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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Dec 25. 2024

어서와, 이런 한국은 처음이지

기차를 자주 탄다.

출장이나 개인적인 일정 등으로 이동할 때 버스보다는 기차를 선호한다. 버스 안에서는 책을 조금만 봐도 멀미가 나는데, 기차에서는 책이나 휴대폰을 봐도 어지럽지 않아서 좋다. 기차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함께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운치가 있다. 교통 체증에 상관없이 정확한 시간에 맞춰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버스는 탈 때와 내릴 때만 다른 승객들을 볼 수 있는데, 기차는 역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기차역에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내내 손을 흔들어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따스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지만 객실 내에서 돌아다니고 서로 마주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행태를 구경할 수 있기도 하다.


몇 달 전 기차에서의 일이었다. 아저씨 한 분이 기차에서 내내 큰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전화를 하다가 옆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차량 내부의 모든 사람이 그 아저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시끄러웠다. 자고싶었는데, 그 아저씨의 목소리는 이어폰을 낀 내 귓속으로도 파고들어 고막을 흔들어댔다. 내 주위가 모두가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뒷자리에 앉은 커플이 "아, 진짜 시끄러워"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도 그 아저씨를 계속 힐끗힐끗 보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무도 그 아저씨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요즘은 층간소음이 심해도 직접 이웃을 찾아가면 안되고 경비실을 통해 말해야 한단다. 그래서인지 다들 그 아저씨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기보다는, 승무원을 통해서 말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나 보다.


사실 나도 승무원이 지나가면 저 분을 자제시켜 달라고 부탁할 참이었다. 그러나 기차에서 30분이 지나도록 승무원은 우리 차량을 지나가지 않았고, 그 아저씨의 큰 목소리에 차량 내부의 모두가 지쳐가고 있었다.

급기야 그 아저씨는 가지고 있던 휴대폰에서 노래를 틀었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휴대폰에서 그냥 노래를 재생했기에 그 자리 주변에 앉은 사람은 물론, 약간 떨어진 내 자리까지도 그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선을 넘은 것 아닌가.


참다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아저씨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말했다.

"선생님, 실례지만 노래 좀 꺼주시겠어요?"

"... 아, 예"

그 아저씨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노래를 껐다. 내가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5분 여가 지나자 승무원이 다가와 내 옆자리의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호출하셨어요?"

"아. 시끄러워서 호출했는데 해결됐어요"

아마 그 아저씨때문에 내 옆자리의 남자가 승무원을 호출했나보다.


부당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먼저 정중하게 말하면 되지 않을까?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을 이렇게까지 피해야할 일인가?




오늘도 기차를 타고 이동 중이다.

내 자리에서 두번째 앞쪽에 중국인 남녀가 앉았다. 일을 하는 중인가 보다. 노트북을 켜놓고 둘이 한참 뭐라뭐라 이야기를 한다.


참 이상하다. 그다지 큰 목소리가 아닌데도, 한국어와 억양이 달라서일까.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이해된다는 것이 아니라, 귀를 파고든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조금씩 귀에 거슬린다. 조용한 기차 안에서 낯선 억양의 그 목소리는 나의 청각 신경을 잘도 골라내서 깊숙이 파고드는 느낌이다.

그러다 그 여자가 통화를 하기 시작한다. 역시 큰 목소리가 아니지만, 차내에서 혼자 계속 떠들고 있으니 시끄럽게 들린다. 건너편 자리에 앉은 한국인 여자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저기요!! 밖에 나가서 통화하세요"


맞다. 통화를 길게 하려면 객실 내에서 할 게 아니라, 객실 밖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이 중국어가 아니라, 영어로 떠들었어도 그 여자는 똑같이 반응했을까?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시끄럽다'고 내뱉듯이 말을 했을까? 짜증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실은 목소리로 "조용히 하라"고 소리쳤을까?


기차역에서 붕어빵과 커피를 팔던 아주머니는, 붕어빵을 사던 백인 커플에게 커피를 덤으로 조금 담아주며 "써~~비스"라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중국인 커플에게도 똑같이 써~~비스를 줬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방영 초기에 한참 인기가 있었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가 있었다. 요즘도 하고있는지 모르겠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정말 재밌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그 프로를 가만히 보다보면 사람들의 반응이 미묘하게 갈린다.

유럽이나 미국의 선진국에서 온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를 칭찬하면 시청자나 패널들은 어깨가 으쓱해진다. 국뽕의 힘이라고 해야할까....  외부에서 인정받고 싶은 우리의 욕구를 정말 잘 반영하여 만든 프로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아프리카나 개발도상국에서 외국인이 한국의 발달된 모습을 보고 놀라면, 다른 의미로 국뽕이 차오른다. 인정받은 것에 대해 만족감이 아니라,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베풀었을 때 느껴지는 만족감이랄까. '아이구, 저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이 여기와서 좋은거 먹고 좋은 거 보고 가네' 뭐 이런 느낌이다.



자신의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높이 여기는 것은 자존감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인정에 목말라하고, 후진국에 대해서는 베풀어주는 듯한 태도의 차이가 왠지 불편했다. 피곤하고 힘들 때에는 뜨끈한 김치찌개를 찾으면서, 파티나 데이트 할 때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가야할 것 같은 마음과 비슷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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