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한시 Apr 19. 2021

엄마는 춥지도 않아?

지남력 상실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건강한 것 같아. 


언니의 딸인 조카가 한 말이다. 엄마는 어찌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낮에는 친구분들과 게이트볼을 치고, 저녁 식사 후 집 근처 운동장을 서너 바퀴 돌면서 운동하는 게 일상이다. 걸음걸이도 빠른 편이고, 보기에도 짱짱해 보인다. 그에 비해 운동을 싫어하는 언니는 5층 올라가는 것도 힘들다며 엘리베이터를 선호하니, 조카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찬바람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엄마는 환기시킨다며 매일 아침 창문을 열어놓고 청소한다. 그것도 반팔만 입은 채로 말이다. "엄마, 추워~!! 얼어 죽겠어"라고 투정하면,  "뭐가 춥냐, 움직이면 더워"라고 핀잔을 준다. 추위에 약한 언니는 이불을 둘둘 감고 앉아서 "우리 엄마는 정말 대단해. 추위도 안 타"라며 연신 감탄한다.

 



며칠 전 언니가 운동 나가는 엄마를 만났는데, 바지가 한겨울에 입는 기모바지였다고. 

"엄마, 햇빛이 쨍쨍한데 왜 한겨울 바지를 입고 있어? 안 더워?"

그러나 엄마는 "뭐가 덥냐"며 쿨하게 넘긴다. 엄마가 나이가 들어 추위를 타게 되었다면 차라리 다행일 듯한데, 이건 엄마의 체력이나 더위를 잘 견디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어두워졌다. 


몇 주 전에는 엄마가 언니한테 "아빠 제사 준비해야 되지 않냐?"며 걱정스럽게 물으셨단다. 아빠는 한여름에 돌아가셨다. 며칠 혹은 몇 주 차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시기인데 생뚱맞게 아빠 제사를 이야기한다. 


올해 초 동짓날에, 팥죽을 사러 나갔다가 엄마 혼자서 동짓날도 못 챙기셨을 것 같아 전화를 드렸다.  "엄마, 오늘 동지라는데 팥죽은 드셨어요?"

"그래? 오늘이 동지야? 몰랐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도 아무도 몰랐는지 동지 이야기도 안 하더라"

"그럼 오늘 팥죽도 못 드셨겠네?"

"내일 누가 이야기하면 같이 사 먹으러 가겠지"

저녁에 언니랑 통화하면서 팥죽 이야기를 하니, 

"엄마랑 친하게 지내시는 윗집 아주머니가 점심때 팥죽 쑤어서 엄마 부르셨어. 그래서 아까 점심때 엄마가 그 집 간다고 하시더라"

"엥? 나한테는 동지 이야기도 못 들었다고, 팥죽 안 드셨다던데?"

둘 다 잠깐 침묵.... 걱정이다. 하루하루 작은 사건들이 쌓이고 있는 느낌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예전에는 나의 청춘이 끝나는 게 슬펐다. 젊음이 가득한 핫플레이스나 클럽에서 밀려나고, 최신 트렌드나 유행에서 멀어지는 것이 서운했다. 그 다음에는 나의 몸이 예전같이 않아지는 것이 속상했다. 밤새 놀아도 끄떡없었는데, 이제 하룻밤 새면 다음날 종일 힘들어하면서 세월을 탓했다. 


이제는 나의 청춘과 젊음이 끝나는 것보다, 내 주위의 사랑들이 사그라져가는 것을 보는 게 힘들다. 아프고 죽어가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게, 그리고 그걸 어찌할 수 없이 손 놓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무력하고 서글프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능력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