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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Aug 22. 2021

엄마 덕에 갑자기 둘째가 생겼다

새로 시작된 육아

엄마는 말티즈 한 마디를 기르고 계신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혼자 계신 엄마가 적적하실까 데려왔으니 벌써 그 강아지가 7살이 되었다. 처음 데려왔을 때는 엄마 뒤를 따라 뒤뚱뒤뚱 걸어갈 때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못 이겨 비딱하게 걷게 되는 정말 작고 귀여운 녀석이었다. 그러던 강아지가 최근에 뇌수막염 진단을 받아 자꾸 아프고 기력 없이 누워만 있다.


그 개는 어릴 때부터 사료를 잘 먹지 않아 엄마의 애를 태웠다. 아픈 뒤부터 기력이 없어서인지 먹는 양이 더 줄고 간식만 가끔씩 먹는다. 걱정이 된 엄마는 개를 먹이겠다며 고기를 사다가 "한 입만 좀 먹어라"라며 개에게 사정을 하기도 했다. 간식을 종류별로 사다가 개 밥그릇에 늘어놓으며 3첩 반상을 차려놓는다.


문제는 개가 먹는 거라면 엄마가 뭐든지 준다는 것이다. 사람이 먹는 음식들을 개에게 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엄마는 개가 잘 먹기만 하면 감동하며 더 주시는 바람에, 개가 전에 췌장염을 앓기도 했다. 가끔은 개가 아파서 기운이 없는데도, 엄마는 괜찮다며 같이 운동을 가려고 하는 바람에 언니가 애써 말리기도 했다.

개의 상태가 안 좋을 때마다 엄마에게 이렇게 맡겨두어나 되나 걱정이 되었다. 사실 본인의 약도 잘 챙겨 드시지 않는 엄마가, 개에게 약을 적절하게 먹일 리 만무하니 엄마의 상태도, 개의 상태도 같이 나빠지고 있었다.


엄마의 생활터전을 옮길 수는 없고, 개가 없으면 엄마가 외로울 테니 개를 엄마에게 두는 건 필요해 보이지만, 개의 건강상태가 어디까지 나빠지는 걸 감수해야 할까? 계속 개의 상태를 봐가며 이대로 두어도 될지를 가늠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이었다.

  


며칠 전에는 뭘 먹었는지 개가 설사를 하고 축 처져있었다. 엄마가 무언가를 먹인 것 같은데, 엄마도 뭘 주었는지 기억을 못 했다. 게다가 엄마가 사시는 시골 동네에는 큰 동물병원이 없었다. 이대로 두다가는 개가 얼마 못 살 것 같아, 우리 집에서 동물병원을 다니며 건강을 좀 회복시킨 다음 엄마에게 돌려보내기로 했다.


 아이는 이제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하는  아니라 오히려 엄마 없는 시간에 혼자 컴퓨터 게임하는  즐길 나이가 되었으니 조금 육아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는데, 개를 데려오면서 다시 육아를 하는 것 같다.

혼자 집에 두기 걱정이 되어서 어디 갈 때도 되도록 안고 다녔고, 아침에 출근하며 집을 나선 후 울지는 않는지 가만히 현관문에 귀를 대어 듣고 있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퇴근 후에는 깜깜하고 낯선 집에서 개가 혼자 불안해할까 봐 막 뛰어서 집에 왔다.  


내 아이가 어릴 때 유모차를 밀고가거나 아이 손을 잡고 나가면, 낯선 사람들이 "몇 살이에요?"라는 질문을 한다. 그러면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대화의 물꼬가 터지고, 그 사람이 비슷한 연령의 아이라도 있어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으면 생판 남인데도 막 반가워진다. 개를 데리고 나가도 비슷했다. 평소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만 주고받았던 이웃들이 "개 귀엽다"라거나 "몇 살이에요?"라고 물어보며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 또 개를 주제로 대화가 이어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개의 간식을 종류별로 사다가 앞에 갖다 바쳤으나 입도 대지 않으니 애가 탔다. 아이 키울 때 이유식에 대해 매일 찾아보고 주위 엄마들과 정보를 공유했듯이, 평생 개 사료를 고민해본 적 없던 내가 여기저기서 개가 잘 먹는 사료와 간식을 물어보고 다녔다. 사료는 용량이 커서 다양한 걸 사볼 수가 없으니, 젖동냥하는 심봉사마냥 동네 사람들에게 여러 종류의 사료를 조금씩 얻어서 개에게 들이밀어보기도 했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미아 방송 하나에도 다같이 종일 걱정하는 것처럼,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나이 많고 아픈 우리집 개에게 모두 동정을 표시하며 직접 만든 공들인 간식도 흔쾌히 나눔해주었다. 


아무것도 안 먹으니 나중에는 닭가슴살 삶아다가 개에게 먹였다. 사료를 안 먹는 아이가 닭가슴살은 그나마 받아먹는 걸 보니, '밥 먹는 습관이 잘못되었네'라기보다는, '이거라도 먹어서 다행이다'라는 엄마의 마음이 되었다. 편식하는 아이의 식습관은 바로잡아야하고, 습관적으로 우는 아이는 때로 내버려두어야한다는 걸 엄마들은 알고있지만, 그 순간 아이가 힘들까봐 걱정이 되어서 끝까지 밀어붙이기가 쉽지 않다. 신랑은 "동물은 안 굶어죽어. 배고프면 사료 먹겠지"라고 내버려두라고 했지만, 기운없어 처진 개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으면 불안해서 닭가슴살이라도 먹어야 안심이 되었다. 내 아이가 어릴 때 했던 육아를 똑같이 하며 새록새록 그때의 기억이 났다.



엄마도 개를 키우며, 예전에 우리를 키우던 때의 기억이 났을까?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힘든 내색 없이 우리를 먹이고 재웠던 젊을 날의 엄마가 떠올라서, 그렇게 활기차고 빛나고 총총했던 엄마가 보고 싶어서, 괜히 개를 한 번 쓰다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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