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스티치》(2002)는 작은 외계인 스티치와 하와이 소녀 릴로의 좌충우돌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 애니메이션이다. 괴팍한 스티치는 태어나 한 번도 친밀함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구별에 떨어져 우연히 릴로를 만나 처음 따뜻한 유대감을 배우고, 오하나(ʻOhana) 즉, 가족이란 무엇인지 차츰 이해하게 된다. 혈육은 아니어도 스티치와 릴로는 서로에게 든든한 가족으로 성장한다.
물론 갈등과 위기도 있다. 영화 후반부, 스티치는 자기 때문에 릴로와 그녀의 언니가 큰 피해를 겪었다 여겨 조용히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귀여운 귀를 축 늘어뜨리고, 마음속으로 이별을 준비한 스티치. 그때 잔잔히 흐르는 노래 하나가 있다. 하와이의 마지막 여왕 리리우오칼라니가 남긴 유명한 노래 알로하 오에 (Aloha ʻOe)이다. 애절한 슬픔을 꾹꾹 누른 채 따스히 건네는 작별 노래. 가사를 몰랐을 때도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아렸다.
하와이의 마지막 여왕, 리리우오칼라니(Liliʻuokalani)는 단지 한 나라의 군주였던 것이 아니라, 문화의 수호자이자 고요한 저항의 상징이었다. 그녀는 1891년 왕위에 올랐지만, 단 2년 만인 1893년, 외세의 개입으로 폐위당하고 하와이 왕국은 미국의 손아귀로 완전히 넘어간다. 이 짧고도 비극적인 통치는 한 여성이 지켜내려 했던 민족 주권과 비정한 현실 사이의 애처로운 몸부림 같다.
여왕의 오빠이자 전임 국왕이었던 칼라카우아(Kalakaua) 역시 왕국의 주권을 지키기 너무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는 1887년, 미국계 상인들과 정치인들의 총칼의 협박 속에서 서명을 강요받는다. 이른바 '총검 헌법(Bayonet Constitution)'이 강압 속에 날치기로 통과된다. 이 헌법은 하와이 국민의 투표권을 박탈하고, 미국 및 유럽계 백인에게 정치적 권력을 넘기는 내용이다. 주권을 찬탈당한 왕국은 명목상 존재할 뿐, 실질적인 주도권은 이미 외세의 손으로 넘어갔다. 칼라카우아 왕은 그 굴욕 속에서 점차 쇠약해졌고, 결국 미국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그는 즐거운 왕에서 허울뿐인 비운의 왕으로 전락한다.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리리우오칼라니 여왕은 하와이 국민에게 투표권을 돌려주고자 새 헌법을 제정하려 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백인 자본가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미국 해군의 개입된 쿠데타로 여왕이 폐위된다. 여왕은 무력 충돌을 원치 않았다. 그녀는 사랑하는 국민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국민을 위한 마지막 결단을 내린다. 스스로 퇴위하고 자택 연금에 들어간 그녀는 이후에도 고유 문화를 지키려 애쓰며 음악과 글을 통해 하와이 정신을 세상에 남겼다. <하와이 여왕의 하와이 이야기>를 써서 하와이 최초의 여성 작가가 되었다. 국민의 유혈사태를 원치 않은 그녀의 평화로운 항복은 국민들을 더 슬프게 했고, 그녀를 더 깊이 애정하게 만들었다. 1917년 79세의 나이로 뇌졸중과 그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여왕이 사후에도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마지막 여왕이어서가 아니라, 하와이 문화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긍심을 잃지 않은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하와이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그녀를 존경과 사랑의 대상으로 기억한다.
우리도 주권을 찬탈당한 날이 있었다. 1905년 조선의 고종 황제는 총칼로 무장한 일본군대에 둘러싸인 채 나라의 주권은 일본의 손에 넘어가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정상적인 두 나라의 협약을 '조약'이라 부르고 강압적으로 맺은 조약을 '늑약'이라 한다. 그러니 '을사조약'은 잘못된 표현이고 '을사늑약'이 바른 표현이다.
이 늑약 체결에 앞장선 건 5명을 '을사5적'이라 부른다. 이 중 한 명이 매국노 이완용이다. 그는 고종에게 다음과 같이 겁박했다. (*을사5적 인물: 이완용·박제순·이근택·이지용·권중현)
“전하! 신 등은 이미 일본과의 외교협약을 체결하고자 결의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으신다 하더라도, 우리는 강행할 것이옵니다.”
끝내 서명하지 않는 고종을 조롱하듯 협약 통과를 선언한 그는, 평소 일본에 편입되어야 조선에 밝은 미래가 있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진정한 매국노였다.
하와이의 '총검 헌법(Bayonet Constitution)'과 우리나라의 '을사늑약' 모두 주권을 찬탈당한 협약이었다.서로 먼 나라지만, 같은 슬픔을 공유한다. 우리 역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민족적 슬픔이 겪었기 때문에 여왕의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절로 숙연해진다. 물론, 결과는 달랐다. 조선의 왕은 백성을 버렸지만 백성은 죽을 각오로 항쟁하여 주권을 되찾는다. 반대로, 리리우오칼라니 여왕은 백성을 버리지 않았지만 나라는 되찾지 못한다.
“나는 내 나라를 다시 되찾지 못했지만, 내 백성이 나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녀의 말처럼 하와이 주권은 되찾지 못하지만, 대신 음악과 책을 통해 하와이 정신이 희석되지 않도록 창작과 기록에 남은 생을 받친다. 아래 소개된 두 곡 안에서 그때 여왕의 감정을 읽어본다. 주권 찬탈당한 민족의 검게 멍든 슬픔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 회상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역사의 큰 흐름 속에 일부분으로 살고 있으며 다음 세대를 위한 징검다리이다. 이것이 역사적 경각심을 잃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리리우오칼라니 여왕의 노래가 지금도 하와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듯, 우리도 기억해야 한다. 노래 속에 담긴 사랑, 침묵 속에 깃든 저항,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이름들을.
그녀의 대표곡이자 하와이 전통 음악의 상징인 알로하 오에 (Aloha ʻOe)는 이별을 노래한 곡이지만, 단순한 연인 간의 작별을 넘어 나라를 잃은 여왕의 고백이자, 하와이 국민을 향한 마지막 인사로 읽히기도 한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결말을 알기 때문에 '다시 만날 때까지'라며 기약하는 가사가 더 구슬프게 들린다.
Haʻaheo ka ua i nā pali
Ke nihi aʻela i ka nahele
E hahai (uhai) ana paha i ka liko
Pua ʻāhihi lehua o uka
Aloha ʻoe, aloha ʻoe
E ke onaona noho i ka lipo
One fond embrace,
A hoʻi aʻe au
Until we meet again
ʻO ka haliʻa aloha i hiki mai
Ke hone aʻe nei i kuʻu manawa
ʻO ʻoe nō kaʻu ipo aloha
A loko e hana nei
Maopopo kuʻu ʻike i ka nani
Nā pua rose o Maunawili
I laila hiaʻai nā manu
Mikiʻala i ka nani o ka lipo
절벽을 스치는 빗줄기, 당당하게 쓸려나가고
숲 사이로 미끄러지듯 흘러가네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를 따라가며
계곡 속 아히히 레후아 꽃을 향해 가네
그대여, 안녕히. 그대여, 안녕히
그늘진 숲 속에 머무는 매혹적인 그대여
마지막으로 애틋한 포옹을 나누고
내가 떠나기 전에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달콤한 추억이 나를 다시 찾아오고
지난 날의 생생한 기억들을 데려오네
가장 소중한 그대여, 그래요, 당신은 나의 사람
당신에게서 진실한 사랑은 결코 떠나지 않으리
나는 당신의 사랑스러움을 오래 지켜보았고
마우나윌리의 달콤한 장미여
그곳엔 사랑의 새들이 깃들어 있고
그들은 당신의 입술에서 꿀을 마시네
https://www.youtube.com/watch?v=_-lv7IjDsQU
리리우오칼라니 여왕이 자택 연금 중에 쓴 이 찬송가는 용서를 바라는 마음, 믿음을 향한 기다림이 담겨 있다. 이 찬송가는 단순한 종교적 노래가 아니라, 억울함 속에서도 분노가 아닌 용서를 선택한 여왕 내면의 기도이다. 하와이의 전통 음악과 서양의 찬송가 스타일이 조화를 이룬 이 곡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O kou aloha no
A ia i ka Lani,
A o kou oiai'o,
He hemolele ho'i.
Kou nohomihi anna
A pa'ahao la,
O oi ku'u lama
kou nani, ko'u ko'o.
Mai nana 'ino'ino
Na hewa o kanaka,
Aka, e huikala,
a ma'ema'e no.
Nolaila e ka Haku
Malalo okou eheu
Ko makou maluhia,
a mau loa aku no.
당신의 자비로운 사랑은
하늘만큼이나 높고,
당신의 진리는
참으로 완전합니다.
나는 슬픔 속에 살아가며
감금되어 있지만,
당신은 나의 빛이시며,
당신의 영광은 나의 버팀목입니다.
사람의 죄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지 마시고,
용서하시고,
깨끗이 씻어주소서.
그러하오니, 오 주님,
당신의 날개 아래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제부터 영원까지
평화를 우리의 몫으로 허락하소서.
아멘.
� 참고 영상|Aloha ʻOe & The Queen’s Prayer - YouTube
- 훌라춤추고 명상하는 여자 -
https://www.instagram.com/hula_garder2igsh=ZDVwMjdubGo0ZGo1
https://blog.naver.com/dawn0208/223788530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