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커피숍에 앉아서 혼자 조용히 일을 하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대여섯 분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내 옆 테이블이 앉았다. 서로 집사님, 권사님이라 부르시는 걸 보니 교회 예배가 끝나고 오신 모양이다.
날씨가 덥다, 손주가 어떻다.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한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시더니, 이야기의 주제가 '아이들의 교육'으로 옮겨갔다. 누군가가 "요즘은 학교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극히 공감되었다.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자기가 학교에서 애들 가르칠 때는 말 안 듣는 학생들 많이 때렸다고 말이다. 예전에 교사로 일하셨나 보다. 그분이 말을 이었다.
"여학생들은 때릴 데가 없잖아. 그러니까 손바닥이나 어깨를 때리고 그랬다고"
다른 한 분이 말을 받았다.
"내가 아는 선생님은 애들을 줄 세워서 자기 앞으로 한 명씩 지나가게 하고, 자기는 의자에 앉아서 때렸다니까"
그 시절은 그랬다며, 어르신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다 같이 허허 웃었다.
맞다. 옛날에는 그랬던 것 같다.
숙제를 안 해온 학생은 물론이고, 수업시간에 떠든 학생이 손바닥을 맞는 건 당연하게 여겨졌다. 시험 후 수업시간이면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각자 틀린 개수만큼 손바닥을 때리는 선생님도 있었다.
예전에 다들 그랬다고 해서, 그 시절의 관행이라고 해서 그것이 정당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옆 테이블의 어르신들은 예전에 학생들을 때린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들을 때리지 못하게 하니 선생님이 아이들을 통제할 수 없고,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버릇이 없다고 했다.
학생에 대한 체벌, 군대에서의 폭력... 사회적 약자에게 쉽게 폭력이 행해졌던 시절이 그다지 오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예전의 그러한 관행이 문제라는 인식을 갖지 못한 듯하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권력이란 상대적인 것이고 본인도 언제든 약자가 될 수도 있는데, 그때도 폭력이나 권력의 남용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할까?
훈육을 위해 부모가 아이를 혹은 선생님이 학생을 때릴 수 있다면, 직장 상사가 업무능력 향상을 위해 부하직원에게 소리 지르고 욕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밤에 아이를 재우려고 옆에 누워 등을 쓰담쓰담해주고 있었다. 토실하고 귀여운 엉덩이가 말랑말랑 이뻐서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아이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엄마, 선생님이 그러는데 부모님이 소중한 곳, 중요한 곳을 만지면 신고해야 한대"
가끔 TV뉴스에서 보았던, 아빠가 딸을 성추행 혹은 성폭행했다던 보도가 떠올랐다.
"그렇지. 아무리 엄마아빠여도 중요한 곳을 함부로 만지면 신고해야지"
"그런데 엄마도 내 엉덩이 만지잖아"
말문이 턱 막혔다.
억울한 마음에 반박을 하는데, TV 뉴스에서 보았던 가해자의 변명이 오버랩되었다.
그 가해자가 했던 변명과 나의 억울한 항변이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들을 성추행하는 파렴치한들의 단골멘트가 "술에 취했다" 내지는 "귀여워서 그랬다" 아니던가.
이거.. 잘못했다가는 성추행 가해자로 몰릴 판이다.
폭력이든, 성추행이든 한 번도 내가 가해자의 입장에 서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옆 테이블의 어르신들 역시 본인들이 잘못된 폭력의 가해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게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는 큰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 한 장만큼의 미세한 차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심코 하는 행동이,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폭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후로 아들에게 늘 먼저 묻는다.
"아구~ 귀여운 내 아들. 볼에 뽀뽀해도 돼?"
대답은 늘 "아니요"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