문제가 생긴 후 일상에까지 영향을 받던 시기가 있었다. 성격은 예민해도 불면증이라고는 없었던 내가 잠을 못 자고 회사 갈 생각만 하면 심장이 두근거렸던 날들. 그때 아주 작은 소망이 마음에 싹을 틔웠다.


마음이 돌이었으면 좋겠다


아무 것도 느끼지 않으면 좋을 것도, 힘들 것도 없으리라. 드물게 느끼는 행복쯤이야 무시할 수 있었다. 간간히 찾아오는 기분 좋음도 포기할 수 있었다. 이 지독한 마음의 고통을 없앨 수만 있다면. 이 소망은 업무 중 입에서 욕이 나오거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이루어져야 했다. 안 그러면 곧 이 구역의 미친 자가 되어 나도 모르게 날뛰다 밥줄이 끊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꼭꼭 속에 품어 온 이 작은 소망은 어느 날 상사님께 고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내 속을 까 뒤집어 보여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책임질 일이 있을 때는 상사로,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동료로 오랜 시간 함께 해준 그녀는 직속 상관이었지만 내 사생활과 그로 비롯된 복잡한 감정을 여과없이 얘기할 수 있는 상대였기에 이번에도 무방비 상태로 떠오르는 생각을 토해냈다.


“마음이 그냥 돌이었으면 좋겠어요. 극에 달하는 감정에 일일이 반응하는  너무 피곤한 일이에요.


내 푸념을 들어줄 때마다 그녀는 내 편이었다. 내 말에 동의했고 그 감정은 마땅하다며 다독여주었다. 하지만 이번 그녀의 대답은 예상했던 방향과 다르게 날아왔다.


“그건 *소시오패스야.

* 여기서 '소시오패스'는 사전적 의미가 아닌 '무감정 상태'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감정이 없는 이에게는 타인을 향한 공감이 결여되어 있다. 업무 능력은 뛰어날 수 있으나 사회에 동화되기 어려운 사람이다. 성취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스 밑에서는 오랜 기간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는 반가울 수 없는 존재다. 인싸이고 싶진 않지만(될 수도 없지만) 몸 담고 있는 공동체에서 누구보다 소속감을 필요로하고, 소외되고 싶지 않으며, 내 역할 하나는 야무지게 꿰차고 싶었던 나였다. 아무리 불완전한 사람이라해도 소시오패스로 보여질 법한 조각이 맞춰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나는 로봇이 되고 싶었을까. 아니, 나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사람이고 싶다. 다만 원활하게 처리하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기분만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늘 비슷한 정도의 겪어본 감정만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에게는 수없이 다양한 감정이 불시에 찾아올 수 있다.


책 ‘말그릇’ 따르면 우리가 겪는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줘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단다. 이는 책 ‘감정의 발견’에서도 분명하게 나온다. 이로써 나는 여러 감정에 노출된 사람만이 자기 안의 기분을 안전하고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화도 내본 사람이 적절히 수위를 맞춰 표출할 수 있고 기쁨도 누려본 사람이 불필요한 걱정 없이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제야 감정 하나하나의 쓸모를 인정할 수 있었다. 나는 자주 화가 났고, 억울했고, 불안과 긴장에 시달렸다. 그러면 어김없이 귀가 달아오르고 손은 척척해지며 심장은 불안정하고 빠르게 내달린다. 이때 이전처럼 ‘그냥 1시간만 죽자. 나는 감정이 없어’라는 주문을 외기보다 호흡을 천천히, 깊게 내쉬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질문했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그저 ‘짜증’으로 싸잡았던 부정적 감정을 분노, 억울, 미움, 서운함 등으로 세분화시켜 정확한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만으로 감정의 너에 중심을 잃지 않고 흐름을 주도할 수 있다. 물론 마음의 문제를 늘 정석대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노력해본다.


난 소시오패스가 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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