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리고서야 사랑한다고 했다.

내 마음에 솔직해지는 병

by 새벽한시

우리 집은 정말 평범한 가정이다.

자기소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투적인 표현인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라고 하기에는

두 분 다 그다지 엄격하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애정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다.

당신들이 그렇게 자라서인지

자식들에게 칭찬이나 애정이 담긴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고

과묵하신 편에 가까웠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반말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엄마한테 반말하면서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는 내 친구들을 볼 때면

신기하면서도 그런 풍경이 낯설었다.


치매에 걸리고부터 엄마는

카톡도, 문자도 점점 안 쓰게 되었다.

예전에는 친구분들이나 우리가 보내준 동영상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서투르게나마 문자도 보내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카톡도 거의 하지 않았다.

카톡 메시지를 보내도 확인을 하지 않고,

옆에 앉아 설명을 해주려고 해도 귀찮아하면서 모르겠다고만 했다.


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갈 때

코로나 때문에 새로 입소하는 사람들은

격리실에 3일 동안 혼자 지내야 한다고 했다.

직원들이 마스크 쓰고 들락거리며 식사나 다른 활동을 챙겨주기는 하지만

다른 입소자들과 접촉할 수 없고, 무엇보다 격리실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배회 증상이 유독 심한 엄마는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답답하다고 계속 전화를 걸어댔다.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곧 보러 간다고 달래도

5분이 안되어 또 전화가 왔고

같은 대화를 처음부터 반복해야 했다.


나중에는 너무나 힘든지

남동생이랑 전화를 하다가

"제발 데리러 와달라"며 울었단다.

남동생이 그 이야기를 하며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그냥 다시 모셔왔다가

몇 달 뒤에 시도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와 언니는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니 조금만 견뎌보자'고 설득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내 불안했다.

엄마가 혹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디인지 모르는 낯선 곳에서 무섭거나 힘들지는 않을까...

종일 신경이 쓰이고 안절부절, 아무것에도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엄마에게서 문자 하나가 왔다.

너무나 오랜만에 받은 엄마의 문자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말이 있었다.

"사랑해"


엄마 메시지.png


내내 불안과 미안함, 죄스러움이 섞여있던 마음이

그 문자 하나에 무너져 내렸다.

퇴근길에 문자를 보고서는 집에 가는 내내 펑펑 울었다.


어버이날에 전화로

"엄마~~ 이렇게 이쁘고 건강하게 잘 낳아 키워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애교 섞어 말을 하면

"너네가 잘 커줘서 고맙지"라고 말하던 엄마다.

그러나 나도, 엄마도 '사랑한다'는 표현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해도 그 말이 어색해서 차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치매에 걸리고서야 처음으로 엄마에게서 '사랑한다'고 들었다.



시설 입소 초반에는

우리랑 통화할 때마다

"너 지금 어디냐. 나 좀 데리러 와라"라고 하시다가,

요즘은 좀 적응이 되었는지

"엄마 있는 데로 와라. 여기서 같이 살자"라고 하신다.

예전에 혼자 살 때라고 자식들이 왜 보고 싶고 그립지 않았을까.

그래도 자식들이 힘들까 봐 '엄마 보러 와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치매에 걸리고서야

"엄마 보러 오라"라고, "같이 살자"는 말을 솔직하게 다 한다.


옆에서 다 챙겨주지도 못하고

원하는 거 다 해줄 수도 없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가 하고 싶은 말, 하고싶은 거 다 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생기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