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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Mar 29. 2021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능력자

공간지각능력 저하

몇년 전에 엄마랑 해외여행을 갔다. 새로운 곳에 갔으니, 한국에 없는 것, 한국에 없는 음식 등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맛집이라고 겨우 찾아간 곳에서 가장 후기가 좋았던 메뉴를 골라 시켰다. 엄마가 맛있게 먹는 걸 기대했는데, 엄마는 첫 술에 인상이 확 구겨진다. 


"어이구~~ 뭐가 이렇게 짜냐"


음식을 내가 만든 것도 아니니, 엄마는 그냥 일행으로서 나에게 솔직히 음식평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열심히 짠 일정에 대해 엄마가 불평하는 것 같아 괜히 속상해졌다. 


관광리스트에서 손꼽히는 것 중에 일몰 뷰가 있었다. 시간 맞춰 엄마랑 일몰 명소로 갔다. 일몰 명소에 가득 앉아있는 외국 관광객들을 보며 엄마가 물었다.


"여기는 뭐 본다고 온 거냐?"

"엄마, 여기가 일몰이 엄청 이쁘대. 해 지는 거 보러 온 거에요"

"하이고~, 우리나라는 해가 없어서 멀리 남의 나라까지 와서 해를 본다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밤에 엄마랑 마사지 받을 때나 길거리 음식 사서 한입씩 나눠먹을 때면 엄마랑 재미있는 여행을 하고있는 것 같아 즐거웠다. 여행을 몇 번 해보다 보니 알게됐다. 나는 해외여행 가면 호텔조식과 현지음식 먹는 게 좋지만, 엄마는 식사만큼은 속 편한 한국음식이 최고라는 것을. 값비싼 현지 고급음식보다 한국에서 먹던 흔하디흔한 음식을 먹어줘야 엄마와의 여행을 즐거워진다는 것을. 



여행 마지막 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권을 발권하고, 비행시간까지 공항 라운지 내에서 쉬고있었다. 엄마가 화장실을 다녀오겠단다. 라운지 내에 화장실이 있으니 화장실 찾아 헤맬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녀오시라고 하고 휴대폰을 보며 놀고있었다. 그런데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엄마가 오지는 않았다. 라운지 화장실에 가봤다.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한국을 나온 순간부터 엄마는 휴대폰을 꺼놨으니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공항 내의 화장실을 다 뒤지기 시작했다. 여자 화장실마다 들어가서 "OOO씨!! 엄마!!"하며 엄마 이름을 불러댔다. 화장실을 다 뒤졌는데도 엄마는 없었다. '뭘 구경하고 계시나'싶어 면세점을 다 둘러봐도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지? 방송을 해볼까'하는데, 엄마가 한 발 빨랐다. 


공항 내의 방송에서 내 이름이 흘러나왔다. 항공사 카운터로 오라길래 막 뛰어서 갔다. 항공사 직원 왈, 엄마가 보안검색대 밖으로 나가서 다시 검색대를 통과해야하는데 여권이 없으니, 보안검색대 가서 엄마를 만나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다. 일단 보안검색대로 뛰어갔다. 엄마가 항공사 직원의 도움을 받아 보안검색대에서 기다리고있다. 내가 카운터 위로 건네준 엄마의 여권을 받아 직원 확인을 받고 통과해서 겨우 엄마를 다시 만났다. 엄마가 놀라고 당황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놀라기보다는 이 상황이 조금 민망한가 보다. 


"공항 구경하려고 여기저기 다니다보니까 어디 구석까지 간 거 같애. 너희 있는 데로 가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더라고. 어쩔까 싶었는데 한국 승무원들이 지나가길래 도와달라고 했지"

"아니, 보안검색대 통과해서 게이트 쪽으로 들어오면 다시 못 나가는 아닌가? 우리 엄마는 그런 길을 어떻게 찾았대? 능력자네~" 

한바탕 소동에 대해 엄마가 민망할까 이렇게 추켜세웠다. 한 시간 내내 뛰어다니니 숨이 차 죽을 거 같다. 그래도 무사히 엄마를 보니 마음이 놓여 맥이 풀렸다. 



아이가 어릴 때 아파트 안의 상가를 가는데 어느 순간 아이가 안 보였다. 놀래서 여기저기 찼다가 결국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아이를 못 찾으면 어쩌지. 짦은 시간에 온갖 상상을 하며 미친듯이 찾아다녔다. 집 앞 놀이터도 혼자 가보지 않은 아이라 아파트 상가까지는 못 갔을 것 같았지만, 마지막에 혹시나 싶어 가봤다. 아이는 나랑 매번 지나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장난감 가게에서 해맑게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었다.

왜 여기있냐고 물으니, "아까 엄마가 상가에 간다고 했잖아. 내가 먼저 와있었지"라며 자랑스레 웃는다. 황당하면서도 혼자 여기까지 온 아이를 보니 대견했다. 


낯선 공항에서 나랑 헤어져 당황했을 엄마가 놀래지 않고 차분히 한국 사람 찾아서 도움 부탁한 걸 보니, 장난감 가게 앞에서 웃던 아이를 볼 때처럼 기특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낯선 곳에서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혼자 보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 엄마, 하는 거 보니까 이제 해외에서 살아도 되겠네~ " 농담을 던지며 비행기에 올랐던 이 날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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