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남자

by 권미경

아들은 고등학교 때 사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다. 아니 받을 필요가 없었다. 마이스터고를 다녔기 때문에 일반고의 국영수 사교육이 필요 없었다. 기숙사에서 지내며 주말에만 집에 왔다. 그 주말 내내 게임을 해서 엄마의 속을 까맣게 태우곤 했다. 뭔가 눈에 차지 않는 아들의 행태는 나를 늘 불안하게 했다. 아이를 믿어줘야 한다고 아동 전문가들은 이야기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던가. 아무리 흐린 눈을 하고 아이를 바라보려 해도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웠고 마음은 한여름 가뭄에 논바닥처럼 파사삭 부서질 듯 메말라 갔다. 예민하게 아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무심한 척 애써 외면하는 것으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마이스터고는 3학년 2학기가 되면 여러 가지 전형으로 취업을 하고 대학을 간다. 아이는 원하는 기업에 원서를 넣고 인턴으로 합격했다. 2달 남짓의 시간 동안 회사의 지침대로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매주 평가를 받았다. 아이는 코딩을 전공했지만 전공과 무관하게 반도체 설계를 배워야 했고, 밤늦도록 회사에 남아 공부하고 시험 보는 일련의 과정에 진이 빠지는 중이었다. 살이 빠져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아도 살은 그대로라니. 그러나 그 정도도 공부하지 않는 대한민국 고3이 어디 있으랴. 3년 동안 하지 않았던 공부 이참에 몰아서 한다고 생각하라며 약간은 매몰차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당근은 주지 않고 채찍만 휘두른 것 같아 마음이 다소 아린다.


하지만 아이는 불합격했다. 최후 통보를 받고 아이는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툭 하면 전화를 해서 자신이 이 고등학교를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이야기, 과를 잘못 선택했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이에게 이 고등학교를 추천한 것도 나였고 함께 자소서를 쓰면서 준비시킨 것도 나였다. 그랬기에 내 마음 역시 주저앉으려 했지만 현재의 절망에 무너지는 아이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나부터 바로 서 있어야 했다. ‘과거를 보지 말고 현재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집중 해’ ‘괜찮아. 재수 학원에 등록해서 공부하면 돼’ ‘너 그렇게 멍청이 아니야’ ‘할 수 있어’ 어쩌면 이런 말들은 아들이 아니라 나를 향한 버팀목이었는지도 모른다. 괜찮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


2026년의 1월은 시작의 빛으로 물들기보다는 끝나지 않은 시간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아이의 어깨가 처지고 친구들의 합격 소식을 전하는 아이의 목소리에서 가녀린 균열의 흔적을 느낄 때마다 나의 내면은 폭풍을 맞은 대나무숲처럼 시끄럽게 휘청였다. 밥을 먹지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고 습관처럼 책을 폈지만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일 뿐이었다. 아이는 1월 내내 학교를 알아보고 원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어느 날 “엄마, 나 붙었어”라며 엉엉 울면서 전화를 했다. 나 역시 눈물이 나려 했지만 “그것 봐, 할 수 있잖아”라는 인색한 칭찬 한마디로 전화를 끊었다. 재수 할지도 모른다면서 갑자기 고등학교 수학 교재를 사서 풀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게임 삼매경이다. 아이는 지원했던 세 군대의 대학에 모두 붙었고 그 중 반도체 설계를 선택했다. 아마도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에서 배웠던 것이 적성에 맞았던 걸까?


아이는 요즘 종종 ‘가성비 남자, 등장’이라면서 집에 들어온다. 등록금도 장학금으로 지원받고 고등학교 3년 내 사교육비도 안 들고 대학에 들어갔으니 자신은 이 정도면 가성비 좋다나 뭐라나. 그러니 아르바이트 없이 학기 중에는 학교를 다닐 테니 용돈을 지원해 달란다. 종종 인터넷이 배달해 주는 15년 전 아이의 사진을 보며 “야, 얘는 어딨어?”라고 물으면 “죽었어”라고 짧게 대답하는 아이는 이제 스무 살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스무 살 무렵 참 철이 없었다. 나로부터 발현된 유전자는 아이에게서 보다 더 성숙하고 철이 든 듯하다. 이제는 스스로 알아서 검색하고 찾아서 자기 할 일을 하는 아이를 보니 혼자 애끓이던 시간이 오히려 부끄럽다. 스스로 깊어질 수 있도록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둘째와 셋째에는 뚝배기같은 엄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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