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도 잘못이 있는 거 아냐?
"전 택시 절대 안 타요. 택시기사들이 자꾸 성희롱을 해서요"
"네?" 택시기사가 성희롱을 한다고요?"
"지난번에도 시간이 빠듯해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저를 보면서 '아이구, 이렇게 생긴 아가씨랑 데이트 한 번 해보면 좋겠네' 하더라구요"
택시를 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직장동료의 말에 뜨악했다.
나 역시 가끔 택시를 타지만 그런 경우를 당해본 적은 없었다.
"혹시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라 인상이 좋아서 그런 걸까요?
무심코 내뱉은 나의 말이 실수였다.
"남자분들하고 똑같이 말씀하시네요. 제 주위 남자들도 저보고 '네가 빌미를 준 거 아니냐'고 묻던데"
아차 싶었다. 피해자가 잘못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지만, 나의 말 역시 결국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예전에는 그런 인식이 더욱 팽배했다.
성폭행 사건이 뉴스에서 보도되면 아저씨뿐 아니라 아줌마들도 "어휴~ 저렇게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니까 험한 일을 당하지"하며 혀를 끌끌 차고는 했다.
밤늦은 귀갓길에 강도를 당한 피해자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일찍 일찍 안 다니고 밤늦게 싸돌아다니니까 그러지"라고 안타까움인지, 책망인지 모를 말들을 생각 없이 내뱉고는 했다.
'더글로리'의 작가도 같은 마음으로 작품을 썼다고 한다. 학폭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너는 잘못이 없어?"라는 묻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리기 위해.
'학폭 당할만하니까 당하지"라는 프레임으로 피해자를 몰아가는 건,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실상 인간은 본능적으로 피해자에게서 잘못을 찾으려고 한다.
피해자를 괴롭히거나 가해자 편을 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잘못으로 범죄가 일어났다고 이해해야 본인은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더 충격을 받는다. 으슥한 골목길이나 외딴곳이 아니라, 내가 매일 다니는 지하철역,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더 무서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범죄자의 얼굴을 보며 특정한 표식을 찾으려 한다.
날카로운 인상, 험상궂은 표정, 얼굴의 상처 등등... 이러한 표식을 알면 범죄자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범죄자 수배전단지에 붙어있는 많은 얼굴들이 너무나 평범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바람이나 기대가 헛된 것임을 잘 말해준다.
내가 지금까지 험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고 무난히 살아온 것은
내가 안전하게 몸조심하며 살아서가 아니라, 운 좋게 범죄자들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