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른

by 권미경

마트에 장을 보러 갔더니 주먹만한 딸기가 눈에 뜨인다. 머릿속에는 동시에 두 명이 떠올랐다. 가을이면 감을 깍아 곶감으로 주렁주렁 널어 놓고, 초여름 말랑말랑한 복숭아를 짝으로 사다가 통조림을 만드시는 아빠. 더위가 무르익을 무렵이면 초파리가 날린다는 엄마의 잔소리와 함께 참외와 수박 껍질을 부지런히 치우시는, 과일을 좋아하는 아빠가 머릿속을 휙 스쳐간다. 내가 끈적한 단물에 손을 담근 것처럼, 먹고 나면 손과 옷이 엉망이 되지만,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향이 감도는 복숭아를 좋아하게 된 것도 아빠의 영향이 크다. 나는 아빠를 닮아 복숭아를 좋아하지만 나의 딸은 딸기를 좋아한다. 다른 과일은 깍아 서 포크를 찍어 눈앞에 대령해 줘야 먹지만 딸기를 스스로 씻어 먹기까지 한다.

그런 두 명을 위해 딸기를 사려고 봤더니 가격이 너무 비쌌다. 포장된 두 개를 사기에는 약간 손이 떨리는 금액에 주저하다가 결국 한 팩만 사고 말았다. 사면서도 떫은 감을 먹은 듯 마음이 떨떠름했다.

며칠 후 아들의 대학등록금 고지서를 받았다. 오 백만 원이 넘는 금액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막연하게 짐작하는 것과 맞닥뜨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의 등록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금액. 그런데 그 고지서를 보니 불현듯 부모님이 떠올랐다.

우리집은 삼남매였고 나이 차이가 고만고만해서 비슷하게 대학을 다녔다. 물론 막내가 군대를 가긴 했지만 셋의 등록금 고지서가 동시에 도착했을 때 아마도 부모님은 눈앞이 캄캄했을 텐데...... 부끄럽게도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평생 방앗간을 하며 육체노동을 하신 부모님은 우리 삼남매의 등록금과 생활비, 용돈을 마련하느라 발을 동동 구르셨을 텐데 철이 없던 나는 부모님의 고충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 아이의 등록금 고지서를 받고서야 그때의 부모님의 아픔을 떠올리는 나이만 많은 욕심 덩어리.

불현 듯 딸기 한 팩만 사서 딸에게 안긴 기억이 부끄럽게 밀려왔다. 받은 사랑에 인색하게 굴었던 염치없는 그 기억에 몸서리치며 부랴부랴 마트로 향한다. 부모님과 나의 남은 시간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치사랑으로 가득 메워야겠다는 다짐을 품어본다. 그때에 비로소 늦되더라도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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