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일탈

이거 안 하면 어쩔 뻔했어

by 새벽한시

얼마 전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다른 연구원 분들과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나를 포함 세 명 모두 공공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요즘 인턴들은 우리 때와 다른 것 같아요. 저 같으면 인턴은 계약직이니까 당장은 좀 더 안 좋은 조건이라도 다른 곳의 정규직으로 옮기려고 애쓸 것 같은데, 요즘 애들은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맞아요. 제가 다른 곳 정규직 자리 소개해줘도, 연봉이 적다거나 근무지가 멀다거나 혹은 일이 많다던가 등등의 이유로 잘 안 옮기려고 하던데요. 그냥 계약직으로 여기서 일하는 게 좋대요"

"연구원에 있다 보니 급여나 근무조건, 워라밸 등에 대해 애들이 눈이 높아진 것 같아요. 그만큼 능력은 안되는데 본인의 직장 기준은 높으니까 지금 일하는 곳의 정규직 정도가 아니면 눈에 안 차나 봐요."

"웬만한 중소기업은 애들이 안 가려고 하니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걱정과 비난이 섞인 푸념을 하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전형적인 꼰대들의 대화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사실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내가 살아왔던 방식, 내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우쳤던 것들을 아끼는 후배에게 알려주고 싶다. 다른 꼰대들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지금까지 잘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의 방식이 맞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에 대해 후배들에게 가르침(지적질..)을 주고, 평가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꼰대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40대가 되어 좋은 점 중 하나는 스스로에 대해 알고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싫은 사람에게 적당히 거리 두는 법도 알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취향도 확실해진다. 20대에는 노랗게도 했다가 길어도 봤다가 짧게도 해보는 헤어스타일이, 40대에 들어서는 거의 똑같이 유지되는 것 또한 같은 이유일 것이다. 무엇이 내게 어울리고, 무엇이 맞지 않는지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점점 먹던 것을 먹고, 하던 것을 하고, 입던 것을 입고, 듣던 것을 듣게 된다.




최근에 업무상으로 만나게 된 분과 술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여기는 사케 전문점인데, 사케로 시킬까요?"

"아, 저는 소주나 사케는 잘 못 먹어서 맥주로 할게요."

소주 특유의 알코올 냄새를 질색하는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맥주를 고집했다. 이렇게 말하면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며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분은 달랐다.


"혹시 별빛청하 먹어봤어요? 그건 소주 냄새 별로 안 나고 괜찮거든요. 맥주는 배부르니까, 그거 한 번 먹어보면 어때요?"

순간 망설였다. 20년이 넘은 나의 음주 인생에서 소주는 좋은 기억을 남긴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늘 와인 혹은 맥주로 확실히 주종을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끝까지 맥주를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싶지는 않았다. 딱히 그 사람의 말에 설득되었다기보다는, 이 정도로까지 이야기하니 예의상 맞춰주는 느낌으로 오케이를 했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말 그대로 한 잔 두 잔 술이 술술 넘어갔다. 생각보다 많이 먹었는데도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고, 다음날 숙취도 없었다.

40대에 와서 나의 인생술을 찾을 줄이야.


너를 이제야 만나다니... (사진: 롯데칠성음료)




지난 명절에 지인이 곶감을 선물해 줬다. 나는 곶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친한 후배에게 물었다.


"곶감 선물 받은 게 있는데 나 곶감 잘 안 먹거든. 너 줄 테니까 어머니 가져다 드릴래?"

그러면서 후배에게 곶감을 전달했다. 며칠 후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언니... 나 곶감 좋아하나 봐. 이거 왤케 맛있어? ㅋㅋㅋㅋㅋㅋㅋ"







즐겁다. 안 해 보던 것을 하니 새롭고, 그 새로움이 정말이지 너무 즐겁다.

별빛 청하 하나에 이렇게 술자리 텐션이 높아지다니, 스스로에게 놀라울 정도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것을 의도적으로 시도하려는 노력을 더 해야겠다.




참고로 제목에 있는 사진은... gpt에게 '40대의 일탈'이라는 주제로 이미지를 만들어달랬더니, 저런 상상을 자극하는 그림을 만들어줬다. 저걸 보니 더 대단한 일탈을 해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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