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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Oct 07. 2023

아니, 왜 엄마한테 물어보래?

엄마도 모른다고!!!

요즘 브랜딩에 관심 생겨서 브랜딩 관련 책을 읽다가 좋은 마케팅의 사례로 29cm라는 회사를 소개한 내용을 보았다.

한 가지 예시로 29cm 회사의  세탁표시에 "(세탁법 표시)... 혹은 엄마한테 주면 된다. 엄마는 어떻게 세탁하는지 알 거야"라는 재치 있는 문구로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했단다.


출처: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 책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세탁법 표시를 위트 있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사례로 소개되었지만, 그 문구를 보고는 왠지 찔렸다.


아니 세탁법을 모르면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나도 모르는데???


왜 엄마는 알 거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라떼는 가사수업을 들었다. 남학생은 기술, 여학생은 가사수업을 듣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다.


중학교 시절 가사수업시간에 옷감의 종류, 표시에 따른 세탁법 등을 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러나 생존에 직결되지도, 생업에 관련되지도 않은 그런 걸 기억할리가 만무하다. 물론 내가 패션이나 옷에 관심이 많을 사람이라면 모를까, 안타깝게도 나는 모든 옷은 세탁기에 돌려버리는 데다, 때론 '빨랫감에 흰 옷 몇 개 안 되는데, 검은 옷과 같이 세탁기 돌리면 물들려나?' 따위로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엄마에게 주면 알 거야"라는 문구는 상당히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브런치나 블로그, 인스타에는 맛있는 음식 사진이 넘쳐난다. 어쩜 그렇게 다들 뚝딱뚝딱 만들어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보통 맛있는 음식을 이야기할 때면 '엄마의 손맛'이라는 표현을 쓴다. 사실 나의 엄마 역시 요리 솜씨가 좋았기에 나 역시 '엄마의 음식은 맛있다'라는 명제를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음식을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잘하게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 10년이 넘어도 여전히 난 음식하는 게 재미없고 힘들고 하기 싫다. 아이에게 정성을 담아 한 상 가득 차려내고 싶지만, 저녁 메뉴를 궁리할 때 치킨이나 피자를 사달라는 아이의 요구가 가끔 반갑기도 하다.





20대의 어느 날, 대학 선배들과 술을 마시는데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남자선배 농담처럼 이런 말을 했다.


"와이프가 나 없이 혼자 잘 때는 문단속을 열심히 하거든? 근데 내가 집에 있으면 문단속을 잘 안 하더라. 나도 도둑이 무서운데, 와이프는 내가 도둑을 이길 거라고 생각하나 봐"


술자리에서는 다들 하하 웃으며 넘어갔지만, 여운이 좀 남았다. 남자가 여자에 비해 아직까지 기득권인 건 맞지만, '때로는 가장이라는 무게에 남자로서 강요되는 책임감 때문에 남자의 삶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어른이 되면 세상 모든 걸 대부분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러니 약은 약사에게, 세탁은 세탁전문가에게 맡기자. 엄마는 마른빨래를 개서 옷장에 넣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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