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따라가기
부모님께 하는 안부전화야 레퍼토리가 뻔하다. "식사하셨느냐, 뭘 드셨느냐, 운동 다녀오셨느냐, 혈압약은 잘 드시냐..." 재미없는 주제의 반복이다. 언젠가부터 5분 여 밖에 안 되는 짧은 통화시간 동안 엄마가 했던 질문을 반복하느라, 대화가 맴돌기도 한다.
어제는 엄마한테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여느 때와 달리 운동 안 가고 집에서 쉬다 저녁을 드셨단다. 그리고는 갑자기 우편물 이야기를 꺼내신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우편물이 왔는데, 진료비를 환급해준다고 하네"
"아, 그래요?"
엊그제 언니랑 통화하면서 들은 이야기이다. 엄마 진료비가 환급될 거라고 메일이 와서, 언니가 관리하는 엄마 통장 계좌를 등록했다고...
그런데 언니가 처리해놓고 엄마한테는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 보니까 어제 오후부터 순차적으로 환급이 될 거라고 쓰여있는데, 오늘 저녁까지 연락이 없다.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와"
엄마는 건강보험공단의 직원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서 돈을 줄 거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엄마, 그거 집으로 찾아와서 주는 게 아니고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는 거예요. 언니가 엄마 통장의 계좌번호 등록해놨으니까 거기로 돈 들어올 거예요. 우리 엄마, 돈 받으려고 하루 종일 집에서 기다리신 거야?"
"아~ 그러냐? 나는 이 사람들이 돈을 준다고 해놓고 왜 연락이 없나~ 했지"
오랜만에 엄마랑 같이 한참 웃었다. 나이가 들면 세상 물정에 어두워질 수도 있고, 요즘 같은 기술 발달이 빠른 때에는 더더욱 세상 돌아가는 속도에 발맞추기 힘들어질 것 같다. 키오스크 도입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주문하는 것도 힘들어하신다는 기사를 보며 안타까웠는데,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도와드리고 챙기며 같이 살아나가면 되지 않을까.
내 아이가 어릴 때 했던 미숙하고 엉뚱한 행동들은 지금도 즐거운 이야깃거리이자 추억이다. 아이가 다섯 살 즈음이던가. '겨울왕국'이 엄청나게 인기 있을 때였다. 우리 아이도 저녁마다 Let it go 노래를 틀어달라고 해서, 스마트폰으로 들려주곤 했다.
어느 날은 잠깐 샤워하고 나온 사이에 아이가 휴대폰 검색창에서 뭔가를 입력하고 있길래 봤더니, 혼자 겨울왕국의 'Let it go' 노래를 찾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아이가 입력한 검색어는 '레리꼬', '래리꼬', '레리고'였다.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오니 이것저것 입력해놨나 보다. 어찌나 웃기고 귀엽던지, 정말 한참을 웃었더랬다.
내가 태어나 자란 동네는 시골이라 장날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북적거리는 일이 많지 않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아빠 손을 잡고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의 광역시를 처음으로 갔다. 시내에서 북적거리는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정신을 못 차리던 내가 아빠한테 물었단다. "아빠, 오늘 장날이에요?"
아빠는 내가 어른이 된 뒤에도 가끔 그 이야기를 하시며 빙그레 웃으셨다.
운동도 안 가고, 건강보험공단의 직원을 기다렸을 엄마를 생각하면 세상이 엄마한테 조금씩 버거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적어도 외로워지지는 않도록 우리가 곁을 지키면 되지.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런 에피소드를 추억으로 차곡차곡 간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