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넘어서야 깨달았다. 직장생활 경력이 10년이 훌쩍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그럼 난 귀담아 들었으려나? 아님 '언니와 난 달라'라며 무시하고 넘겼으려나?
어느 평가자리에서 만난 교수님이 세미나 초청을 하셨다.
오후 4시에 한 시간 정도의 세미나를 한 후, 자연스럽게 학과 교수님들이 모두 참석하는 저녁자리가 이어졌다. 세미나를 시작할 때 인사와 함께 명함을 주고받은 교수님은 총 7명이었는데, 여자 교수님 두 분을 제외하고 남자 교수님 5명만 저녁식사에 참석하였다.
물론 그 여자교수님들이 정말 다른 일정이 있거나, 개인적인 사유로 저녁식사 자리에 오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내 모습에 비춰보건대, 그 여자교수님들은 세미나를 통해 배우고 연구내용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그 뒤의 저녁자리는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내가 예전에 그랬으니까.
직장생활은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직장동료와의 개인적인 친분이나 동료애는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업무의 배정이나 처리, 특히 평가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공정하지 않으니까.
소위 라인에 따라 보직을 달고 편한 업무를 맡게 되는 회사의 부조리에 화가 났다. 자연히 그들끼리 어울리고 돈독함을 다지는 식사자리, 회식자리는 피하게 되었다.
그러한 친분 없이 오롯이 나의 실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는 일보다 나의 일에 시간을 쏟고
내 일을 잘해서 성과를 내면 자연스럽게 남들이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주위의 많은 여자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교류는 부가적인 일 혹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 역시 사실과 객관적 근거만으로 모든 의사결정과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콩나물 한 봉지를 사도 안면이 있는 가게에 가는 것이 사람 마음일진대
어떻게 모든 의사결정이 그렇게 사실과 근거에 입각해서 명확하게 내려지겠는가.
또 그렇게 모든 일을 하나씩 따져가며 비교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 인테리어 공사든, 아이 학원이든, 혹은 주식투자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을 물어보고 따라서 결정하는 게 대다수의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누군가로부터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내가 아는 모든 전문가를 나열해 보고 꼼꼼하게 비교분석한 후 소개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 중 일 잘하는 사람을 추천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인간관계로 인해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리거나 잘 되기도 한다.
내가 처음 맡은 일에 서툴러서 고생을 하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나타나
경험담을 공유해 주거나 자료를 나눠주기도 한다.
원래대로라면 첨부터 하나하나 고생해야 할 일을, 인간관계 하나로 훨씬 쉽게 해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맨날 회식한다고 술 마시고, 지들끼리 형님 아우 하면서 몰려다니는 남자직원들이 한심해 보였다.
그런 백 없이 나는 실력과 성과로 승부하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정정당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 직장 생활해보고, 나이 마흔이 넘어보니 알겠더라.
세상은 그렇게 공정과 비공정으로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직장도 결국 인간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보니
인간관계로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