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초기: 행동의 변화
초등생 시절, '결벽증'이란 단어의 의미를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우리 엄마의 증상(?)이 결벽증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 세 번씩 방을 닦으셨고, 살림살이는 항상 깔끔했다. 냉장고 안이든, 장롱 안이든 엄마의 살림살이는 항상 가지런했고, 뭔가가 정리 안 된 상태로 널브러져 있는 꼴을 보지 못했다.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기르던 때에 부모님이 집에 방문하신 적이 있다. 내가 근무 중이던 시간에 집에 도착하셨길래 비밀번호를 알려드리고 "먼저 집에 들어가 계시라" 말씀드렸는데,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완전 다른 집이 되어있었다!! 아빠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우리 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가 올 때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집을 청소하고 있었단다. 먼길 오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엄마한테는 더러운 것을 견디며 앉아있는 게 더 힘들었으리라.
그 이후 엄마가 우리 집에 오게 되면 대대장님의 방문을 준비하는 부대원의 마음으로 구석구석 청소를 해놓는다. '이번에는 엄마가 그냥 넘어가겠지'라고 기대하며 말이다. 그러나 엄마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쩌면 그리도 잘 찾아내는지, 일 년에 한 번 닦을까 말까 하는 유리창까지 닦았음에도 불구하고 창틀의 머리카락까지 매의 눈으로 찾아내서 청소한다. 나중에 내가 청소하겠다고 겨우 말려서 거실에 앉게 하면, 나랑 이야기하면서도 앉아있는 주위의 먼지며, 아이의 장난감 조각을 치우느라 끊임없이 손을 놀린다.
거의 모든 사람이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느끼겠지만, 우리 엄마의 음식은 정말 정갈하고 맛깔났다.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엄마 김치를 먹은 지인들은 한 포기만 얻어갈 수 없겠냐고 물었고, 아빠의 친구들도 엄마 음식을 드실 때는 맛있다고 감탄하셨다. 식사 때마다 엄마는 뚝딱뚝딱 뭔가를 맛있게 금방 만들어냈다. 엄마 집에 가면 아침에 엄마가 보글보글 국 끓이는 소리, 도마에서 탕탕탕 뭔가를 써는 소리에 잠이 깨서는 부스스한 상태로 아침상에 앉고는 했다.
그러나 요즘에 엄마 집에 가면 소파에 깔아놓은 방석에서는 얼룩이 보인다. 엄마가 입고 있는 옷은 눈에 띌 정도로 소매 부분이 지저분한데도 개의치 않고, 심지어 며칠째 같은 옷이다. 옷장에는 세탁을 하지 않은 게 분명한 옷이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경우도 있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김치통, 오래된 재료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있다. 혼자 계시다 보니 반찬을 거의 만들지 않는 것 같고, 우리가 오랜만에 엄마 집에 가도 반찬을 별로 만들지 않는다. 그냥 집에 있는 김치, 그리고 나물 한 두 가지만 가끔 만들고, 국도 거의 끓이지 않는다.
보다 못한 언니가 근처의 괜찮은 밥집에 따로 반찬값을 주고 반찬을 매일 배달시켰다. 그런데 엄마는 사 먹는 반찬에서 조미료 맛이 많이 나서 싫다며 드시지 않는다. 결국 사다 놓은 반찬은 냉장고에 며칠 그대로 있다가 버려지기 일쑤이다.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느껴서 자신감도 떨어진 건지, 아니면 그냥 모든 게 귀찮은 건지 요즘의 엄마는 예전에 비해 소극적이다.
스스로 이것저것 해보는 게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들었기에, 일부러 엄마에게 "나 엄마가 만들어준 게장 먹고 싶어. 콩나물무침도 내가 하면 그 맛이 안 나. 엄마가 해준 게 맛있어. 재료 사 올 테니까 엄마가 좀 만들어주면 안 돼?"라며 반찬 투정을 하기도 한다. 귀찮아하는 엄마에게 애교를 부려가며 받은 밥상은 예전보다 많이 짜다. 한 번은 엄마가 담근 김치가 너무 짜길래 혈압 높은 엄마에게 안 좋을 것 같아 몰래 갖다 버리기도 했다. 반찬이 부실한 밥상에서 짠 김치와 함께 밥을 먹고 있노라면, 예전의 엄마 밥상이 그리워지고 '엄마는 이런 밥상을 매일 혼자 드시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기억력 확인 겸 가끔 통화하면서 "식사는 뭘 드셨어요?" 물어보면, 대충 먹은 듯한 엄마는 매번 "이거 저거 실컷 먹었다"라거나 "개구리 반찬~"이라며 장난스레 넘긴다.
아이가 어릴 때 밥을 잘 안 먹으면 안달이 나서 떠먹이기도 하고, 요리법이나 재료를 바꿔보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의 대화나 육아서에는 '밥 안 먹는 아이, 어떻게 밥 먹이나?'라는 정보는 넘쳐났다. 물론 그 방법들이 항상 다 유효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부모님 식사 챙겨드리는 것은 그만큼 깊은 고민이나 노력을 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다행히 언니가 엄마 가까이 살아서 곰탕팩, 견과류 등을 사다 놓고, 초유단백질 분말을 사다가 반찬에 뿌리기도 한다. 그래도 엄마 집에 다녀오는 길에는 부실한 반찬과 텅 빈 냉장고에 떠올라 내내 마음이 무겁다.
모든 주부들의 고민, '오늘은 또 뭘 먹나?', 그리고 이제 또 하나의 고민이 얹어진다. '우리 엄마는 뭘 드시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