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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Mar 16. 2023

가늘고 길게 혹은 짧고 굵게

내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받아보거나 고민해 봤을 것 같다.

가늘게 길게 살 것인가 혹은 짧고 굵게 살 것인가..

어릴 때는 호기롭게 '가늘고 길게 살 바에는 짧고 굵게 살겠다"라고 큰소리쳤지만

어른이 되어서 '굵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고

'가늘다고 꼭 길게 사는 것도 아니더라'는 것을 보면서

점점 짧고 굵게에서 가늘게 길게로 돌아서게 되더라. 

살아남는 게 승자라고 위안하며 말이다. 


그런데 나의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을 결정해줘야 한다면

가늘고 길게와 짧고 굵게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집안행사가 있어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를 모시고 나와 외출을 했다. 

엄마가 시설에 입소한 후 외가 쪽 친척들을 처음 뵙는 거라

1박 2일의 일정동안 외삼촌댁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 눈물짓고 같이 웃으면서 

엄마는 정말 즐거워 보이셨다. 


이러한 소소한 모임들이

단조롭고 무료한 엄마의 일상에 

또 하나의 예쁜 기억을 되겠다.. 싶어 흐뭇했다. 


엄마를 시설에 다시 모셔다 드릴 때 

안 들어가겠다고 하거나 화를 내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잠깐 들었다.  

직원에게 엄마를 인계한 후 엄마에게 

"나 밥을 못 먹어서 잠깐 먹고 올게요.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계셔요" 했더니

알았다며 얼른 오라며 순순히 들어가셨다. 

사실 시설 가는 길에 엄마랑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엄마는 그새 그것도 잊으셨나 보다. 


그런데 다음날 시설의 간호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엄마의 배회증세가 

외박 다녀오면 너무 심해지고

같은 방에서 지내는 분들에게도 "왜 남의 집에 와있냐"며 화를 낸다고 했다. 


외삼촌 댁에 계실 때는 

수시로 소변을 마렵다고 하시면서 화장실을 찾으시는데

화장실을 잘 못 찾아서 매번 화장실을 알려드려야 했다. 

그런데 시설에서는 화장실을 못 찾아서인지

바닥에 그냥 앉아서 소변을 보신단다.

요실금 팬티를 입혀드려도 거동은 문제없는 엄마이다 보니

팬티처럼 그냥 벗고 앉아서 소변을 보신다고....


시설에 계속 계실 때는 적응을 하시다가

외출하고 오면 다시 제자리라니....

이제 외출도 못하는 건가...

우리랑 외출해서 밥 한 끼도 맛있게 못 먹고

친척어른들과 나들이도 제대로 한번 못 한다면

남은 인생이 엄마한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에 적응해야 하니

이제 외출도 자제하고 면회로만 엄마를 보면서 

남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기억하지 못해 예전의 추억도 손 안의 모래처럼 스르륵 흘러내리는데

이제 새로운 추억을 만들 시간도 없이 빈 페이지로 남은 여생을 채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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