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나고.

by 권미경



연필로 쓴 문장을 분홍색 지우개로 지운다. 연분홍 색깔의 예쁜 지우개 가루가 생겼다. 지우개가 분홍색이니 지우개 가루가 분홍색인건 너무도 당연하다. 옛말 그대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말을 자꾸만 잊어버리고 화를 내는 걸까?


아들의 방에서 들리는 마우스를 누르는 소리가 하루종일 귓전을 맴돈다. 아마도 점심을 먹은 후부터일 것이다. 그 소리가 싫어서 에어컨이 켜진 거실을 두고 방안에 틀어박혀 문도 닫은 채로 책을 읽는다. 문이 열릴 때마다, 문이 닫혀 있어도, 거의 환청 수준으로 클릭 소리가 들린다. 그만하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한 번 참는다. 저녁을 먹은 8시경 급기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아들의 방문 앞으로 가서 소리 지른다.

“어떻게 하루 종일 게임을 하는 거야, 토익 공부한다면서?”

“주말이잖아.”

“너한테 주말이 무슨 의미가 있어? 평일에 니가 일해? 주말이라고 특별히 더 쉬어야 할 이유가 있냐? 책이라도 좀 읽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여기까지만 하고 참는다. 이 정도면 다 한 거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게임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엄마의 스트레스에 비하면 택도 없다. 하지만 더 했다가는 내 분에 못 이겨 내 몸을 불사를 것 같다. 불현듯 자아가 강하고 고집 셌던 나의 십 대가 떠오른다


“너도 딱 너같은 딸 낳아 키워봐야 알지”

아빠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나지막히 읇조리신다. 발단은 석유발굴이었다. 너무도 오래전이라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날 뉴스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경제성이 없어서 채굴가치는 없다는 뉴스였다. 어쩌다 밥상머리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와 ‘아니다’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인터넷이 있어 검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말싸움으로 번진 그날의 저녁식사는 서로 화를 내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아집이 강했던 나는 아마도 내가 본 것을 끝까지 우겼을 것이다.

지금이야 덜 하지만 어른들의 말에 토를 달면 말대꾸한다고 혼나던 시절이었다. 나는 말끝마나 이유를 물었고 묻다가 버르장머리 없다는 지청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고분고분하고 순한 맏딸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내가 삼남매 중에 가장 아빠를 닮았다.


35년 전 내가 공격수의 자리에 있었다면 이제는 수비수의 자리에서 아들의 공격을 받아 내고 있다. 잔소리는 어디까지 해야 하나, 아들이 닫아 놓은 방문은 열어도 되나, 예쁘게 말하고 싶지만 보면 울화통이 터지는데 어쩌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골이 너무 깊어지면 메꾸기 어렵지 않을까. 요즘 하는 고민들이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온 12시면 엄마에게 “그냥 집에만 오면 화가 나”라고 짜증적인 목소리로 신경질을 부렸다. 엄마는 아무 말도 못하시고 안절부절 하셨다. 돌이켜보면 공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나를 가장 아껴주고 받아주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했던 것 같다. 요즘 아들을 보며 엄마를 생각한다. 나를 너무 소중하게 대해주었던 엄마의 마음을 아들에게 베풀기 위해 노력중이다. 내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사랑이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몸소 느낀다. 아빠가 나를 위해 심어준 감나무처럼 나도 아들을 위해 나무 한 그루 심어줘야 하는데 아직 밭을 덜 갈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